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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역 침범 마라" 변호사도, 의사도, 감정평가사도 스타트업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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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 IT기술을 접목한 프롭테크 신생기업(스타트업) 빅밸류의 김진경 대표에게 지난 1년은 악몽이었다. 지난해 5월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가 빅밸류를 감정평가사법에서 금지한 유사 감정행위를 했다며 고발해 1년간 경찰 조사를 받느라 사업이 중단되다시피 했다.
문제가 된 것은 이 업체가 전국 부동산시세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서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의 시세를 추정해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빌라시세닷컴'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는 서민들이 연립이나 다세대주택 구입 시 은행의 대출 산정 근거로 쓰인다. 그동안 연립이나 다세대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시세 정보가 없어서 은행에서 담보 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금융위원회는 서민들과 은행의 고민을 덜어준 빅밸류를 혁신 기업으로 보고 규제 예외 대상인 샌드박스 업체로 지정했다. 물론 국토교통부 등과 함께 법률 검토를 거쳐 문제없다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다. 그런데 감정평가사협회는 샌드박스에 선정된 빅밸류를 위법이라며 문제 삼았다.
지루한 1년간의 조사 끝에 경찰은 지난 21일 정보 제공에 해당할 뿐 감정평가사법 위반이 아니어서 빅밸류를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한다고 결정했다. 김 대표는 이날 경찰 통보를 받고 허무하게 흘러간 시간이 안타까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사실 여부를 떠나 법적 분쟁만으로도 불법 행위를 한 것으로 오해해 신규 고객사를 거의 확보하지 못했다"며 "힘없는 스타트업이 강력한 이익단체에게 1년 동안 영업방해를 당한 셈"이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그동안 김 대표는 정부에도 도움을 청했으나 소용 없었다. 그는 "정부에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뒷짐만 졌다"며 "이런 식이면 샌드박스 선정이 의미 없다"고 한탄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새로운 서비스를 들고나온 스타트업들이 법률, 의료, 건강, 부동산 등 곳곳에서 빠르게 성장하며 각종 이익단체들과 충돌하고 있다. 이익단체들이 기존에 없던 스타트업의 새로운 사업을 영역 침해로 본 것이다.
법률서비스 '로톡'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로앤컴퍼니는 변호사단체들로부터 2015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세 번이나 고발을 당했다. 2014년 처음 서비스를 시작한 이 업체는 매달 일정액을 받고 변호사들의 광고를 게재한다. 로톡은 현재 약 4,000명의 변호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광고를 싣고 있다.
그런데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직역수호변호사단 등 여러 단체들은 이를 변호사법 위반인 변호사 소개 행위로 봤다. 변호사법에서는 법률 사건이나 법무사무소를 소개한 대가로 중개 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로앤컴퍼니는 단순 광고일 뿐 변호사 상담 및 사건 수임에 대한 중개 수수료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로앤컴퍼니는 세 번의 고발 중 두 건에 대해 무혐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직역수호변호사단이 지난해 11월 제기한 세 번째 고발은 서울지방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서 조사 중이다.
변협은 두 번의 고발이 무혐의로 끝나자 이달 초 변호사들이 포털을 제외한 다른 온라인 서비스에 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협회의 광고 규정을 개정해 로앤컴퍼니를 압박하고 있다. 자체 징계권을 가진 변협은 광고 규정을 어기는 변호사들을 징계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로앤컴퍼니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로앤컴퍼니 관계자는 "로톡에 광고를 못하게 막는 것은 대형 법무법인을 제외하고 알릴 방법이 적은 개업 변호사들의 영업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들을 위해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 정보 앱 '강남언니'를 제공하는 힐링페이퍼와 '바비톡' 개발업체 케어랩스도 의사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의협은 두 업체가 성형전문 병원들에게 돈을 받고 광고를 게재하는 것을 의료법 위반인 병원 소개 행위로 봤다. 그러나 두 업체는 로앤컴퍼니와 마찬가지로 광고만 게재할 뿐 환자를 병원에 직접 소개하는 것은 아니어서 법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 의협은 강남언니의 상담 신청 기능을 개인 정보 판매 행위로 봤다. 그러나 힐링 페이퍼 관계자는 "이용자가 병원에 상담 신청 시 이름과 전화번호를 가명과 안심번호로 숨길 수 있어서 개인정보 판매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서울시의사회는 올해 초 강남언니와 바비톡에 광고를 게재하는 개인병원들에 공문을 보내 광고를 중단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다. 힐링페이퍼 관계자는 "의협이 이용자와 병원 모두에 도움이 되는 디지털 서비스를 사실과 다르게 불법으로 몰아간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빅밸류처럼 정부에서 선정한 샌드박스 스타트업들도 이익단체의 반대에 부딪쳤다. 개인 맞춤형 건강기능식품을 추천하는 모 스타트업은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샌드박스 업체로 지정됐는데도 대한약사협회와 유사한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업체는 이용자의 설문 정보를 토대로 약사와 영양사 자문을 거쳐 개인별로 적합한 영양제들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다. 그러나 약사협회는 약사의 참여 폭이 적어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며 이 서비스를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여러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성장할수록 이익단체들과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조정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샌드박스의 경우 정부에서 제도 개선 등 갈등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관계자는 “국민들이 혜택을 보는 혁신 서비스라면 공리주의적 시각에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샌드박스도 1회성 선정으로 그칠 게 아니라 갈등 발생 요인을 제도 개선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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