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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끝내 부정했던 나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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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무장친위대 '슈츠슈타펠(SS)'을 이끌며 비밀경찰 게슈타포까지 장악했던 하인리히 힘러는 7년 연상 아내 마르가레테 보데와 딸 구드룬 힘러(Gudrun Himmler, 1929.8.8~2018.5.24)를 낳았다. 입양한 아들과 혼외의 1남1녀를 빼면 유일한 혈육인 딸을 힘러는 집무실과 공식 행사장에 데리고 다닐 만큼 끔찍이 아꼈다. 금발에 푸른 눈의 구드룬은 아리안 혈통의 상징이자 나치의 마스코트였다.
딸 역시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며 존경했다. 나치 패망 이후에도, 특히 아비의 잔혹한 죄상이 폭로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패전이 확실시되던 1945년 3월 구드룬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제 우리 동맹국은 유럽에 하나도 남지 않았고, 오직 우리 힘에 의존해야 한다. (...) 공군도 엉망이 됐고, 그 떠버리(windbag) 괴링도 넋이 나간 것 같다. 괴벨스는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항상 젠체한다. 그들은 온갖 메달과 훈장을 다 챙기는데, 가장 먼저 받아야 할 아버지는 늘 뒷전이다." 4월 19일 일기에도 "총통은 병사들이 싸움을 포기할지 모른다는 말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게 잘될 것이다"라고 썼다.
열흘 뒤 총통은 자살했고, 한 달여 뒤 힘러도 영국군에 체포된 뒤 자살했다. 만 16세의 구드룬도 어머니와 함께 도망치다 미군에 체포됐다. 그는 1946년 11월 석방될 때까지 준포로 신분으로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믿기지 않는 신분의 추락을 견뎌야 했다.
하지만 그는 '믿기지 않는' 진실은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와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 범죄를 모두 부정했고, 자살한 게 아니라 영국군에 의해 살해됐다고 주장했다. 또 나치 잔당들의 도피와 생계를 돕던 비밀단체 'Stille Hilfe(Silent Help)'에 가담해 활동했고, 극우정당인 국민민주당(NPD) 당직자였던 남편(Wulf Dieter Burwitz)과 함께 신나치 운동에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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