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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의 신민으로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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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라면을 마주하는 동안에는 세상의 어떤 근심과 불행도 끼어들지 못한다. 이 세상 어디선가 라면 끓이는 냄새가 퍼져 올 때면, 비로소 삶이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낀다. 부드러운 면발이 입 안에서 놀고 뜨끈한 국물 한 숟갈이 조심스레 목으로 넘어갈 때, 삶의 시간은 서둘 일 하나 없다는 듯 천천히 흘러간다. 라면이 몸으로 스며들어 삶의 허기를 채우는 시간은 짧지만 거룩하다.
라면은 평등하다. 1,000원 안팎의 돈만 있으면, 빈부귀천을 떠나 누구나 똑같은 맛을 살 수 있다. 재벌가 저택의 식탁에도, 어느 가난한 쪽방 좌탁에도 차별없이 올라 삶을 위로한다. 돈이 있다고 더 맛있는 라면을 먹을 수 없다. 이 공평한 맛의 기억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증언할 수 있다는 건 문화사적 축복이다.
5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다 숨진 19세 김군의 소지품에도 사발면이 있었다. 그 젊고 억울한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울었고, 가방에서 나온 사발면 때문에 또 울었다. 그가 뜨거운 물에 수프를 풀어 잠시 허기를 달랠 때, 노동의 고단함과 외로움도 함께 추슬렀을 것이다. 그의 생전 꿈들이 라면의 따뜻한 김처럼 모락모락 피었으리라 믿는다.
내 고등학생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정 가까이 귀가하면 어머니는 늘 라면을 끓여 맞아 주셨다. 하루 종일 애썼다고 내주는 라면 한 그릇이면 세상 부족한 게 없었다.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삶의 단단하고 따뜻한 테두리가 떠오른다. 그 테두리 안에서 모자는 행복했다. 라면을 끓이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 병상에 계신다. 시간은 사람을 늙고 무력하게 만들지만, 라면이 새긴 삶의 시간은 여전히 나의 기억 속에서 반짝인다.
삶은 결국 몇 줄 이야기로 남는다. 일생의 경험은 기억의 창고에 저장됐다 시간에 따라 소실되고 재구성된다. 그런 후 몇 개의 이야기만 추려져 삶의 의미가 각색된다. 그 이야기들 안에 라면 에피소드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라면을 떠올릴 때면, 기억의 어디선가 마음 애틋한 순간들을 만날 것이다. 한국인에게 라면은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소울푸드다.
라면은 10분 안에 완성되는 간편식이지만, 그 음식이 데운 우리 몸의 여열(餘熱)은 오래 간다. 라면을 먹고 나면 우리는 온순해진다. 그 온순함 덕으로 이 세상은 한층 평화로워졌을 것이다.
농심 신춘호 회장이 지난 3월 돌아가셨다. 농심을 한국 최고의 라면 브랜드로 키우고 세계화까지 했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신라면은 한국 라면 맛의 표준이 됐으며, 세계 어디를 가든 만날 수 있다. 그의 가장 큰 혁신은 사발면을 만든 것이다. 라면의 기동성을 높여, 우리 삶과 라면의 접촉면을 최대치로 넓혔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 생애를 ‘국민 음식’ 라면을 위해 바쳤다. 라면왕이라는 호칭은 조금의 넘침도 없다.
신 회장은 우리 삶의 시간을 그 어떤 기업가들보다 풍요롭게 채웠다. 한국 대표 기업 삼성이 반도체 신화를 일구며 사회의 진화를 이끌었다면, 신 회장은 라면의 혁신으로 우리 삶의 이야기들을 새롭게 만들었다.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1등인 한국인치고 그에게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오늘밤에도 어느 가난한 시인의 집에서 라면 끓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의 왕국에서 나는 신민으로서 행복했다. 우리 삶에 라면 한 그릇의 포만과 행복을 안긴 그에게 늦게라도 경례한다. 부디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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