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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에서 월세난민으로

입력
2021.05.1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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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중과 6월 전 매물 나온다더니…?
대통령 믿고 집 안 산 이들 벼락거지?
전세대란 월세전환에 점점 외곽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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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집값에 이어 전셋값도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브르넨청담 전용면적 219.96㎡는 2월 보증금 71억 원(5층)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역대 최고 금액으로 3.3㎡당 1억671만 원 수준이다.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3.3㎡당 1억 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1

집값에 이어 전셋값도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10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브르넨청담 전용면적 219.96㎡는 2월 보증금 71억 원(5층)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역대 최고 금액으로 3.3㎡당 1억671만 원 수준이다. 아파트 전세 보증금이 3.3㎡당 1억 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스1

부동산 시장이 6월 1일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날을 기준으로 재산세가 부과되는 데다 지난해 7·10 부동산 대책 중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도 시행되기 때문이다. 다주택자는 그 전에 집을 팔라는 게 정부 의도였다. 내달부터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집을 팔면 최대 75%의 양도세율이 적용된다. 지방소득세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82.5%다. 법인 종부세도 급증하는 만큼 6월 1일 전에 매물이 대거 쏟아질 것이란 게 정부 기대였다. 일각에선 집값 폭락론도 폈다.

그러나 5월 중순인 지금 매물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6월 1일 전에 잔금을 치러야 양도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매물은 이미 다 나왔다고 봐야 한다. 집값은 떨어지긴커녕 신고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예측이 빗나간 건 지금도 70% 가까운 양도세를 내야 하는 다주택자가 매도 대신 보유나 증여를 택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도 세금을 내고 나면 다른 곳으로 가 집을 살 순 없다. 세금만 뜯기고 집도 날아가는데 누가 팔겠는가.

앞서 정부는 지난해에도 6월 전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9년 12·16 대책을 발표하며 6개월간 한시적으로 장기보유특별공제를 적용, 매물 출회를 유도했다. 그러나 작년에도 매물은 안 나왔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양치기 소년이 된 지 오래다. 현실과 괴리된 헛다리 대책에 서울 아파트 값은 지난 4년간 2배로 뛰었다. 2017년 5월 10억 원도 안 됐던 송파의 한 아파트는 이제 20억 원도 넘는다. 상계동 주공은 3억 원대에서 8억 원대로 올랐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 반드시 잡겠다”(2019 국민과의 대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2020년 신년사)고 장담한 문 대통령만 믿고 내 집 마련을 미룬 무주택 서민만 ‘벼락거지’가 됐다.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가격이 게시돼 있다. 이날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9일 기준 2만294건으로 한 달 전(4월 9일) 2만3865건보다 6.6% 줄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3일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 지수도 169.2로 전주 대비 2.1포인트 올랐다. 뉴스1

서울 아파트 전세 시장이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 가격이 게시돼 있다. 이날 부동산빅데이터업체 아실(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전세 매물은 9일 기준 2만294건으로 한 달 전(4월 9일) 2만3865건보다 6.6% 줄었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이 발표한 3일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 지수도 169.2로 전주 대비 2.1포인트 올랐다. 뉴스1

더 큰 문제는 전세대란과 월세난민이다. 무주택자 입장에선 집값이 올라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보다 전세 폭등의 고통이 더 크다. 세입자를 위한 임대차법의 최대 피해자가 바로 세입자다. 서울 아파트 전세는 100주 연속 상승세다. 이젠 빌라도 뛰고 있다. 일부 수도권 아파트 전세가는 2년 전의 매매가도 추월했다. 결국 세입자는 ‘영끌’로 은행 대출을 받은 뒤 매달 이자를 내면서 사는 처지가 됐다. 아무리 아껴도 저축은 꿈도 못 꾼다.

그나마 전세라도 구할 수 있다면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앞으로 공공개발과 재건축·재개발 사업 등에 따른 이주가 본격화하면 전세난은 더 심해질 것이다.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다. 서울에선 월세 비중이 전세보다 더 커졌다. 하루아침에 벼락거지가 된 무주택 서민은 이제 전세대란 속에 점점 ‘월세난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경기도와 인천으로, 다시 외곽으로 밀려나며 출퇴근 지옥길만 길어졌다.

6월 1일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면 매물은 씨가 마를 수도 있다. 작년엔 5만 호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내년엔 2만 호로 급감한다. 공급이 부족하지만 빵처럼 금방 찍어낼 순 없는 게 집이다. 정부도 2·4 공급대책을 내놨지만 이를 주도할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뢰성이 추락하며 속도는 지지부진이다. 5%룰로 제한적이었던 전월세 상승이 2년 후엔 보복하듯 가팔라질 수도 있다. ‘넘사벽’이 된 집값 앞에 청년들은 가상화폐에 올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문제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며 “죽비를 맞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정책은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다. 더 벌어진 양극화에 대한 사과도 없다. 자꾸 조바심만 커진다.

1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둘째 주 서울의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9% 상승했다. 사진은 이날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1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둘째 주 서울의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9% 상승했다. 사진은 이날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시내 아파트. 연합뉴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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