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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성들이 왜 죽는지, 제대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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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페미니즘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지만, 이론과 실천 모두 여전히 어렵습니다. ‘바로 본다, 젠더’는 페미니즘 시대를 헤쳐나갈 길잡이가 돼줄 책들을 소개합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최근 이준석씨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는 지난 보궐선거 기간에 개인 SNS에 “수치적 성평등을 원한다면 (여성보다 높은) 남성의 자살률을 낮춰야 한다”고 썼다. 문득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교양인)라는 책이 떠올랐다.
정신의학자인 제임스 길리건은 190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국 정부가 발간한 살인율·자살률 통계를 살펴보던 중 “살인율과 자살률이 함께 오르내리는” 현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공화당 집권기에는 수치가 늘어났고 민주당 집권기에는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책은 그 원인을 추적하고 있다.
길리건은 자살·살인 등 극단적 폭력 행동의 직접적인 심리적 원인은 수치와 치욕에 노출되는 것이라 말한다. 이는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자극받고 악화하는데, ‘해고’와 같이 사회·경제적 지위가 곤두박질치는 경험은 치명적이다. “해고가 살인”인 셈이다. 결국 노동자를 하찮게 여기는 기업과 시스템을 지지하고, 사회적 안전망인 복지를 “거지들이나 원하는 것”으로 폄하하며, 모든 걸 ‘개인 능력’의 문제로 돌리는 보수 정권일수록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이처럼 살인율과 자살률은 정치·경제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지난 10년을 대략적으로 살펴봤을 때 정권이 교체된 2017년을 기점으로 살인율·자살률이 줄었다. 2019년 경찰범죄통계를 보면 살인사건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해 365건-356건-301건-309건-297건으로 감소했다. 자살률도 마찬가지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1만5,412명에서 1만2,463명으로 줄었다가 2019년에는 1만3,799명으로 다시 늘었다.
그런데 자살과 살인 모두 남성에게서 월등하게 많이 나타난다. 2019년 강력범죄 가해자의 95.4%가 남성이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문제라는 말인가. 아니다. 폭력성을 표출하는 것이 남성다움이자 본능이라고 가르치고, 경제력이 없는 남자는 사람 취급도 안 하는 사회의 책임이 크다. 그런 와중에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는 남자들이 안정적인 수입을 통해 이른바 ‘남자 구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멸시키고 있다. 지속적인 모멸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의 '죽음의 스펙터클'을 살펴볼 만하다. 책에 따르면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돈조차 이미지가 되어버린 금융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노동력과 신경 에너지를 착취한다. 삶의 많은 부분이 비물질화되고 불확실해진다. 이런 “일상 생활의 불안정성, 노동시장의 폭력”은 많은 이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선사한다.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자살과 살인이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인은 ‘다중살인’의 형태로 드러나고, 이는 종종 자살을 목표로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남성 청년의 자살률이 걱정이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안정적인 직장은 점점 줄어들고, 매일 매일 남성 노동자가 위험의 외주화 속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가상 자산으로 몰려가 빚까지 내가며 투자한다. ‘비포’ 베라르디의 지적처럼 빚은 청년들의 발목을 붙들어 금융 시스템의 노예로 만든다. 악순환이다. 물론 이 모든 건 여성 청년들도 함께 경험하고 있다. 자살 시도는 여성이 더 많이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이나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은 표면일 뿐이다. 남성 청년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그 심층을 살펴야 한다. 이준석씨가 젠더 문제로 그의 말마따나 “잘 아는 형님과 티키타카”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남성들은 죽고 있다. 산재로,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혹은 일상적인 모욕 속에서. 그렇다면 페미니스트가 범인인가.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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