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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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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자살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통치자나 장군들에게서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들의 자살은 고결한 행위로 상찬되었다. 반면 노예나 일반인의 자살은 처벌받는 범죄였다. 초기 기독교에서도 순교는 구원을 향한 헌신이었지만, 일반인이 따라 하는 것은 죄악시했다. 자살을 범죄시하는 태도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는데, 프랑스에서는 1790년까지 자살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형법 조항이 있었고, 영국에서는 1870년까지도 자살자 재산을 몰수하는 법률이 존재했다.
자살을 당사자의 비정상적 일탈이 아니라 집단적 사회 문제로 만든 것은 근대 상업 사회의 발달이었다. 상업화는 전통사회의 구조와 규범을 빠르게 퇴화시켰다. 노동 분업은 세분화되었고 기술 발전이 뒤를 이었다. 기능 분화는 심화되고 직업은 전문화되었다. 그러면서 자살은 집단적이고 대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는데, 처음에는 ‘농촌-여성-사회 하층-가톨릭 우세지역’에 비해 ‘도시-남성-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은 중산층-개신교 우세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자살률이 이어졌다. 그 뒤 자본주의 산업화와 계층 불평등이 심화됨에 따라 실업과 빈곤으로 경쟁에서 뒤처진 집단, 가족이나 공동체의 심리적 지지로부터 소외된 집단으로 자살은 확대되었다.
자살에 대한 불멸의 고전을 집필한 뒤르켐(Emil Durkheim)이 강조하듯, 현대 사회에서 자살은 개인적 요인으로 환원할 수 없는, 매우 뚜렷한 사회적 특징을 갖는다. 자살률은 나라별로 매우 일관된 패턴의 차이를 보인다. 그런 자살률을 뒤르켐은 (구성원들 사이의 결속력과 유대감을 유지시키는) '사회의 힘'을 보여주는 지표로 이해했다. 분업화된 사회 속에서 직업 생활을 하는 구성원들이 서로 협력하는 정도에 따라, 각자의 삶을 의미 있게 연결해주는 공동체 규범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나라마다 자살률이 다르게 나타난다. 사회가 힘이 있어야 구성원 개인을 보호하고 통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나 전염병처럼 큰 위기를 겪는다고 해서, 혹은 대공황처럼 경제적 붕괴 상황에 처한다고 해서 자살이 느는 것이 아니다. 소득이 줄고 실업이 늘고 가난해져서 자살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대개의 경우 나쁜 상황이 도래하면 자살률은 줄어든다. 사회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 때문이다. 자연히 공동체로서의 유대도 강해진다. 그러나 사회가 분열되어 있다면 그럴 수 없게 된다. 시련에 같이 맞서고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려는 사회의 내적 힘이 발휘될 수 없고, 공동체 정신 대신 각자도생의 욕구가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사이에 OECD 국가의 평균 자살률은 빠르게 줄었다. 우린 거꾸로 갔다. 90년대 말 자살이 크게 늘어 15년 가까이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다. ‘K방역’을 자랑하던 지난해에도 자살률은 줄지 않고 늘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힘들어도 부족해도 아파도 서로 협력하고 연대할 수 있는 사회, 서로에게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노력이야말로 정치가 할 일이자 최고의 자살률 대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노력이 있었나? 정치가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의 유대를 해체한 것은 아닐까? 정치에 대한 냉소 대신 가능성을 강조해온 필자조차, 적대하고 흥분하는 정치에 솔직히 지쳐간다. 무기력한 사회, 지친 개인은 정치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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