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복종할 때

입력
2021.05.17 04:30

집안일은 엄마의 전담이고 나머지 가족들은 엄마가 아플 때만 집안일을 한다는 내용을 담은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기사를 고치다보면 ‘이걸 바꿔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은 단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국민의 대체 용어로 ‘시민’을 쓴 경우, 서울·경기 외에는 어떤 특성이나 이름도 부여하지 않고 ‘지방’으로 뭉뚱그린 경우가 그렇다.

‘시민’의 사전적 의미 중엔 ‘서양에서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 국민’이라는 뜻이 있고, 언론에서는 ‘정치·사회의식을 가진 국민’의 의미로 널리, 그리고 국민보다 꽤 긍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하지만 이런 쓰임은 국가의 주체에서 군·읍·면의 주민들을 제외해 버리는 것으로 읽힌다.

‘지방’도 어느덧 멸칭(蔑稱)이 됐다. 과거 ‘서울지방경찰청’에 ‘지방’이라는 단어가 쓰였듯이, 전국적 규모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작은 지역을 평등하게 일컫는 의미는 퇴색했다. 그래서 요즘은 ‘지방’ 대신, 가치중립적인 ‘비수도권’이라는 단어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프레임의 힘은 무의식적이고 강력해서 보통 정신까지 단속한다. ‘벚꽃 지는 순서로 멸망하는 지방대’ 기사들만 쏟아내는 교육 기자의 머릿속에는 서울·경기 지역 대학들의 미달이나 어려움은 함께 다뤄볼 생각조차 들지 않을 것이다. 프레임은 복종하는 이에게 편리함과 게으름을 선사하고 창의성과 비판능력을 앗아간다.

프레임은 또 자기복제 능력이 엄청나다. 예전 별로 새롭지 않은 ‘지방대들의 위기’를 쓴 후배기자에게 “그런 기사들은 어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건 ‘다들 서울로 몰려들어라’라고 선동하는 효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학벌 사회를 비판한답시고 학벌로 차별받은 사례들만 쉽게 나열해 놓은 기사의 효과도 자명하다. 프레임을 전하는 단순한 행위만으로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

만약 ‘지방대 위기’가 정말 걱정된다면, 전국 국립대들에 대한 정권의 지원공약 이행 여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미비점을 파고들어 고발하는 게 옳다. 하지만 그런 수고를 담은 기사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 부동산이나 교육 문제에서 세태를 자극적으로 재생산하고 불안을 확산시키는 기사들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최근 ‘그나마 언론은 양반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부(어젠다기획부)에서 ‘뒤로 가는 아동콘텐츠’를 기획 시리즈로 내보냈는데, 2021년에 “가사 일은 여자 몫이고 여자는 설치면 안 되며 남자는 씩씩해야 한다”는 내용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교과서조차 다문화가정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내용을 담았다. 차별을 폭력적으로 보여주고 끝부분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한마디 덧붙이는 게 교육이라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독자는 이 교과서 문제점을 지적한 기사의 댓글에 “작년에 배웠는데 아직도 뚜렷하네요, 이걸 보고 친구가 운 걸 봐서…”라고 썼다.

일부 제작자들은 “현실을 반영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현실에 존재하는 프레임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게 뭐가 문제인가’라는 뜻이다. 그러나 여자만 가사 일을 하는 애니메이션을 100만 명의 어린이가 클릭했다면, 그 끔찍한 프레임은 100만 번 복제되는 것이다.

이런 ‘차별 전달의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좋겠다. 문제의식을 토대로 고발하고 원인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프레임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하는 게으름은 명백히 ‘악의 편’이다.

이진희 어젠다기획부장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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