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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백신 특허, 제약사가 독점해선 안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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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미국 정부는 최근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을 위한 특별한 조치로서 백신에 대한 특허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지식재산 보호를 감시하며, 막강파워 제약사들의 이익 보장에 앞장서 왔던 미국이 입장을 선회한 것은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압력이 특허라는 경제적 이익에 타격을 입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초국적 제약기업의 강력한 재산권이자 혁신의 동기로 간주되어 왔던 특허권을 무력화하자는 주장이 대체 어떻게 해서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게 되었을까.
의약품 특허는 통상 제약회사의 신약개발 노력을 보상하는 당연한 권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전 지구적으로 의약품 특허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특허는 생명과 직결되는 재화라는 점에서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었다. 전 세계가 의약품 특허를 본격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 되어서다. 그리고 그 과도기에 의약품 특허가 가진 문제에 대해 거센 비판을 받은 사건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에이즈 치료제 운동’이다.
자유무역 압박을 거세게 받던 남아공은 1996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고, 의약품 특허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7년 곧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남아공에서 에이즈 감염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렀는데, 대부분 환자들은 높은 치료제 가격 때문에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아공 정부는 공중보건 비상상황에는 특허를 강제로 무력화할 수 있는 특별법을 도입하려 했지만 제약회사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39개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남아공 정부를 상대로 국제소송을 제기했고 해당 법안이 WTO 협정 위반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렇게 시작된 남아공 정부와 제약회사 간의 소송은 전 세계적인 대규모 저항운동을 일으켰고, 미국 정부도 이러한 운동에 동의하며 제약회사는 소송을 취하하게 되었다.
제약회사들이 에이즈 치료제에 대한 과도한 이윤을 포기하자 연 5,000달러에 달하던 약값이 10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남아공은 세계에서 에이즈 치료를 받기 가장 쉬운 나라가 되었다. 특허가 무력화되어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중요한 사례이다. 남아공 운동 성과와는 별개로 에이즈 치료제는 계속 개발되었고, 현재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졌다.
2013년 길리어드사이언스사는 C형 간염 치료제 ‘소발디’를 출시했다. 이 약은 기존 간염치료제보다 효과가 훨씬 뛰어난 혁신적 치료제였다. 이러한 혁신성에도 치료제가 시장에 나왔을 때 엄청난 논란과 반발을 겪었다. 높은 가격 때문이다. 길리어드가 처음 환자들에게 제시한 가격은 1정당 100만 원. 세 달 복용에 총 1억 원의 약값이 필요했다.
충격적인 비용 때문에 약을 복용할 수 없었던 많은 사람들이 제약회사를 비난했다.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사회도 길리어드사의 탐욕에 대해 우려했고, '국경없는의사회'는 회사가 특허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제적 특허법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인도 제약회사에서 소발디의 제네릭(복제) 의약품을 생산했는데 가격은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길리어드가 가격을 이렇게 높게 제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인수합병(M&A) 비용 때문이었다. 길리어드는 소발디를 개발한 회사가 아니다. 실제 개발한 곳은 미국 공공기관에서 독립한 파마셋이라는 벤처기업으로 공공재원의 지원을 받던 작은 회사였다. 소발디 개발을 위한 임상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었는데, 의약품 개발에서 마지막 임상시험은 워낙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규모 제약회사가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길리어드는 그 회사의 평가 가치보다 훨씬 비싼 110억 달러를 들여 회사를 M&A했다. 길리어드가 소발디에 들인 노력이라는 것은 결국 열심히 연구해서 발생한 비용이 아니라, 개발회사 인수에 든 돈을 말한다. 더 큰 돈으로 인수했다면 약값이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방식은 이렇게 헤지펀드가 투자이윤을 남기는 방식에 가깝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막지한 투자가 통하는 이유는 제약회사가 가진 특허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999년 '바이옥스'는 기적의 신약이라는 요란한 광고와 함께 등장했다. 이 약은 기존의 진통제가 갖는 부작용을 극복했다는 이유로 각광받았고, 덕분에 과거에 사용되던 아스피린 같은 약들은 몹쓸 약이 되어버렸다. 바이옥스는 기존 진통제보다 수십 배 비쌌지만 광고의 힘으로 연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약은 2004년 퇴출되었다. 제약회사는 바이옥스가 환자들의 심장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숨기고 있었다. 2001년 임상시험에서도 심혈관계 부작용이 5배나 증가한다는 결과가 밝혀졌지만 규제기관은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이 약은 등장부터 대단한 혁신이 있는 것처럼 광고됐지만 과거 진통제가 가진 위출혈 문제는 물론이고 심혈관계 부작용까지 지닌 문제투성이의 신약이었다. 그러한 결함에도 지재권 제도하에 임상시험 자료를 공개할 의무가 없는 제약회사는 자료를 선택적으로 공개했다. 불리한 자료를 일부러 숨기면서, 수만 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심장 관련 부작용을 겪었고, 수천 명은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 제약회사의 독점권은 이윤을 보장받는 데는 탁월하지만, 실제 혁신의 가치를 가려내는 데에는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약회사들은 실제 혁신이 미미하더라도 광고를 잘하면 독점권으로 얼마든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독점권이 강화되어온 지난 20년 동안 특허가 정말 혁신을 일으켰다는 증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스라는 감염병이 발생하고 20년 동안 개발되지 못한 백신이 당장의 이윤에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고 본래 특허는 개발자에게 생산 노하우를 충분히 공유하도록 되어 있지만 백신은 생산과정의 복잡성 때문에 특허만으로 다른 회사가 생산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특허가 혁신을 가져온다는 단선적인 믿음을 계속 가져야 하는 것일가.
특허는 애초부터 모두의 동의를 얻어 탄생한 제도도 아니고, 모든 상황에 정답이 되는 제도는 더더욱 아니다. 특허 독점이 혁신을 낳는 유일한 답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대안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혁신을 독려하는 여러 방법들이 이미 제안되어 있다. ‘특허풀(patent pool)’ 제도는 특허권자들이 공통된 하나의 대행기관에 자신의 특허를 위탁 관리케 하고, 그 기술을 사용할 회사는 대행기관을 통해 로열티를 내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하나의 의약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개의 특허를 비교적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준다. 또 다른 방안은 건강평가기금(Health Impact Fund)이라는 제도이다. 일정 규모의 기금을 마련하여 가짜 혁신과 진짜 혁신을 구별하고, 실제 필요한 혁신에 일정액을 보상하여 특허를 구매한 뒤 이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허가 가진 혁신의 편중, 독점권의 폐단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특허의 폐단을 보완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가능하며, 이번 코로나19 상황은 이러한 논의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
경성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복지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과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 등 의약품 공공성 회복을 위한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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