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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휴대폰 '사진 촬영 금지'인데… '급식 제보' 폭주에 딜레마 빠진 軍

입력
2021.05.20 12:00
수정
2021.05.20 13:15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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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계룡대 예하부대의 14일 아침식사 사진.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화면 캡처

17일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계룡대 예하부대의 14일 아침식사 사진.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화면 캡처

한 달째 이어지는 병사들의 '부실 급식' 내부 고발에 군 당국의 속내가 복잡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예방적 격리 중인 병사들을 통해 '편의점보다 부실한 급식' '곰팡이 핀 샤워시설' 등 군의 치부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어서만이 아니다. 병사들이 "열악한 실태를 제보한다"며 공개한 사진들이 촬영이 금지된 휴대폰을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한 식사와 열악한 격리시설을 제공한 '원죄'가 있는 군은 역풍 우려에 이 같은 규정 위반 행위를 '눈 뜨고도 봐주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를 계속 방치하다간 기밀 유출 등 보안 사고는 물론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군의 기강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016년 10월 군 복무 중인 병사가 생활관에서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폰으로 부모님과 통화하는 장면. 국방부 제공

2016년 10월 군 복무 중인 병사가 생활관에서 병사 수신용 공용 휴대폰으로 부모님과 통화하는 장면. 국방부 제공


휴대폰 추가로 몰래 반입하거나 ‘보안 앱’ 무력화

19일 국방부의 국방보안업무훈령(115조)과 '병사 휴대폰 사용 지침'에 따르면, 병사들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평일 오후 6~9시, 휴일은 오전 8시30분~오후 9시다. 그러나 해당 시간에도 사진 촬영은 불가능하다. '병사 개인 소유 휴대폰을 영내에 반입할 경우 휴대폰 보안통제체계(보안 애플리케이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훈령 때문인데, 해당 앱은 휴대폰 촬영을 차단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런 규정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부실 식판' 촬영이 가능했던 것은 보안 앱을 무력화할 수 있어서다. 가장 흔한 방법은 병사들이 휴대폰을 두 대씩 반입하는 경우다. 간부들에게 제출하는 휴대폰에 보안 앱을 설치하고, 몰래 들여온 또 다른 휴대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간부들이 몰래 반입한 휴대폰과 허용된 휴대폰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지난 2019년 군이 '병사 휴대폰 사용'을 시범 운영한 지 두 달 만에 무단 반입 사례가 284건이나 적발됐다.

일부 휴대폰 기종은 보안 앱 설치가 불가능해 카메라에 보안 스티커를 부착하는데, 일부 병사들이 스티커를 떼고 촬영하는 경우, 이를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부대 입구마다 설치된 보안 앱 기능을 해제하는 단말기를 병사들이 간부 몰래 이용해도 이를 막는 데 어려움이 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이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 근무지원단을 찾아 김승호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으로부터 격리장병용 급식과 포장 용기 등을 보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서욱 국방부 장관이 1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영내 근무지원단을 찾아 김승호 국방부 근무지원단장으로부터 격리장병용 급식과 포장 용기 등을 보고받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부실 급식’ 대부분 사실로… 처벌은커녕 속앓이만

보안사고 우려에도 군이 속앓이만 하는 것은 휴대폰 촬영을 통해 드러난 부실 급식 제보가 대부분 사실로 밝혀져서다. 국방부는 최근 계룡대 예하 부대 '부실 도시락' 제보와 관련해 일부 사례만 확인한 뒤 "모든 메뉴가 정상적으로 확인됐다"는 섣부른 해명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국방부 내부에서는 부실 급식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게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휴대폰 촬영 위반 행위를 계속 방치할 경우, 병사들에게 암묵적으로 이를 허용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이에 대한 신속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병사들의 휴대폰 촬영을 차단하지 못하면, 부대 구조나 폐쇄회로(CC) TV 등 보안 시설 위치를 외부로 노출시킬 수 있다. 군 관계자는 "규정을 위반한 병사들을 처벌하려면, 내부 제보자를 색출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적발과 처벌이 이뤄진다고 해도 실효성은 크지 않다. 장병 인권 개선 차원에서 지난해 일정 기간 구금 장소에 감금하는 징계인 '영창 제도'도 폐지됐다. 강등과 감봉은 일반 병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나마 구속력 있는 징계는 '휴가 단축' 정도다.

2014년 8월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백승주(오른쪽부터) 국방부 차관, 박대섭 인사복지실장, 김유근 육군참모차장 등이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 등 '병영문화 개선 관련' 현안 보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2014년 8월 20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백승주(오른쪽부터) 국방부 차관, 박대섭 인사복지실장, 김유근 육군참모차장 등이 윤 일병 폭행치사 사건 등 '병영문화 개선 관련' 현안 보고를 위해 대기하고 있다. 왕태석 기자


개인 휴대폰 사용은 文 정부 대표 치적

병사 휴대폰 사용 등 '장병 인권 개선' 사업이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국방과제로 꼽힌다는 점에서 군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병사 휴대폰 사용'이 처음 제기된 건 2014년 선임병들의 극심한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일병 사건'이었다. 부대 내 공중전화가 있었지만, 윤 일병은 가해 병사들의 방해로 가족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군 기강 해이와 보안 우려 등으로 도입은 지연됐다. 이후 생활관 공용으로 지급된 수신용 휴대폰 사용을 허용했고, 지금처럼 병사 개인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진 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였다. 2019년 4월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지난해 7월 전면 실시됐다. 국방부가 최근 잇따른 부실 급식 폭로에도 "휴대폰 사용은 장병들의 기본권이자 인권의 문제로 휴대폰 사용을 통제할 생각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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