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불쌍해서 안되겠더라고요. 꼭 구해주고 싶었습니다."
경기 부천시 여월동 강순덕 할머니
경기 부천시 여월동에 사는 강순덕(69) 할머니와 검은색 누더기 개 '초코'(5세 추정)의 인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 할머니는 2019년 집 근처 야산 아래 체육관 앞에서 몽글몽글한 검정 털의 개를 발견했다. 그는 "처음엔 길 잃은 푸들로 보였다"라며 "개를 불렀더니 곧바로 산으로 올라가 버렸다"고 했다. 검은색 털의 개를 또 만난 건 지난해 가을, 같은 장소였다. 처음 봤을 때 윤기 나던 털은 누더기가 돼 엉켜 있었다. 할머니는 개를 부르며 오라고 손짓했지만 또다시 산으로 도망쳤다. 주변에 물어보니 개가 이 근처에서 보인 지는 한참 됐다고 했다.
뒷산서 세 번째 목격... 밥 챙기며 돌보기 시작
할머니는 3월 16일 10년 동안 함께했던 반려견 '행복이'를 떠나 보냈다. 다음날 평소 등산을 하지 않지만 행복이를 떠올리며 딸과 뒷산 등산로를 걷던 중 할머니는 우연히 검은색 털의 개를 목격했다. 지난해 가을 체육관 근처에서 봤던 개인 것 같았다. 할머니는 "나중에 등산을 다니는 주민들로부터 검은색 털의 개가 오랫동안 산을 떠돌며 살았고, 인근 아파트 단지 한 주민이 간간히 밥을 챙겨줬다고 들었다"며 "가까운 장소에서 오랜 기간 목격된 걸로 봐서 같은 개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등산로에 앉아 있던 개는 강 할머니 모녀를 보더니 이내 사라졌다.
할머니는 야산을 떠도는 개가 마음에 걸렸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튿날 같은 장소를 찾았더니 역시 개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초코'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매일 하루에 세 번씩, 아르바이트를 가는 날엔 두 번씩 아침 저녁으로 밥을 준비했다. 비 오는 날에는 초코를 위해 우산을 받쳐줬다. 할머니는 "초코야, 아줌마가 밥 가져왔다고 부르면 다른 곳에 숨어 있다가도 모습을 드러냈다"며 "행복이가 떠나면서 도움이 필요한 초코의 존재를 알려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한 달이 지나고…손을 내미니 다가온 '초코'
매일 밥을 챙기는 할머니와 초코의 간격은 조금씩 좁혀졌고, 한 달쯤 지나자 손을 내밀어도 초코는 도망가지 않게 됐다. 할머니는 초코를 처음 쓰다듬던 순간을 기억한다. 검은색 털 사이 온몸에 진드기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로 동물약국으로 가 진드기 퇴치약을 사 먹였고, 이후 초코는 할머니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행복이를 떠나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마땅한 수입이 없는 가운데 초코의 구조와 치료에 드는 비용을 선뜻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 2014년 2월 또 다른 누더기 개 '레오' 구조 당시 인연이 닿았던 팅커벨프로젝트에 도움을 요청했다. 할머니는 "초코가 너무 불쌍해 그대로 둘 수 없었다"며 "팅커벨프로젝트가 구조와 치료에 도움을 주면 내가 키우겠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7년 전 꼭 닮은 누더기 개도 구조
할머니가 떠돌이 개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경기 부천시 한 아파트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던 할머니는 1층 아파트 베란다 밑에 살던 갈색 털의 누더기 개를 발견하고 밥을 챙겼다. 개는 할머니의 출근길을 기다렸고, 퇴근길을 배웅했다.
하지만 "누더기 개가 아파트를 돌아다녀 보기 좋지 않다"는 민원과 "잡아먹겠다"는 주민의 협박에 할머니는 팅커벨프로젝트에 구조를 요청했다. 구조된 개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심해 다른 입양처를 찾지 못했지만 지금은 '레오'라는 이름으로 황동열 팅커벨프로젝트 대표의 반려견으로 살아가고 있다. 털 색만 다를 뿐 할머니가 구조했던 레오와 초코의 생김새는 꼭 닮았다.
세 번의 포획실패 끝에 뜰채로 성공
할머니의 사정을 들은 팅커벨프로젝트는 구조에 대한 조언과 치료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황 대표는 "유기견은 구조 후 입양 보내는 게 가장 힘든 일이고, 치료비는 그 다음 문제였다"며 "할머니가 입양하기로 한 만큼 치료비 등은 전적으로 지원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초코'의 포획. 할머니는 팅커벨프로젝트의 도움을 받기 전 먼저 구조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처음에 포획틀을 구해왔지만 초코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4월 넷째 주, 모기장으로 둥그런 매미채 형태의 뜰채를 만들어 세 번의 포획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였다. 이 중 한 번은 뜰채로 포획에 성공했지만 초코가 모기장을 뚫고 탈출해 버렸다. 이에 할머니는 모기장 대신 홑이불을 뜯어 뜰채를 개조했다. 또 뜰채로 초코를 덮어 올리는 방식이 아닌 뜰채에 낙엽을 쌓아 위장한 뒤 초코가 뜰채 안으로 들어오면 위로 당겨 올리는 방법을 시도했다. 지난달 20일, 네 번의 시도 끝에 초코는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강 할머니의 평생 가족이 된 '초코'
구조 후 초코는 팅커벨프로젝트의 협력동물병원으로 이동했다. 검진 결과 오랜 떠돌이 생활 탓에 심장사상충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수년간 엉켜 있던 털을 밀어내고, 중성화 수술까지 마친 초코는 강 할머니 댁에서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할머니는 "입원했을 때 찾아갔더니 알아보고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며 "주사를 맞을 때도 입질은커녕 아프다는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순둥이였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산책을 나가니 등산로에서 초코를 오랫동안 봐 왔던 주민들이 너무 기뻐했다"며 "사람을 잘 따르고 순한 아이다. 앞으로 끝까지 책임을 다해 돌보겠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는 "도와달라, 구조해달라는 요청은 많지만 직접 개를 돌보고 구조에 나서는 분은 많지 않다"며 "어려움에 처한 개를 외면하지 않은 강 할머니 덕분에 초코와 레오 모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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