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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주민 6배… 꿈·낭만 넘실대는 대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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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 도시로 손꼽힌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12개 대학이 들어서면서 파리, 런던, 보스턴, 멜버른 등과 견줄 세계적 대학 도시를 꿈꾸고 있다.
천안 내에서도 동남구 안서동(安棲洞)은 5개 대학이 자리잡고 있어 ‘대학 특구’ ‘한국판 아이비리그’로 불린다.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그것도 동 단위 행정구역에 대학이 5곳이나 모인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자 그대로 풀어보면 천안(天安)은 '하늘 아래 편안한 곳', 안서동은 천안에서도 가장 '살기 편안한 동네'다. 대학이 처음 들어선 1977년 당시 안서동은 전체 100가구가 안 되는 시골 동네였다. 하지만 그해 단국대 천안캠퍼스를 시작으로, 이듬해 호서대, 1983년 백석대와 백석문화대, 1985년 상명대가 차례로 캠퍼스를 조성했다.
'안서동 캠퍼스'에 다니는 학생 수는 4만8,000명(단국대 1만2,000명·백석대 1만8,000명·백석문화대 6,000명·상명대 6,000명·호서대 6,000명)에 이른다. 현재 안서동 주민 수가 7,783명이니, 대학생이 주민보다 6배 이상 많은 것이다. 대학과 동네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셈이다.
한 동네에 5개 대학이 모여 있으니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등 삼성그룹 계열사와 현대자동차 협력사 등 알짜 기업들이 지역에 입주해 있다 보니, 대학마다 특성화 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맞춤형 인재양성 의지가 뜨겁다.
대학 간 상생 협력도 돋보인다. 중복되지 않은 학과를 중심으로 특성화를 추진하면서 기업과 산학 협력을 체결하고 있다. 기업 역시 실무 능력을 갖춘 인재를 지역에서 공급받을 수 있어 협력에 적극적이다. 대학들은 또 연구시설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 국내 어느 대학가보다 활발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안서동의 5개 대학은 11년 전부터 대학도서관 상호 자료 이용을 위한 공동협약을 체결해 ‘한국판 아이비리그’를 형성했다. 학부생부터 대학원생, 직원, 조교, 교수까지 동네 대학도서관 어디에서든 시설과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데, 도서만 해도 총 400만 권을 자유롭게 열람하고 대출할 수도 있다. 대학 간 거리가 가까우면 500m, 멀어도 2㎞ 정도라 방대한 '정보의 보고'를 걸어다니며 이용할 수 있다.
대학 간 강의 교류도 활발하다. 계절학기 때 다른 대학에서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고 다른 대학 교수를 초빙해 특강을 받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아이비리그의 장점을 접목한 셈이다.
학생들도 학교 울타리에 구애받지 않는다. 대학 동아리끼리 연합해 학술행사와 체육행사, 모임 등을 수시로 여는가 하면, 대학동아리연합회는 ‘대학아트페스티벌’을 공동 개최해 안서동을 낭만과 꿈이 공존하는 곳으로 변화시켰다.
안서천, 천안천, 태조산 자락을 사이에 두고 이웃한 안서동 대학들은 각각 문화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앞에는 일명 '단대 호수'로 불리는 '천호지'가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우측으로 500m를 이동하면 닿는 이 호수는 해마다 봄이면 '100만 송이 벚꽃'의 향연이 열려 호수 둘레 나무테크를 따라 벚길을 걷는 이들로 붐빈다. 벚꽃맞이 행사가 따로 있진 않지만, 대학가의 젊음과 낭만이 어우러져 그 자체로 특별한 축제다. 특히 이 동네 상명대 출신 가수 장범준이 결성한 그룹 버스커버스커가 부른 벚꽃 소재 노래들('벚꽃 엔딩' '꽃송이가')이 인기를 끌면서 천호지의 주가는 한층 높아졌다.
천호지의 매력은 벚꽃 시즌이 지나도 계속된다. 5, 6월에는 데크 펜스를 장식한 덩쿨장미가 매력을 발산한다. 7월에는 호수를 뒤덮은 연꽃이 발길을 붙잡는다. 운이 좋으면 천연기념물 수달이 유영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호수 주변 경관이 뛰어나다 보니 '단대 호수를 걸으면 연인이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특히 '천수교'라는 이름의 현수교에는 '연인과 다리를 건너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어 천호지를 찾은 커플의 필수 코스가 됐다. 주차장도 넓어 차를 가지고 와도 불편함이 없다. 2.3㎞k의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내외.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천호지 주변에는 호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카페와 빵집, 식당, 커피점이 즐비하다. 카페 2, 3층에 앉아 즐기는 낙조와 야경은 일품이다. 천호지 야경은 '천안 12경'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마라톤 코스와 분수, 현수교, 보행교, 아치교, 인라인스케이트장, 농구장, 족구장, 배드민턴장, 게이트볼장 등이 있어 이른 아침과 야간에는 주민과 대학생으로 항상 붐빈다.
천호지 건너편으로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500m쯤 거슬러 올라가면 호서대가 나온다. 편의점, 원룸, 식당, PC방, 복사집, 주점 등이 줄지어 늘어선 정문 앞 풍경은 여느 대학과 다를 바 없다.
등교 시간에 잠시 분주했다가 오전 내내 한산하던 대학가는 오후 3시 이후부터 학생들이 점차 늘더니 저녁 무렵에는 식당과 주점마다 활기가 돈다. 업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 고객들을 유인한다. 편의점 파라솔은 삼삼오오 커피와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행들의 차지다.
바로 옆에는 상명대 천안캠퍼스가 있다. 나지막한 고갯길을 500m쯤 올라가면 정문이 나오는데, 주변은 호서대 앞과 별반 차이가 없다. 두 대학 캠퍼스는 여러 골목길로 연결돼 있어 학생들의 교류가 많고, 그래서 다른 지역 대학보다 상권 규모가 제법 크다.
국도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백석대와 백석문화대 캠퍼스가 나온다. 대학가 풍경은 상명대·호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학교별 학풍과 문화에 따라 학생들의 옷차림과 행동거지가 주는 느낌은 다르다.
대학가를 벗어나 잠시 걷다 보면 천안의 진산이라는 태조산 입구에 다다른다. 태조산은 천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가볍게 오를 수 있다.
10분쯤 올라가면 천년 고찰 성불사를 만난다. 유명 가곡의 가사 속 성불사가 아니다. 사찰이 창건될 무렵 하늘에서 백학 한 쌍이 날아와 이곳 천연 암벽에 불상을 조성하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렸기 때문에 '성불(不)사'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후 도선국사가 절을 짓고 성불사(成佛寺)라고 했다.
조금 더 올라가면 1977년 건조 당시 동양 최대였던 청동 대불로 유명한 각원사가 반겨준다. 좌불상은 앉은 높이가 15m이고 귀 길이는 1.75m, 손톱 길이는 30cm나 된다.
천안시는 2019년부터 안서동 일대를 '대학인의 거리'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부터 5개 대학 의견을 수렴해 백석대~천호지길(단국대)~상명대~호서대~각원사입구로 이어지는 총 연장 4.56㎞ 구간을 확장 및 포장 중이다. 구간별 보행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보도 폭을 무려 5m 이상으로 넓혔다.
올해 1월부터는 천호지를 휴식과 문화가 어우러진 친수 공간으로 바꾸는 ‘천호지 수변경관 개선 사업’도 착수했다. 천호지 주변이 체육시설 위주로 조성돼 문화 공연 등 시민들의 다양한 수요를 맞추지 못했다는 판단 아래, 천호지의 자연 환경을 이용한 경관을 새롭게 조성하는 것이 사업 목표다. 시는 이 과정에서 대학 밀집 지역의 특성을 살려 천호지를 청년 문화를 활성화하는 공간으로 개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내년 6월 완공 목표로, 7월까지 설계 공모와 행정 절차를 마칠 계획이다.
박상돈 천안시장은 "안서동은 세계에서 유일한 대학촌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곳"이라며 "천호지 주변 자연경관을 이용한 천안 첫 수변경관 개선 사업을 진행, 시민들에게 휴식과 볼거리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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