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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성차별적 언어습관들

입력
2021.05.28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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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사회는 성평등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만큼 ‘백래시’(back lash)도 거세다. 20대 여성 대상 자살 예방사업이 '남성 역차별'로 남성 누리꾼의 공격 대상이 되는가 하면, 어린이재단의 사업에 여성 권리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는 이유로 남성 후원자들이 집단적으로 후원 철회에 나서기도 한다. 여성에게 가장 절실한 공정의 문제인 성평등이 어떤 남성에게는 역차별이고 불공정으로 인식된다? 이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야 할까?

여성을 수혜 대상으로 설정한 정책에 역차별을 주장하는 것은 이미 남녀가 평등한데 왜 특혜를 주느냐는 항변이다. 세대에 따라 차별을 체감하는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아들과 딸의 차이를 거의 겪지 않고 취업 준비를 하는 젊은 남성은 직장 내의 성차별적 관행 속에서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둔 중장년 여성보다 한국 사회를 성평등 사회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 하지만 한국 여성의 평균적 현실은 이들의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하는 OECD 국가의 직장 내 여성 차별 수준 지표인 ‘유리천장지수(glass-ceiling index)’에서 한국은 9년째 압도적인 최하위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남녀 임금 격차, 기업 내 임원 비율, 여성 국회의원 비율 등 10개 항목을 평가한 결과 차별의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 분담 비율도 여성이 남성의 3배 이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2019년 남편의 무급 가사노동 시간은 54분, 아내는 3시간 7분이고, 유급과 무급을 합한 총 노동시간도 여성이 1시간 이상 많다. 더 많이 일하고 덜 대접받는 한국 여성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관한 이런 자료는 인터넷에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를 이미 성평등 사회로 인식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여성에 대한 억압은 공기 속의 습기처럼 일상의 언어 속에서 촘촘히 작용해왔다. 주디스 버틀러의 지적처럼, 태어나면서 받는 축복조차 “예쁜 공주님이 탄생했다”는 차별적 언어가 아니던가. 수혜 당사자인 남성들에게 성차별 사회는 익숙한 사회적 자연이다. 약간의 진전에도 성평등 사회가 완료된 것 같은 착시에 빠져 여전히 존재하는 피해자/여성의 처지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상실하기 쉽다. 윤리적이었던 진보적인 남성 정치인이 줄줄이 젠더 폭력 문제로 낙마한 것도 성차별이 자연화된 사회에서는 ‘의도하지 않는’ 행동이 피해자/여성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성찰적 자의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성평등 사회로 가려면 현재의 ‘자연화’된 일상의 차별적 언어 습관부터 성찰해야 한다. 성차별적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성평등 사회로 가는 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겨레신문이 “성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을 쓰지 않겠다”는 사고(社告)를 냈다. 언론이 스스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표현이 성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고 개선의 다짐을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을 나는 처음 봤다. 공론의 첨병인 언론이 의식적인 자기검열을 통해 성평등한 표현의 규범들을 새롭게 구축해 나간다면 공론장 전체의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성찰의 움직임이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뉴스 매체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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