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동정' 여론 업고 美 다그치는 中… 강대국 간 신경전으로

입력
2021.05.16 18:20
2면
구독

"국제 정의 반대편 美 탓에 유엔 성명 무산"
세계 곳곳 시위… 이스라엘 공습 중단 요구
가자지구 외신 건물 폭격… "살상 은폐 의도"
7일째 공습·포격 교전에 민간인 희생 속출

15일 외신들이 다수 입주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잘라 타워'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고 연기를 내뿜으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가자시티=EPA 연합뉴스

15일 외신들이 다수 입주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잘라 타워'가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고 연기를 내뿜으며 무너져 내리고 있다. 가자시티=EPA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국제 여론을 둘러싼 강대국 간 신경전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동정 여론에 올라탄 중국이 이스라엘을 두둔하며 양측 간 충돌을 사실상 관망 중인 미국을 다그치고 나섰다. 이스라엘은 외신들이 입주한 가자지구 내 고층 건물을 폭격해 팔레스타인 측 피해 실상을 은폐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비판을 자초했다. 7일째 이어진 양측 간 공습ㆍ포격 교전에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王毅)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샤메흐무드 쿠레스 파키스탄 외무장관과의 전화 통화에서 사태 악화의 원인으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공정한 해결책의 부재를 지목한 뒤 “특히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팔레스타인의 권리가 지속적으로 침해되며 이스라엘과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혈 사태를 막는 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급선무고 그래서 5월 안보리 의장국인 중국이 공동성명 초안을 작성했지만, 국제 정의의 반대편에 선 미국으로 인해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했다”고 성토했다.

해법은 당초부터 나와 있는 상태다. 1967년 이전 경계선을 기준 삼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별도 국가로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왕 부장은 “중국은 팔레스타인 국민의 정당한 국가 권리 회복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하며 유엔 등 국제기구가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중국의 공세가 가능한 건 글로벌 여론 지형이 약자인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기 때문이다. 당장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가지지구 공습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가 주말 세계 곳곳에서 열린 사실이 단적인 증거다. 영국 노동당 다이언 애벗 의원이 런던 이스라엘 대사관 앞 시위대에 가세해 “영토를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젠 집에서 살해당하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실제 가자지구는 엉망이 돼 가고 있다. 14일 유엔 공보국에 따르면 이스라엘 공습으로 닷새간 인구 밀집 지역의 공동주택이 200곳 넘게 파괴됐고, 집을 잃은 피난민이 1만여명이다. 학교나 이슬람 사원(모스크) 등 다중밀집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단전(斷電), 식수ㆍ음식 부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 등 삼중고에 신음 중인데, 인도주의 위기 상황은 더 심해지리라는 게 유엔의 경고다.

그런데도 전투가 멈출 기미는 안 보인다. 이스라엘은 15일 미 AP 통신과 카타르 국영 알자지라방송 등 다수 외신이 입주한 가자지구 내 12층 건물을 공습으로 무너뜨렸다. “하마스가 군사 용도로 사용하는 건물”이라는 게 이스라엘 설명이지만 다른 저의가 있다는 게 언론의 의심이다. 왈리드 알오마리 알자지라 이스라엘 지국장은 “인명을 살상하려는 자들이 가자지구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진실을 목격·기록·보도하는 언론을 침묵시키려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16일에는 하마스 지도자인 예히야 알-신와르의 자택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았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 북쪽 베이트 라이야에서 14일 여성과 어린이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나서고 있다. 베이트 라이야=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가자지구 북쪽 베이트 라이야에서 14일 여성과 어린이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을 피해 피난길에 나서고 있다. 베이트 라이야=AFP 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다. 15일 대국민 TV 담화에서 “이번 충돌의 책임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있다”며 “작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실각 위기인 그가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전시 내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위기가 반가운 건 하마스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 공격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적대적 공생’인 셈이다. 카타르 도하에 머물고 있는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대중 연설에서 네타냐후 총리에게 “불장난 하지 말라”고 경고하며 인티파다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인티파다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반(反)이스라엘 독립 투쟁을 뜻하는 아랍어다.

아직 미국은 개입을 주저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과 경제 부양 등 국내 현안 해결이 급한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 외교로 국한하더라도 ‘이란 핵합의’(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복원보다 후순위다. 실제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15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이스라엘의 자기 방어권을 재차 지지했다고 밝혔다.

10일부터 이어진 대규모 충돌로 16일 현재 팔레스타인에선 어린이 42명을 포함해 최소 153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고, 이스라엘에서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분쟁은 7일 동예루살렘 소재 이슬람 성지 알아크사 사원에서 벌어진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경찰 간 충돌로 촉발됐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경찰의 철수를 요구하며 10일 오후부터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 2,900여발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은 전투기로 1,000회 이상 가자지구를 공습했다.

권경성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