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부터 크랩케이크까지...문 대통령의 식탁 위 정상 외교는

입력
2021.05.29 14:00
구독

2017년 첫 방미...비빕밥이 백악관 만찬에 처음 등장
첫 방중때 현지 식당서 찾았다가 홀대 논란 일기도
문 대통령 크랩케이크와 스가 총리 햄버거 비교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 야외테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 야외테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음식은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의 말입니다. 하물며 국가 최고 지도자들이 만나는 정상회담에서 식사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정상의 식사가 중요한 건 오찬과 만찬을 통해 외교적 메시지와 만남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음식을 어떻게 대접하는지에 따라 회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기도, 양국 관계가 흔들리기도 하죠. 정상회담마다 어김없이 오찬·만찬 메뉴가 기사의 단골 소재로 떠오르며 관심을 끄는 이유입니다.

21일(현지시간) 미 워싱턴 DC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번째 대면 한미정상회담의 식사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한미 정상이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에서 함께한 메릴랜드 크랩 케이크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어요. 미국 측이 한 끼 식사에 담은 메시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죠.

단순한 식사를 넘어 회담의 연장이라고 불리는 오찬과 만찬에서 과거 문재인 대통령과 각국 정상들은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을까요. 각국을 방문한 문 대통령의 식탁 외교를 돌아봅니다.

문대통령 첫 방미 환영 만찬은...비빔밥 'bibimbap'

한미정상회담 공식 환영 만찬 메인 요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미정상회담 공식 환영 만찬 메인 요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 대통령 부부의 동반 만찬 메뉴로 올라온 음식은 '허브로 조미한 캐롤라이나산 황금미 비빔밥'이었습니다. 이날 만찬은 문 대통령의 첫 방미 일정이었습니다.

전채로는 단호박 맑은 수프와 제철 채소로 만든 케넬이 나왔고 비빔밥은 '겨자를 발라 구운 보더 솔(도버해협에서 잡히는 생선)과 함께 나왔어요.

케넬은 재료를 으깨 빵가루나 계란을 입혀 찐 프랑스식 요리입니다. 후식으로는 복숭아와 라즈베리로 만든 테린, 바닐라-계피향 쇼트크러스트 및 복숭아 소르베가 등장했습니다.

와인은 캘리포니아 소노마산 화이트 와인 2015년산으로 시작해 캘리포니아 '하트포드 코트 파 코스트 피노누아' 레드와인 2013년산이 추가로 나왔어요.

전채부터 후식까지 말 그대로 풀코스 요리의 향연에서 주인공은 단연 비빔밥이었습니다. 비빔밥은 1800년대 말부터 각종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해 1990대 초에 처음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채택된 한국의 대표 음식이죠.

쌀밥과 고추장, 여러 가지 색깔의 나물이 어우러져 특유의 맛을 내는 비빔밥은 흔히 화합과 협력의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여러 재료가 모여 다른 음식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화합'을 강조하고, 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맛을 내는 점에서 '협력'을 부각하는 것이죠.

사실 비빔밥은 그 자체의 의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공식 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우리나라가 주재한 외국 정상과의 오찬 또는 만찬의 단골 메뉴이지만 백악관 식탁에 메인 메뉴로 등장한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한미동맹의 공고함과 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왔죠.

역사적 남북회담 만찬에...출장 제작 옥류관 평양냉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한 메뉴 중 하나인 평양 옥류관의 냉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등장한 메뉴 중 하나인 평양 옥류관의 냉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8년 4월 열린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만찬 메뉴에는 옥류관 평양냉면이 등장해 이목을 끌었습니다. 당시 청와대 측은 "문재인 대통령이 만찬 메뉴로 옥류관 평양냉면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죠.

남북은 옥류관 냉면을 판문점 북측에서 직접 만들어 남측으로 공수하는 방식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은 냉면 공수를 위해 북측 통일각에 옥류관의 제면기를 설치했어요. 수석 요리사가 직접 파견돼 만찬 시간에 맞춰 면을 뽑고,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어 곧바로 만찬장인 남측 평화의집까지 배달하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죠.

당시 영국 가디언은 "평화의 상징이 비둘기에서 평양냉면으로 바뀌었다"고 보도하기도 했죠.

사실 평양냉면은 남북 회담의 필수 코스입니다. 2000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의 대표 음식점인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은 것이 시발점이었죠.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옥류관을 찾아 평양냉면을 대접받았습니다.

냉면 외에도 이날 만찬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각각 유년시절을 보낸 ①부산의 대표적 생선 달고기 요리와 ②스위스식 감자전과 함께

③남북관계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전남 신안군의 가거도 민어와 ④해삼을 이용한 민어해삼편수,

⑤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재배한 쌀로 지은 밥, ⑥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소 떼를 몰고 방북해 유명해진 충남 서산목장 한우 부위별 구이,

⑦작곡가 윤이상 등의 고향인 경남 통영 바다에서 잡힌 문어로 만든 냉채 등 남북 평화를 위해 애쓴 인물들을 상징하는 음식들이 등장했습니다. 팔도의 지역을 담아낸 그야말로 '통일'된 식탁이었죠.

이를 두고 역사적인 회담의 취지를 잘 살렸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스위스식 식재료로 만든 초콜릿 등 디저트문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Moon' 블렌딩 커피도 두 정상 간의 만남을 형상화한 다과로 제공됐습니다. 후식 하나하나 깊은 의미를 담아냈습니다.

미식의 나라가 문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농어구이'

만찬의 메인메뉴로 등장한 농어구이 요리. 청와대 제공

만찬의 메인메뉴로 등장한 농어구이 요리. 청와대 제공

2018년 10월 프랑스를 방문한 문 대통령은 "해외 순방에서 이제껏 받아보지 못한 환대를 받았다"고 밝혔어요. 국빈 방문 성사부터 화려했던 공식 환영식과 카퍼레이드,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성대한 국빈만찬 등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성이 현지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였죠.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가 국빈 만찬에서 메인으로 식탁에 올려놓은 것은 야채와 레몬을 곁들인 농어구이 요리였습니다. 생선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을 특별히 배려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죠.

만찬 요리 중간에 프랑스 국가공인 장인이 특별히 마련한 치즈와 샐러드가 입맛을 돋우는 음식으로 준비됐고, 후식으로는 아름다운 디자인의 초콜릿과 과일 디저트가 등장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후문입니다.

홀대 논란 일었던 첫 방중...현지 식당에 나타난 대통령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인근의 한 현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중국 베이징 댜오위타이 인근의 한 현지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7년 12월 첫 방중길에 문 대통령은 둘째 날 베이징 현지 식당을 방문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서민식당을 방문해 중국 시민들과 담소를 나누며 아침식사를 마친 것이죠.

당시 문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와 함께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중국 서민들이 아침으로 즐겨 먹는 유탸오(油條)와 더우장(豆漿)으로 식사했어요. 중국식 만두 샤오룽바오(小籠包)와 만둣국 훈둔(混沌)도 곁들였다. 중국 일반 서민들이 즐겨 먹는 아침 메뉴죠.

하지만 이날 현지 식당 방문은 국내에서 문 대통령의 혼밥(혼자서 먹는 밥) 논란으로 비화되기도 했습니다. 식도락으로 유명한 중국은 외국 정상들에게 각지 유명 요리를 대접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하지만 당시 문 대통령의 깜짝 혼밥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불편했던 양국 관계와 맞물리면서 중국 측의 홀대라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2016년 5월 베트남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하노이의 한 서민 식당에서 '분짜 식사'를 하고 호평을 받은 것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죠.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현지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쌀국수와 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지면서 초강대국의 소탈한 대통령 이미지가 전 세계에 각인됐어요.

논란과 상관없이 문 대통령이 방문한 현지 식당은 이후 인기몰이를 했다는 후문입니다. 이 식당에는 문 대통령이 먹은 음식을 묶은 대통령 세트 메뉴가 등장했고,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문 대통령 세트를 먹는 인증샷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간편식이 오찬에? 속어 논란도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 야외테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4월 16일(현지시간) '햄버거 오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오른쪽 사진 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조바이든 트위터 캡처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 야외테라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오찬을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4월 16일(현지시간) '햄버거 오찬'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오른쪽 사진 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조바이든 트위터 캡처

2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함께한 오찬 메뉴는 크랩케이크였습니다.

크랩케이크는 메릴랜드 대표 음식 중 하나로 게살과 야채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튀기거나 구워내는 음식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묵과 비슷한 간편식이죠. 미국 측이 해산물을 좋아하는 문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해 선택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었어요.

이는 곧장 지난달 16일 열린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과 비교됐습니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햄버거를 앞에 두고 2m 정도 긴 테이블 양끝에 앉아 20분 동안 오찬을 했지만 스가 총리는 햄버거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전해졌죠.

일부에선 크랩케이크와 햄버거를 비교해 미국 측이 문 대통령에게 더 성의를 보였다고 평가했죠.

하지만 뒤늦게 온라인에는 만찬 메뉴인 크랩케이크의 속어로 '우리 패거리도 아니면서 근처에 와서 빌빌거리고 절대로 꺼지지도 않는 놈'이라는 부정적 뜻이 있다는 내용의 글이 퍼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죠.

손효숙 기자
박서영 데이터분석가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