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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 '꿀팁' 알리던 '육대전'...부조리 고발 통로로 거듭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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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 페이지 때문에 군 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군 수뇌부가 한 달 새 한 가지 주제로 네 차례나 회의를 여는가 하면 국방 장관과 육군 참모총장이 잇따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한편 누리꾼들은 응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 누리꾼은 "이런 공간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댓글을 남겼다. "장병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 주어 감사하다"는 응원이 쏟아졌다.
군 당국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게 하고 누리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사건의 주인공은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 이다.
지난해부터 군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병사들을 일정 기간 격리 조치를 하고 있다. 육대전은 제보를 통해 일부 부대들 가운데 격리 병사들에게 배급되는 급식과 격리 시설 환경이 열악하다는 문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얼마 전에는 비영리 민간임의단체로 등록되어 '단체'로서의 새 출발을 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운영자는 김주원(27)씨다. 김씨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갑작스레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는 상황이 "부담스럽지만 그만큼 보람도 느낀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육대전의 시작과 지금까지 겪은 우여곡절을 들어 보았다.
김씨는 2014년부터 2016년 말까지 지방의 한 육군훈련소에서 군 생활을 했다.
당시 대학들을 중심으로 페이스북에서 '대나무숲' '~ 대신전해드립니다' 페이지가 유행했다. 대나무숲은 SNS에서 이용자들이 익명으로 고민을 털어놓고, 갖가지 사회 현안을 토론하는 공간을 말한다.
김씨는 전역을 앞두고 육군훈련소 내 이슈나 시시콜콜한 정보를 공유하는 공간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를 직접 만들기로 한다. 그렇게 같은 해 육대전 페이지가 생겼다.
2017~2018년에 육대전은 썰렁했다. 김씨가 시간이 날 때 페이지에 군대 관련 공감 콘텐츠, 부대 근처 맛집 공유 등을 간간이 올리는 정도였다.
당시 병사들은 부대 안에서 휴대폰을 쓸 수 없었고 일과가 끝나면 부대 내 개인용컴퓨터(PC)를 통해 '사이버 지식정보방'에서 페이스북에 접속해 육대전을 이용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고민을 털어놓았고 김씨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경험을 전하고 군 생활을 응원해줬다.
2019년부터는 군 당국의 정책 변화가 있었다. 같은 해 4월 군은 일부 부대에서 병사들이 일과 후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을 시범적으로 허용했고, 2020년 7월부터는 이를 전면 시행했다.
비슷한 시기 육대전도 전환점을 맞았다. 군 병원의 오진 관련 제보를 비롯해 페이지의 무게 중심이 군 내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9년 10월 김씨는 한 병사로부터 받은 제보 글을 페이지에 올렸다.
제보에는 한 병사가 군 병원의 오진으로 인해 호흡 곤란과 폐렴을 겪고 있으며 군 병원 관계자로부터 '민간 병원으로 옮길 시 병원비 지원을 해 주지 않겠다'는 불합리한 대우를 받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1,000개 넘는 댓글이 이어졌고 누리꾼들은 이를 보며 분노했다.
지난해 2월에는 '부실 급식' 논란이 터졌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군은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한 병사 및 부대 내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가 격리 시설에서 일정 기간 지내도록 했다.
육대전에는 한 부대에서 격리 병사들에게 제공했다는 '주먹밥'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 속 식판에는 김에 비벼진 밥 한 덩어리만 놓여 있었고, 제보자(격리 병사)는 육대전 페이지에 메시지로 "폐건물에 격리돼 있는데 환경도 열악하고 밥도 이렇게 준다. 도와달라"고 말했다.
해당 사진은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국방부는 하루만에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제보에 등장한 식단은 사실과 다르다며 육군과 공군의 한 부대에 제공되고 있다는 식단 사진을 올려 해명했다.
그러나 누리꾼들의 반응은 따가웠다. "관리 잘된 부대 식단만 올리나" "거짓말하지 마라" 등 댓글이 쏟아졌다. 이후 국방부는 추가 해명은 없이 석 달 뒤인 5월 '격리장병 생활여건 보장 종합대책 주요 내용' 을 발표하며 "격리 병사들의 급식 및 시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렇듯 최근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격리된 장병들에게 배급된 식단이 공개되며 떠들썩했던 일이 사실은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또 코로나19로 병사들의 외출 및 휴가가 제한됐을 때 병사들은 김씨에게 메시지로 다른 부대의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김씨 개인으로서는 다른 부대의 정보를 아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때 김씨는 다른 이용자들에게 제보를 요청했으며, 제보가 들어오는 대로 곧바로 소식을 알렸다.
여러 부대 병사들이 육대전을 중간 고리로 해서 서로의 상황을 공유했던 것. 따지고 보면 이때 병사들 스스로 육대전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상황을 파악하는 창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예행 연습한 셈이다. 이후 군 내부의 문제를 다룬 제보 수는 늘었고, 그 내용도 군대 내 부조리, 폭행 사건 등 다양해졌다.
김씨는 "이용자들이 처음부터 육대전이나 그곳에서 올라온 정보를 철석같이 믿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증거가 덧붙여져 상당히 신뢰도가 높은 제보가 여러 차례 올라오고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 (육대전의 존재가) 입소문이 나면서 병사들의 공론장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페이지가 문을 연 지 5년째인 올해는 '부실 급식' 제보로 이슈의 중심에 섰다.
4월 22일부터 최근까지 10여 건의 부실 급식 관련 제보가 올라왔다. 많은 현역 병사는 물론 군 생활을 마친 일반인도 공감하고 응원을 보냈다.
언론에서도 그 흔한 SNS 페이지 중 하나일 뿐인 육대전을 눈여겨봤고, 이를 연이어 기사로 다뤘다. 육대전이 단순히 정보 전달 성격의 페이지에서 사실상 군 관련 고발 창구로서의 존재감을 인정받기 시작한 것.
김씨 역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제보 내용이 사실인지는 어떻게 확인하나.
"제보자에게 연락해서 신원 확인을 먼저한다. 원래는 가계정(본인 명의 계정이 아닌 가짜 계정)으로 보내도 상관이 없었는데 무겁고 심각한 사안일 경우에는 본계정으로 연락하라고 하고, 연락처도 받는다.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진들이 있기 때문에 제보 자체가 사실이 아닌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사람의 입으로 전달하면서 세세한 정보가 틀릴 가능성은 있다. 그런 일이 생길 때 정정하는 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특히 부실 급식 고발 내용이 가져 온 파장이 거세다.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에 대한 병사들의 인식이 바뀐 것 같다. 지난해 주먹밥 사건 때는 제보에 달린 댓글에 인증샷은 따로 없었다.
그런데 한 차례 논란이 일어난 뒤에도 부실한 급식을 받아 온 부대원들이 있었을 것 아닌가.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고발해서 널리 알려야겠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본다. 그래서 제보가 올라오면 댓글에다 (자신도 부실한 식단을 받았다고) 인증샷을 남기거나 제보가 쏟아졌던 것 같다."
김씨는 제보가 올라오면 댓글 확인도 자주 한다고 했다. 최근 기억에 남는 제보와 댓글로는 해병대 연평부대 모범 도시락 사례를 들었다. 주로 병사들이 제보하지만 이는 연평부대에서 복무 중인 부대원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제보다.
사진이 올라오자 "보여 주기식"이라는 댓글이 쏟아져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이후 실제 연평부대 소속 병사가 댓글을 통해 진심을 전해줬고, 김씨도 이를 보며 안도했다는 것.
-들어오는 제보는 하루에 몇 건 정도인가.
"4월(부실 급식 논란) 전까지는 하루에 5건 정도 왔는데 최근 한 달 동안은 하루에 10건 이상씩 오고 있다."
-부실 급식 말고도 어떤 제보가 들어오나.
"치료·수술 등 의료 문제, 기본권 침해에 대한 제보가 가장 많다. 보통 수술을 해야 하면 국군병원 의료진이 진행하지만, 병사들은 부대 바깥 의료기관에 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에는 간부들이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외진 가는 걸 막고 있다는 제보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의료 체계의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
1인 언론사와 민간 단체 등록은 다소 독특한 행보다.
시간은 다시 지난해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먹밥 부실 급식' 제보가 공론화된 이후 국방부 수사관이 김씨의 집으로 찾아 왔다.
두려움을 느꼈던 김씨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공익성을 띈 제보라도 내용을 공개한 당사자가 개인일 경우 상대가 법적 조치를 취했을 때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한 판례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후 김씨는 4개월 뒤인 2020년 6월 육대전을 인터넷 신문사로 등록해 운영을 하게 되었다.
-국방부 관계자가 집에 찾아왔다고 했는데.
"관계자가 집 문을 두들기길래 '누구세요?'라고 했다. 국방부에서 나왔다고 하기에 문을 열어줬다. 그들은 '주먹밥 사건' 관련해서 해당 부대를 파악하기 위해 제보자의 신원이 필요하다'고 물었다. 그런데 제보는 철저하게 익명에 부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보한 병사에게 물어보고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고 관계자가 돌아갔다."
5월 초에는 김씨가 육대전을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했다. 장병들이 군 내 문제를 고발할 수 있는 창구가 정식으로 만들어진 셈. 육대전이 '제2의 군인권센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그는 "그동안 사안이 중대할수록 혼자서 제보 내용을 검토하고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검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대전 페이지에서 회원을 모집하는 글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원 수는 몇 명인가. 어떤 직업군의 회원들이 모여 있는지.
"현재 회원은 210명이다. 의사, 변호사, 기자, 예비군 등 직업이 다양하다. 남성이 대부분이지만 여성도 20명 내외 있다. 군 부대의 처우를 개선하고 싶어 하는 여성 분도 있고 병사 어머님도 계신다.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조력자 역할을 자원한 분들도 있다. 전역을 앞둔 현직 대위님 등 병사들에게 도와줄 수 있는 규정이 있으면 살펴봐주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나.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궁금하다.
"들어오는 제보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공지방과 사담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보는 공지방에만 올린다. 신원을 익명 처리한 제보 내용을 올리면 회원들이 제보를 읽고 이 사안을 올릴지 보류할지 투표를 한다. 찬성이 절반을 넘으면 업로드를 한다.
아직 오프라인으로 모이지는 못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모여서 사무국 구성을 논의하고 싶다."
김씨는 2019년 8월부터 인터넷 쇼핑몰 개인 사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동시에 육대전 페이지 관리, 최근 민간 단체의 대표자 역할까지 '최소 1인 3역을' 해 내는 중이다.
여러 일을 병행하기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제보나 메시지가 오면 바로바로 답을 해 줄 수는 없지만, 병행하는데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병사들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는 "병사들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제보가 올라온 이후 확실히 부대에서 많이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고맙다'는 말을 해 주는데 그때 보람을 느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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