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식 라면 '쏸라펀'에 담긴 삼국지 도원결의

입력
2021.05.15 04:30
<4>삼국지와 도원결의의 음식 ‘쏸라펀’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복숭아밭에 모여 결의를 다지는 장면이다.


“아무래도 이런 큰일을 시작하기에는 이 자리가 마땅하지 못한 것 같소. 이러지 말고 우리 달리 장소를 택해 예를 갖추는 게 어떻겠소. 마침 내 집 뒤에는 복숭아밭이 있는 작은 동산이 있는데 꽃이 한창 만발하였소. 내일 그 복숭아밭에서 하늘과 땅에 제사를 지내 세 사람이 사생을 같이할 의를 맺은 뒤 큰일을 시작하는 게 어떻겠소.”

이튿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전날 약속한 복숭아밭에 모여 검은 소와 흰 말을 제물로 삼고 하늘과 땅에 형제가 됐음을 알리는 제사를 지냈다. 먼저 검은 소와 흰 말의 피를 섞어 서로 나누어 마신 뒤, 나란히 향을 사르며 마련해 간 맹세의 글을 읽는 순서였다.

‘고하건대 여기 선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은 비록 성은 다르나 큰 의와 두터운 정으로 맺어 이제 형제가 되었습니다.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치어 어려울 때는 서로 구하고 위태로울 때는 도우며 위로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고 아래로 창생을 평안케 하고자 합니다. 비록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달에 태어나지는 못했으되 죽기만은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이기를 바라오니, 황천후토여 이 뜻을 굽어 살피소서. 만일 우리 가운데 의를 저버리고 형제의 정을 잊는 자가 있거든 하늘과 사람에게 함께 베임을 당하게 해주시옵소서.”

세 사람은 형제의 서열을 따라 관우와 장비가 유비에게, 그리고 장비가 관우에게 절을 올렸다. 그리고 소를 잡고 술을 걸러 널리 향리의 용사를 불러들여 먹고 마셨다.

-'이문열 삼국지 1 - 도원에 피는 의' 중에서


이게 끝인가. 삼국시대가 후한 말, 즉 2세기 말~3세기 초이니 1800~1900년 전의 일이라고 쳐도 꽤 빈약한 느낌이다. 물론 술과 고기면 충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세 영웅의 기원이자 전 10권, 4,000쪽(이문열 평역판 기준)에 이르는 대서사시 아닌가. 창대한 시작에 고작 술과 고기뿐이라니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물론 삼국지의 음식 이야기가 아주 빈약하지는 않다. 일단 세 사람이 결의를 맺은 장소가 복숭아밭이라는 사실(허구?) 자체부터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복숭아는 상서로운 과일로 장수, 영원불멸을 의미하고 나쁜 기운을 쫓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고 묘 주변에도 심지 않는다.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결의의 영속성을 상징한다. 삼국지에는 복숭아 외에도 굵직한 음식 이야기가 두 건이나 있다.

첫 번째는 관우의 ‘식기 전에 적장의 목을 베고 와서 마시겠다는 술’이다. 많이들 알고 있는 이야기다 보니 요즘은 응용된 농담도 돈다. 젊은 남녀가 소개로 만났는데, 남자가 삼국지 내공을 자랑하겠답시고 상대방에게 '관우 아세요'라고 물어본 것. 사실 삼국지는 몰라도 관우는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인데다 여성은 삼국지 마니아였다. 그래서 재치있게 '커피가 식기 전에 답해드리면 될까요'라고 받아쳤으나 남자는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어쨌든 시대와 문명 발달의 수준을 감안하면 관우의 선택은 도수가 낮은 술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증류주보다 발효주일 텐데, 데워 먹기에도 역시 적합하다. 이모저모 따져 보면 중국술 가운데는 소홍주가 이 조건에 들어맞는다.

두 번째 음식은 공명의 만두다. 제갈량이 남쪽 정벌을 마치고 귀환하는 길에 벌어진 일이다. 노수의 험한 물살에 막혀 나아가지 못하자 현지 만인(옛 중국에서 통하던 남방민족의 호칭)의 지도자 맹획이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람 머리 49점과 염소, 소를 제물로 바치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갈량은 생명을 바쳐야 하는 해결책을 거부하고 혜안을 발휘한다. 사람 머리 대신 고기를 밀가루 반죽에 싼 모조품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 것이다. 이를 ‘만인의 머리’라는 뜻의 만두(蠻頭)라고 부른 게 만두(饅頭)로 자리 잡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생각만 해도 만두가 먹고 싶어지는 이야기지만 아쉽게도 허구다. 명나라 시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실리면서 자리를 잡은 것뿐이다.

쓰촨성 충칭의 대표 음식 쏸라펀은 삼국지 세 영웅의 도원결의에서 비롯됐다. 바이두백과

복숭아밭 아래에서 만두와 술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도원결의의 음식을 살펴보자. 바로 쓰촨성 충칭의 대표 음식 쏸라펀(酸辣粉)이다. 쏸라펀은 전국구 음식으로 충칭뿐 아니라 중국 전 지역 길거리, 상점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바이두백과에 아홉 가지 조리법이 소개될 만큼 응용도 많이 됐다. 고추기름과 흑식초 위주의 국물에 말아낸 당면인 쏸라펀은 요리의 이름 그대로 시고 매운맛이 강한 가운데 땅콩, 고수, 청경채 등의 고명을 얹어 균형을 잡아 준다. 도원결의 장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복숭아밭의 주인이 그들의 인연과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고 전해 내려온다.

많은 음식이 형식이나 맛을 통해 의미와 상징을 보여주는데 쏸라펀도 예외가 아니다. 대체로 긴 면발은 장수를 의미하니, 일근면처럼 한 가닥의 면으로 사발을 채우기도 한다. 삼형제의 인연이 오래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맛은 쏸티엔쿠라(酸甜苦辣, 산첨고랄)라는 사자성어와 관련이 있다.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을 의미하는 네 글자는 세상의 온갖 고초를 의미하는데, 의형제를 맺은 세 사람이 이를 함께 이겨내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시중에는 물만 부어 먹을 수 있는 즉석 쏸라펀도 많이 나와 있다. 이용재 제공

쏸라펀은 한국에서도 쉽게 먹을 수 있다. 서울이라면 건대입구나 대림동 같은 중국음식 밀집지역의 사천요리 전문점을 찾으면 된다. 코로나 시국으로 외출이 썩 편치 않은 이들을 위한 즉석면도 있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쏸라펀’을 검색하면 다양한 제품이 쏟아져나온다. 1,000~5,000원대까지 제각각인데 가장 큰 차이는 당면이다. 싼 제품은 대체로 물만 부어 먹을 수 있는, 가는 면발의 즉석 용기면이고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굵은 당면을 맛볼 수 있다.

당면을 제외한 제품 구성은 크게 차이가 없다. 매운 양념, 간을 맞추고 감칠맛을 불어넣어주는 맛소금,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신맛의 흑초가 딸려 온다. 가격대가 높은 경우 땅콩 등 쏸라펀의 전통 고명도 들어 있다. 당면 자체가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 술술 잘 넘어가기도 하고, 먹다 보면 부산 국제시장의 비빔당면이 생각나기도 한다. 워낙 매운맛에 단련된 데다가 최근에는 마라마저 섭렵한 우리인지라 사실 맵다는 느낌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다만 즉석면을 두루 섭렵하고 나면 아쉬울 수는 있다. 조리가 간단한 만큼 구성 또한 지나치게 단출하다 보니 끼니보다 간식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재료와 조리법이 복잡하지 않아 쏸라펀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어렵지 않다. 간략히 살펴보자.

당면과 양념을 기본으로 땅콩, 청경채, 고수 등 고명을 얹으면 완성도가 높아진다. 바이두백과


쏸라펀 만드는 법

◆재료

1. 당면: 중국제품을 찾아서 써도 좋지만 전국구로 발돋움해 다양한 응용 및 조리법이 퍼진 쏸라펀인 만큼 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요즘은 동네 마트에서도 중국식 혹은 중국산 당면을 살 수 있다. 다만 즉석제품을 두루 먹어본 결과 면발이 가는 것보다는 적당히 굵은 게 입 안으로 빨아들여 씹는 맛이 좋다. 씹기도 삼키기도 엄청나게 쉬운 가는 면발일 경우 채 음미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만다. 납작 당면보다 둥근 당면이 잘 어울린다.

2. 양념: 쏸라펀 구성 요소 가운데 접근법이 가장 다양하다. 단맛을 띠는 텐멘장을 바탕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아예 건너뛰고 간장과 고추기름 위주의 조합만으로도 맛을 낼 수 있다. 텐멘장에 캐러멜 색소와 조미료 등을 더한 게 춘장이므로, ‘중국 춘장’이라 일컫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3,000원 정도면 쉽게 살 수 있다.

3. 고추기름(라오간마, 老干妈): 흑식초와 더불어 쏸라펀 맛의 핵심이다. 고추기름에 고추씨와 산초가루, 설탕, 화학조미료 등을 섞은 양념인 라오간마는 일종의 만능 양념으로, 우리에게는 볶은 땅콩과 참깨로 만드는 즈마장과 함께 훠궈 양념장의 재료로 잘 알려져 있다(즈마장과 라오간마를 5:1로 섞어 만든다). 만능 양념인 만큼 한 병 사두면 심지어 라면에도 넣는 등 두루두루 쓸 수 있다. 2,000원대로 가격도 부담 없다.

4. 흑식초(라오천추, 老陈醋): 검은색이라 간장이라 착각하기 쉬운 라오천추는 사실 중국 산시성에서 나는 식초다. 특유의 향은 강한 편이지만 그만큼 시지는 않아서 굳이 간장과 섞지 않고도 만두나 튀김 등을 찍어 먹기에 좋다. 역시 2,000원대.

5. 치킨스톡, 파우더: 전자는 액상이나 큐브, 후자는 가루인데 감칠맛 위주로 음식맛의 바탕을 잡아 준다. 굳이 중국음식 요리가 아니더라도, 갖춰 두면 끓는 물에 타는 것만으로 간단히 국물을 낼 수 있어 유용하다.

6. 고명: 땅콩, 청경채, 볶은 돼지고기, 고수 등을 올려 먹는다. 당면만으로는 아무래도 빈약하므로 고명에 의해 음식의 완성도가 갈릴 수 있다.

유일하게 조리해야 하는 재료는 돼지고기다. 팬에 볶은 뒤 건져내고 당면 삶은 물을 부어 바닥에 눌어붙은 맛성분을 알뜰하게 벗겨 낸다. 그리고 1~5의 재료를 취향껏 더하면 국물이 완성된다. 당면을 대접에 담고 고명을 얹은 뒤 국물을 부어 먹는다.

음식평론가

이용재의 식사(食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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