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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환상'에... 코인 사기 6080 노인까지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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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오후 2시 서울 선릉역 인근. 직장인 틈 속으로 노년층의 발걸음이 한 빌딩으로 향했다. 다단계 형태의 각종 코인 투자를 주선하는 A업체가 13층부터 15층까지 사용하는 곳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2대를 기다리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모두 60~80대로 보였다. 양손에 쥔 장우산 2개를 지팡이 삼아 힘겹게 걷는 할머니도 있었다.
80대 여성 B씨가 기자에게 가까운 은행을 물었다. 120만 원(1구좌)을 이 업체에 투자했는데 240만 원을 더 넣으려 은행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주택청약통장을 해지해 돈을 마련했다. A업체가 어떤 매력이 있냐고 묻자 "그건 잘 모르겠고 1구좌를 만들면 1년 뒤 480만 원이 된다"고 답했다. 기자라고 밝힌 뒤 '투자를 숙고해달라'고 권유하자 "자네도 얘기 듣고 한번 해 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B씨와 14층에 내려 5개 상담실 중 '리치클럽' 명패가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박 지사장이라는 50대 여성이 기자를 맞았다. 그는 소개집을 넘기면서 A업체는 콘텐츠, 부동산 사업 등으로 기반이 튼튼하고 △여행 코인 △박람회 코인 △의료 코인을 상장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박 지사장에 따르면 A업체 대표는 33개 코인을 상장시킨 가상화폐 전문가였다.
A업체에 대한 의심이 굳어진 건, '방탄소년단과 '뽀로로' 단어 때문이었다. 박 지사장은 "방탄소년단을 활용한 디스커버 서울패스에 100억 원을 투자했다"고 강조했다. 서울관광재단이 주관하는 디스커버 서울패스는 외국인이 서울의 주요 관광시설을 일정 기간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그는 중국 인터넷방송 사업자와 뽀로로의 중국 방송 송출 계약도 맺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서울관광재단과 뽀로로 제작사인 아이코닉스에 확인해 보니 모두 A업체와 무관하다고 손사래 쳤다. 서울관광재단은 "지난달 이 업체에 내용증명을 보냈고, 방탄소년단 디스커버 서울패스를 홍보에 활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다"고 밝혔다.
박 지사장은 "투자비로 1구좌를 만들면 1주에 10만 원씩 48주 동안 꼬박꼬박 입금된다"고 설명을 마쳤다. 그가 "1명을 소개하면 한 달에 10만 원씩 1년 동안 준다"고 덧붙이자 B씨가 불쑥 "계약서를 쓰고 가라"면서 박 지사장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도했다.
B씨를 뿌리치고 나와 다른 층을 훑어봤다. 3개 층에 모인 노인을 모두 더하면 60명은 족히 돼 보였다. A업체를 빠져나오면서 만난 다른 80대 여성 C씨는 이미 다단계로 3,000만 원이 물린 상태였다. 그는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서 나왔고 여기 있는 사람 다 나 같을 것"이라며 "의심만큼 믿음도 필요한데 여기는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이 업체 대표인 D씨는 다단계 사기업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묻자 대답을 피했다.
가상화폐 광풍을 틈타 각종 코인을 앞세운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코인값 급락으로 20, 30대 중심의 투자 실패 사례가 주로 부각되고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피해를 예고하는 '코인 사기'도 적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 관련 사기 적발 건수는 333건으로 전년보다 3배 넘게 늘었다.
특히 60~80대 피해자가 많은 코인 사기는 대부분 '폰지 사기' 형태다. 고수익 보장을 미끼로 유인한 신규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줄 이자나 배당금을 돌려 막는 다단계 사기다. A업체처럼 세상에 없는 코인을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할 것처럼 속이는 사례뿐 아니라 실제 상장된 코인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도 있다. 코인 사기가 가상화폐 거래소 안에서도 밖에서도 먹잇감을 노린다는 의미다.
대전에 사는 60대 남성 E씨는 상장 코인으로 피해를 봤다. 그는 지난해 교회 목사를 통해 상장 코인을 소개받았다. 다단계 상위 모집책이 E씨에게만 저렴하게 이 코인을 팔겠다고 유혹했다. 상위 모집책은 1년 뒤 코인을 매도해야 한다는 '락업 조항'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락업이 풀린 직후, 코인은 헐값이 돼 팔아도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처럼 1년을 기다렸다가 코인을 내놓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코인 사기가 활개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다단계 사기 수사가 더딘 점을 악용한다. 다단계 사기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자각할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다. 피해자가 언젠가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기대를 부여잡고 있어 수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수사 속도가 더 빠른 유사수신행위 혐의는 코인의 법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적용이 어렵다. 현행법상 원금 및 고수익 보장을 내건 업체는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받는다. 하지만 금전이 아닌 코인을 주고받았을 경우 처벌 여부는 구체적인 기준이 아직 없다. 이런 제도상 구멍은 정보에 뒤처진 60~80대를 속이기 딱 좋은 여건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사업체를 함부로 홍보에 활용해 다단계 코인 업체 문제를 파기 시작한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과거 옥장판을 팔던 다단계 업체가 종목만 바꿔 코인으로 넘어왔다고 보면 된다"며 "사기꾼은 부동산 등 투자 정보에 소외돼서 손해를 봤다는 노인층을 파고드는데 보이스피싱처럼 코인도 사기 유형을 꾸준히 알려 초기에 잡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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