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아프간전 늪에서 벗어나지만... 커지는 '내전' 우려

입력
2021.05.22 10:30
19면

3월 아프가니탄 정부군이 경계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무장단체 탈레반을 감시하고 있다. 카자키=AFP 연합뉴스

3월 아프가니탄 정부군이 경계 초소에서 쌍안경으로 무장단체 탈레반을 감시하고 있다. 카자키=AF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미국이 개입한 가장 긴 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9월 11일이면 20년이 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얘기다. 미국 본토, 그것도 자본주의 상징 건물인 세계무역센터와 세계 최강 미군의 심장부 국방부를 타깃 삼은 ‘9ㆍ11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시작된 전쟁이 드디어 막을 내리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2월 현지 무장단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약속한 철군 완료 시점(5월 1일)에 병력 철수를 개시했다.

잦아진 테러, 미군 공백 주도권 싸움?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논의됐다. 2011년 3년 후인 2014년 말까지 철군하겠다는 언급이 처음 나왔고, 상당수 미군이 실제 본토로 복귀했다. 200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1386호에 근거해 구성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중심의 ‘국제안보지원군(ISAF)’ 업무도 2014년 공식 종료됐다. 미군 대부분은 나토의 후속 임무인 ‘단호한 지원’ 수행을 위해 아프간에 배치돼 있었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은 다음, 또 한 차례 아프간 주둔 미군이 감축됐다. 이때 탈레반이 극단주의 무장세력 알카에다와 관계를 단절하는 등 합의를 지킬 경우 완전 철군도 약속했다. 올해 1월 아프간 주둔 미군은 2,500명(비공식적으로는 3,500명으로 알려짐)까지 줄었다. 미군 철수와 함께 나토군 7,000명 및 750여명의 영국군도 철수할 예정이다.

문제는 아프간 현지에서 빈발하는 테러다. 올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아프간 정부와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기반한 탈레반,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등 다양한 세력들이 미군과 나토군 철수로 생긴 힘의 공백을 틈 타 주도권을 쥐려는 경쟁 결과로 해석된다. 유엔 아프간 지원단 발표에 따르면 평화협정 체결 후 지난 1년 동안 707명이 테러로 사망했고. 이중 거의 절반이 최근 3개월 안에 숨졌다. 올해 1~3월 집계된 테러 사상자는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29%나 증가했다. 여성 피해가 특히 커 증가율은 37%에 달했다. 미국의 철군 계획이 나온 뒤 ‘불안정의 이익’을 취하기 위한 테러는 더욱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일어난 사건만해도 동부 로가르주(州) 폭탄테러(4월 30일ㆍ25명 사망), 수도 카불 서부의 여학교 인근 테러(5월 8일ㆍ80명 사망), 남부 자불주 버스테러(5월 9일ㆍ11명 사망), 동부지역 테러(5월 10일ㆍ지역 경찰서장 포함 4명 사망) 등이 있다.

급증한 테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언한 ‘5월 1일까지 완전 철군’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항의 측면도 있다. 카불 학교 테러 관련,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 소행으로 규정했지만, 탈레반 측은 IS가 배후임을 주장하며 강력 부인했다. IS는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다. 사건 직후 탈레반은 성명을 통해 모든 ‘외국군’이 떠날 때까지 아프간의 미래를 논의할 어떤 회의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군 철군 완료되는 9월까지 테러가 더 극심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탈레반과 IS 양측의 테러 경쟁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아프간은 제국주의 무덤

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여학교 인근에서 최소 80명이 숨진 차랑 폭탄테러가 발생한 뒤 유족들이 단체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8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여학교 인근에서 최소 80명이 숨진 차랑 폭탄테러가 발생한 뒤 유족들이 단체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역사적으로 아프간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무덤이었다. 영국, 옛 소련, 미국이 아프간 늪에서 헤매다가 파병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아랍계 무슬림, 몽골제국도 아프간에서 부침을 거듭했다.

하지만 미국의 바통을 이어 받아 아프간 파병을 꿈꾸는 나라가 등장했다. 중국이다. 공식 발표는 아직 없지만 지난달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정부가 아프간에 평화유지군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프간의 정치적 안정에 더해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이슬람 세력의 억제, 즉 자국 안보 위협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 중국의 파병은 육ㆍ해상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확산과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한층 거세진 미중 패권 다툼의 일환으로도 비쳐진다. 만약 10년 내에 파병이 성공하면 중국은 정치, 군사,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패권국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보인다.

서북부와 동북, 남중국 등 다양한 지역으로 힘을 분산하려는 중국과 달리, 미국은 아프간 철군을 계기로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회귀’ 전략에 주력할 전망이다. 미국의 국익 차원에서 아프간 문제는 더 이상 중심이 아닌 변두리 이슈다. 대신 바이든 행정부는 보다 공격적이고 독단적으로 변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북한ㆍ이란 핵 프로그램 등 미 본토와 동맹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안보 문제 대응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의 귀환, 내전으로 이어지나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풀 에 사르키 교도소에서 무장단체 탈레반의 죄수들이 석방되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있는 풀 에 사르키 교도소에서 무장단체 탈레반의 죄수들이 석방되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느냐를 떠나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와 관련해선 다양한 평가가 공존한다. 철군 결정으로 “미국이 국제 리더십을 포기했다”는 혹평이 많지만, 반대로 “최선의 선택” “충분하지 않아도 최장기 전쟁 종식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 긍정적 평도 존재한다.

그러나 향후 아프간 정국 전망은 비관 일색이다. 무엇보다 탈레반의 득세와 이로 인한 내전 발발을 점치는 시각이 대부분이다. 탈레반은 세속 정권인 가니 아프간 정부를 ‘정당성을 가진 지도부’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군 철수를 ‘탈레반의 승리’로 과시하기도 한다. 실제 탈레반의 힘과 영토 장악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아프간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심층 국가’ ‘국가 내 국가’ 현상이 뚜렷하다. 탈레반은 아프간 국토의 60%에 영향력을 미치고, 19%를 완전 장악하고 있다. 샤리아 등 강경 이슬람주의(수니파)를 표방하면서 여성 및 이슬람 시아파를 탄압한다. 1996~2001년 통치권을 행사하며 아프간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경험도 있다.

이런 환경과 배경을 감안하면 미군 철수는 탈레반의 귀환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가니 대통령에게 ‘임시정부안’을 제안하고,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가 주체가 되는 양자 협상에 참여하라고 설득했으나 서로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해 함께 테이블에 앉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럴 경우 아프간은 또 다시 ‘정정 혼란→내전→내전의 국제화’로 이어지는 비극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이 어렵다는 의미다. 요즘 이스라엘 공격에 신음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처럼 아프간 국민의 눈물도 마를 날이 없게 될까봐 우려된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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