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부터 거래까지 불법 판친다…사기꾼 먹잇감 된 코인 시장

입력
2021.05.31 04:30
수정
2021.05.31 16:58
6면

[무법지대 코인판, 이대로는 안 된다]
<상> 대박 환상 속 판치는 사기
코인 투자자도 각종 불법행위에 무방비 노출
해외 우회상장 차단 어려워… 거래량 부풀리기도

26일 서울 역삼동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은 4천70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뉴시스

26일 서울 역삼동 빗썸 강남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이날 비트코인은 4천700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뉴시스


# 1. 지난 13일 새벽 1시쯤 도지코인을 패러디해 만든 '진도지코인' 전체 물량의 15%가량이 한순간에 매도됐다. 갑작스러운 매도에 진도지코인 가격은 97%나 급락했다. 코인 개발자가 기습적으로 자신의 물량을 매각해 돈을 챙겨 잠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진도지코인 메인 홈페이지, 트위터 등은 전부 폐쇄된 상태다. 업계에선 약 26억 원이 개발자에게 흘러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 2. 한글과컴퓨터 계열사가 참여해 금 기반 거래 플랫폼을 만들겠다며 내놓은 가상화폐 '아로와나토큰'은 지난달 20일 국내 코인거래소 빗썸에 상장하자마자, 상장가(50원) 대비 1,000배 넘게 뛴 5만 원에 거래 됐다. 투자자가 한컴그룹에 신뢰를 두고, 이 코인이 내놓을 금 기반 거래 플랫폼이 실현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 넘도록 금 기반 플랫폼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이 코인을 발행한 싱가포르 회사 아로와나테크에 한컴그룹이 직접 투자한 금액은 채 50만 원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지분은 한컴그룹 관계자가 보유하고 있다. 코인 업계는 국내 규제를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가상화폐 우회상장 사례로 의심하고 있다. 이 토큰은 현재 고점 대비 90% 하락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가상화폐를 미끼로 한 사기 행각은 "투자금을 불려주겠다"는 방식에 그치지 않는다. 외형상 정상적으로 보이는 개발자, 발행사, 거래소들 사이에서도 실은 각종 편법·불법이 횡행한다.

그럴듯한 투자 계획을 믿고 코인을 사들인 일반투자자가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정부는 "가상화폐는 금융자산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되풀이하며 사실상 방관하는 모습이다.

"보물선 인양 코인 발행" 사기… 해외서 우회발행도

31일 코인 업계에 따르면, 정상을 가장한 가상화폐 사기는 주식의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가상화폐 발행(ICO) 단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ICO는 코인 발행 업체가 핵심 사업 내용을 담은 백서를 공개하고 직접 투자자를 모집한 뒤 코인을 배당해주는 개념이다.

하지만 증시 IPO 때와 달리 자본금이 없어도 되고 정부가 정한 기준이나 법규도 없다. 개발자나 발행사로서는 그럴듯한 아이디어만으로 투자자를 끌어들여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다. 가상화폐계의 작전세력이 바로 이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비트코인 붐이 일었던 2017년에도 각종 ‘스캠(사기) 코인’이 활개를 쳤다. 울릉도 앞바다에서 150조 원 상당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을 인양하겠다며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을 모집한 신일그룹이 대표 사례다.

4년이 흘렀지만 국내에서 ICO가 금지됐다는 것 외에 달라진 것은 없다. 정부는 2017년 7월 국내에서 일체의 ICO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발행 업체가 해외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우회 발행할 경우, 이를 막을 수단은 없다. 한컴그룹이 사실상 아로와나토큰을 우회상장했다는 의심을 받지만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이유다.

국내 한 개발자가 도지코인을 패러디해 만든 '진도지코인'. 개발자가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가진 코인을 팔아치우면서 코인 가격은 94% 폭락했다. 홈페이지 캡처. 뉴스원

국내 한 개발자가 도지코인을 패러디해 만든 '진도지코인'. 개발자가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가진 코인을 팔아치우면서 코인 가격은 94% 폭락했다. 홈페이지 캡처. 뉴스원


거래소 직원이 거래량 부풀리고… '허위공시'에도 속수무책

코인이 거래소에 상장된 후에도 법의 공백은 계속된다. 거래소마다 나름의 상장 기준이 있지만, 명확한 법규가 없다 보니 사기꾼이 여전히 활개 치는 것이다.

상장 후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기는 ‘거래량 부풀리기’다. 코인이 거래량 순위 상위권에 오르면 투자자가 더 많이 모이기 때문에 거래소는 더 많은 수수료를 번다. 이 를 노린 일부 거래소는 임직원 명의 계정을 만들어 자전거래 방식으로 거래량을 부풀리다 적발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증시와 달리 허위공시도 걸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지난 3월 업비트는 가상화폐 ‘고머니2’의 발행사인 ‘애니멀고'로부터 공시 내용을 전달받아 고머니2가 5조 원 규모 북미 펀드 셀시우스네트워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다는 내용을 공시했다. 그러나 일부 투자자가 허위공시 의혹을 제기했고 업비트가 확인한 결과, 셀시우스네트워크의 투자 사실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시세조종, 내부자거래 등의 불공정거래 또한 처벌근거가 미약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정부는 뒤늦게 지난 28일 금융위원회를 가상화폐 사업자 관리·감독을 맡는 주무부처로 지정했다. 금융위는 특정금융정보법 시행령을 개정해 거래소가 주축이 된 자전거래나 시세조종은 막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이뤄지는 광범위한 사기 행위를 효과적으로 막기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김기흥 블록체인포럼 대표(경기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금도 국내 거래소에 160여 개의 정체가 불분명한 ‘잡코인’이 상장돼 각종 불공정행위를 공공연히 벌이고 있다"며 "서둘러 제도를 마련해 규제 사각지대를 없앨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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