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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내용의 조화, 문질빈빈

입력
2021.05.25 19:00
25면
김경집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김경집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


최근 '인문학자 김경집의 6I 사고 혁명'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6I란 영어 알파벳 I로 시작하는 여섯 개의 키워드를 말합니다. '탐구(Investigation), 직관(Intuition), 영감(Inspiration), 통찰(Insight), 상상(Imagination) 그리고 나(I/Individual)'를 말하는 것이죠. 저는 직관과 통찰 부분을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직관이란 부분을 분석하고 조합하여 전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과정 없이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강조하는 직관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사실을 파악하는 능력입니다. 그동안 제가 직관을 오해했더군요. 제가 아는 직관은 내 경험을 통해 축적된 일종의 확률 같은 것이었거든요. 경험은 편향되기 마련이죠.

코페르니쿠스보다 왜 갈릴레이가 더 인기 있을까요? 갈릴레이가 훨씬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갈릴레이는 목성에서 달을 네 개 발견했습니다. 모든 천체가 지구를 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의심하기에 충분합니다. 금성의 크기가 변하는 것도 관찰했죠. 금성이 지구를 돌고 있지 않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만큼 시각 정보는 직관적입니다.

요즘 존경하는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님의 '산림청이 저지른 엄청난 사건, 국민 생명 위험하다'는 기사가 화제입니다. 기사는 산림청의 숲 가꾸기 사업이 기후재앙을 불러올 제2의 4대강 사업이라고 경고합니다. 산림청도 반론을 펴지만 역부족입니다. 기사를 본 국민적 직관은 "산림청은 나쁜 놈"이라는 판단을 이미 끝냈거든요.

갈릴레이가 목성을 도는 네 개의 행성 그림을 보여준 것처럼 기사에는 바리캉으로 민 것 같은 벌채사업 현장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 사진은 산림청 사업과는 아무 상관없는 민간 경제림의 벌목사업 현장이지만 매우 직관적입니다. 수령과 탄소 흡수량 간의 관계도 논란입니다. 목사님은 나무의 나이테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진에 따르면 30살 이상의 나무가 탄소를 더 흡수한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나무가 성장하면 그 주변 나무의 개체 수는 줄어든다는 것 역시 상식이죠. 전체 숲 단위의 흡수량을 보면 수종과 상관없이 숲의 나이가 20~25세가 될 때 절정을 이루고 이후에 완만하게 하락하다 50년이 되면 10세 숲과 같거나 낮아진다는 게 산림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입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나이테 사진 하나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김경집 선생님은 "통찰(洞察)은 꿰뚫어 본다는 뜻이지만 흐름을 두루 읽는다는 의미의 통찰(通察)이며 전체를 하나의 묶음으로 읽어내는 의미의 통찰(統察)이기도 하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통찰이란 사실과 논리를 숫자로 꿰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산림청은 앞으로 30년에 걸쳐서 26억 그루를 새로 심을 계획입니다. 나무를 새로 심으려면 그만큼 나무를 베어내야 하죠. 매년 얼마나 많은 산이 민둥산으로 바뀔까요? 무려 2만9,000㏊입니다. 엄청나죠. 그런데 이것은 우리나라 전체 산림 면적의 0.4%에 불과합니다. 해마다 하는 사업입니다. 그 전에도 매년 0.3%의 산림에 같은 사업을 했었죠. 0.1% 늘어난 것입니다. 경천동지할 일이 아닙니다.

김경집 선생님은 책에 文質彬彬(문질빈빈)이라는 글귀를 적어 주셨습니다. 문과 질은 각각 형식과 내용을 뜻합니다. 형식인 문은 직관을 줍니다. 하지만 문의 바탕이자 근원은 내용인 질입니다. 둘 다 소홀해서는 안 되죠. 질에 걸맞게 문이 갖춰져야 문과 질이 조화로운 문질빈빈이 됩니다. 저는 여태 문에만 혹하며 살았지만 이젠 질도 살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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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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