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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마약 '펜타닐' 대학병원도 동네병원도 그냥 줬다

입력
2021.05.26 04:45
수정
2021.05.26 11: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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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김정훈씨, 6년간 손쉽게 구해 중독
병원 돌아다니며 처방전·소견서으로 'OK'
1020 펜타닐 처방 한 해 6000건 웃돌아
구매대행·암시장 통해 웃돈 주고 구입도
"사랑하는 모든 걸 잃어… 강력 규제해야"

25일 본보와 만난 김정훈씨가 쓰고 있던 미국마약단속국(DEA)이 적힌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중독 치료를 해내겠다는 의지로 석 달 전 이 모자를 구매했다. 오지혜 기자

25일 본보와 만난 김정훈씨가 쓰고 있던 미국마약단속국(DEA)이 적힌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중독 치료를 해내겠다는 의지로 석 달 전 이 모자를 구매했다. 오지혜 기자

20대 후반 김정훈(가명)씨는 불과 1년 전까지도 마약중독자였다. 6년에 이르는 투약 기간 동안 김씨가 주로 마약을 구한 곳은 암시장이 아니라 병원과 약국이었다. 그가 중독된 마약 성분이 '펜타닐', 디스크나 암 환자가 수술 후 통증을 줄이려 패치 형태로 사용하는 의약품에 함유된 물질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마약성 진통제 모르핀보다 약효가 100배 강한 성분이지만, 그는 별다른 제약 없이 펜타닐 패치 처방전을 계속해서 발급 받았다.

암시장 아닌 병원서 구하는 '마약'

대학 휴학 후 돈벌이를 하던 김씨에게 펜타닐 패치를 처음 소개한 건 재미교포 친구 A씨였다. 그는 머리가 아프다는 김씨에게 "법적으로 문제없는 단순 진통제"라며 '펜디' 'P'라고 불리는 펜타닐 투약을 권유했다. 패치에 든 마약 성분을 흡입하는 방식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반항심에 시작한 대마초를 수년째 피우고 있던 정훈씨는 마약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다.

1년 넘게 A씨를 통해 펜타닐 패치 조각을 구매하던 김씨는 우연히 펜타닐이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에서 '펜타닐 처방 방법'을 검색하고 병원을 찾았다. 무릎 통증을 호소하거나 허리디스크 소견을 받은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지를 제출하는 수법을 썼다.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성분이 들어간 패치 형태의 의약품을 밀봉된 상태로 펼쳐 놓은 모습. 백색 가루(밀가루)는 연출을 위한 소품. 류효진 기자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성분이 들어간 패치 형태의 의약품을 밀봉된 상태로 펼쳐 놓은 모습. 백색 가루(밀가루)는 연출을 위한 소품. 류효진 기자

한번 '물꼬'를 튼 뒤엔 감시 시스템을 속일 방법도 찾아냈다. 현행법상 의사와 약사는 의약품안심서비스(DUR)를 통해 환자의 투약 상황을 모니터링하면서 같은 약을 여러 기관에서 적정량 이상 처방받지 못하도록 하는데, 정훈씨는 중복 처방 경고 기간을 파악하고 이를 피해가며 펜타닐 패치를 처방 받았다. "처방 기록을 들고 의원(1차 병원) 2곳과 대학병원 1곳을 묶어 한 달 주기로 순회했어요. 이렇게 이용한 의원만 20곳이 넘습니다." 정훈씨는 펜타닐 100㎍(마이크로그램, 1㎍은 100만 분의 1g)짜리 대용량 패치를 하루 한 장 이상 투약했다고 한다. 적게 잡아도 20일이면 치사량(2㎎, 1㎎은 1,000㎍)에 이르는 양이다.

김씨를 제지하는 의료기관은 없었다. 그는 "몇 차례 연속해서 처방 받으면 병원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여겨서인지 '마지막 처방이다' '중독성이 심한 약물이다'라고 경고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라며 "오히려 대학병원은 내가 동네 의원이나 병원에서 검증받고 왔다고 생각해서인지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사 처방전을 받은 약국에서도 그의 전화번호를 묻는 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중독이 심해진 김씨는 복학한 대학의 화장실은 물론이고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몰래 펜타닐을 투약하는 지경까지 갔다. 건강이 악화돼도, 함께 투약하던 지인이 약물중독으로 숨져도 멈추지 못했다. 결국 약을 사느라 돈이 다 떨어져 부모님 집에 도로 들어갔다가 아버지에게 투약 현장을 들킨 후에야 처음 입원 치료를 받게 됐다. 그러나 퇴원과 투약이 반복되고 가족마저 등을 돌린 지난해 초, 김씨는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약을 완전히 끊을 결심을 하고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김씨는 매일같이 찾아오는 오한, 호흡곤란, 눈물·콧물 등 금단 증상을 견뎌내고 1년째 중독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도 조울증, 공황장애, 강박장애는 여전하다. 김씨는 이렇게 당부한다. "펜타닐로 돈과 시간뿐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걸 잃을 거예요. 다시 쌓으려면 무척 힘들 거고요. 혹시라도 중독됐다면 기회가 있을 때 빨리 정신 차리세요."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약을 구할 우회로 많아 대책 시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16~2020년 펜타닐 패치 처방 현황'에 따르면 20대의 펜타닐 처방 건수는 2019년을 기점으로 4,000건대 후반에서 5,000건대 중반으로 급증했다. 10대는 2016~2018년 1,500건 안팎에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매년 1,000건 넘는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물론 대다수는 의료 목적의 처방이겠지만, 최근 경남·부산 지역의 10대 42명이 펜타닐 투약 및 판매로 무더기 입건된 사례에서 보듯이 10·20대가 마약 대용으로 처방 받은 경우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펜타닐과 같은 마약성 진통제의 편법 사용을 막기 위해 현행 의약품 관리 체계를 강화하더라도 허점은 있다. 처방 받을 자격이 있는 환자에게 구매를 부탁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씨도 펜타닐 구매 대행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입원했는데 펜타닐에 중독된 고등학생이 '펜타닐을 사달라'면서 약값의 5배인 100만 원가량을 제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본보 기자가 펜타닐 패치를 구매하기 위해 접촉한 판매자와의 대화 일부. 오지혜 기자

본보 기자가 펜타닐 패치를 구매하기 위해 접촉한 판매자와의 대화 일부. 오지혜 기자

웃돈을 치를 생각이 있다면 인터넷 암시장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본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펜타닐 구매를 시도해보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판매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신원 확인은 요구하지 않았다. 한 판매상은 "요즘 펜타닐이 유행이라 물량이 없다"면서 "앞으로 (당국이) 규제에 들어가면 단가가 더 오를 것"이라며 가격을 흥정하기도 했다.


오지혜 기자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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