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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의 섀도캐비닛을 보고 싶다

입력
2021.05.21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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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가 다시 겨울이다(하긴 늘 그렇지만). 장관 임명 독주에 대한 논란이 인사역량(사람보는 눈)을 평하게 됐다. 인사가 그리 쉬운가? 누구나 쉽게 판단하는 영역일까? 이렇게 다양하고 이해관계가 중첩한데, 과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사가 만사의 시작이다”, 끝이 아니고.

대선 판이 벌어지면 후보와 정당은 유권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약속을 쏟아낸다.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다 보니 정당의 정강과 이념에서 한참 떨어진 내용도 백화점식으로 공약집에 실리고 유권자들이 어느 정당의 공약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심심찮게 연출된다. 이는 그만큼 한국 정치가 유권자들을 향해 선명한 이념적, 정책적 차별성을 드러내기 힘든 토양임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후보의 향후 국정 기조와 정책을 좀 더 알기 쉽게 전달하는 방법은 없을까? 예를 들어 임기중에 함께 일할 국무총리 후보들을 사전에 공개한다면 대선 후보의 구상을 좀 더 가시적으로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섀도캐비닛(Shadow Cabinet, 예비내각)이다.

여러분은 대선 후보를 얼마나 많이 아십니까? 후보자 한 사람의 발자취만으로 됨됨이를 판단하기가 조심스러운 이들에게 후보자 옆에서 함께 일할 사람들이 누구인가가 사전에 공개된다는 점은 선택에 필요한 지표를 한두 개 더해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국정운영의 기축이자 민생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장관, 기관장이 누가 될지도 모른 채 한 사람(대통령)에게 5년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예측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 단계에서 조각을 하면 사람도 없고 인사를 하더라도 선거공신들에 대한 보은의 형태로 이루어지기 십상이다.

지금 세계의 생존 전쟁에는 치밀한 전략과 결연한 자기희생의 지도자가 필수적이다. 국가의 사이즈가 커지고 민주화가 진전될수록 권력자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폭과 깊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국정의 규모가 작고 일반 국민들에게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적었기 때문이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여의도와 세종의 동향을 훤히 꿰고 북미 관계, 미·중·일·러와의 관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오늘날의 유권자들에게 대통령의 인사는 더 이상 멀리 계신 나라님의 일이 아니다. 장관이 바뀌는 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꼼꼼히 따지는 국민들은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어떤 인물을 기용하는지 좀 더 긴 안목과 호흡으로 따져보기 원한다. 과연 민주주의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할 것을 기대하는 것인가? 센터포워드 한 명으로 시합을 이길 수는 없다. 좋은 진용과 꿈이 필요하다. 꿈이 내일을 창조한다.

당선 후 함께 일할 인물을 공개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 전문가의 도움과 함께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섀도캐비닛이다. 검증 끝에 지명된 인물이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대선 후보 입장에서도 자신의 국정 철학과 기조를 장황한 말로 설명하지 않고도 국민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다음 대선에선 섀도캐비닛을 모든 후보자들이 내걸고 싸워보면 어떨까? 자신이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시대의 지도자일 것이고, 아니면 뭘까?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ㆍ성균관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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