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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창·전형필... ‘미술품 수집 노력’이 박수 받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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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동안 잘 몰랐던 국외 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고동서화(古董書?ㆍ골동품 및 글씨와 그림)’를 수집하고 감상하는 취미는 조선시대 양반들에게는 도덕적 품성의 함양이나 인격 도야를 방해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조선 후기 들어 명나라 말기의 심미적이고 탈속적인 문인 문화가 파급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1700년을 전후해 서울 북촌의 안동 김씨 집안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회화 애호 풍조는, 18세기 전반에는 대대로 서울에 살며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을 지칭하는 이른바 ‘경화세족(京華世族)’들의 문인 문화로 유행했다. 고동서화를 수집하고 감상하는 취미는 18세기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박지원, 박제가 등 북학파(北學派) 계열의 문인에 의해 더욱 심화했다. 이 유행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울은 물론 지방의 중인층에게까지 확산했다.
광통교 부근 등을 중심으로 점차 그 수요와 범위가 커지던 서울의 미술품 유통과 거래는 19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뤄진 일본 고미술상의 조선 진출에 따라 이전 시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됐다. 고미술품은 경매회장에서 대중에 ‘공개’됐고, 매매 대상으로 경매회에 출품됐다. 전통적 완상의 대상이던 서화는 물론 도자와 동경(銅鏡), 칠기, 가구 등의 공예품, 불상에서 석물에 이르는 물품이 경매회장에 작품이자 상품으로 출품돼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는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 시기에는 작가와 고객을 연결하는 전문 화상(畵商)이나 화랑이 없었기 때문에, 휘호회(일정한 자리에서 시간을 정해 작품을 곧장 제작해 보여 주는 모임), 전람회, 개인전 등이 화랑의 판매 기능을 겸하는 등 작품 유통 경로는 극히 제한돼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미술시장은 고미술상과 경매시장을 중심으로 한 고미술품 거래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1922년 일본인 고미술상에 의해 일본인 거주지인 서울 남촌에 미술품 경매회사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가 창립된 이후에는 미술품 유통과 거래에 경매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1922년부터 1945년 일제 패망 때까지 활발하게 운영된 경성미술구락부는 미술품 유통의 근대적 변화에 일정한 역할을 했으나, 우리나라 고분의 도굴과 미술품 밀매를 조장하고 합법적인 유출의 장을 제공했다.
한국 근대의 고미술품 유통과 거래의 변화 과정은 일본인들에 의한 도굴과 수집 및 취향의 변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러일전쟁 전후인 1904년부터 1905년까지는 개성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의 고려시대 고분 도굴이 극심했고, 특히 1906년 3월 초대 통감에 취임한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수집에 진력하여 무수한 고려청자를 수집했다. 1910년대에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고양된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고려청자광(高麗靑瓷狂)’시대가 출현했고 일본인에 의한 도굴은 점차 그 범위가 넓어졌다. 1920년대 들어서는 도굴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대난굴(大亂掘)시대’, 1930년대에는 미술품 거래 호황기를 맞게 됐다.
1930년대가 미술품 거래 호황기가 된 건 1930년 일본이 금본위제로 복귀하면서 추진한 산금정책(産金政策)과 1931년 일본의 만주침략으로 인해 193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된 만주특수(滿洲特需)에 기인한다. 산금정책과 만주특수로 인해 조선의 경제는 이른바 ‘황금광(黃金狂)시대’라 불리는 투기의 시대를 맞게 됐고, 이에 따라 미술품 수집 활동도 활발해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고미술품을 수집한 미술품 소장가는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본인 주요 수장가로는 정치가·관료로 이토 히로부미, 고미야 미호마쓰, 아사미 린타로, 학자·교원으로는 세키노 다다시, 후지쓰카 지카시,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사업가로는 가시이 겐타로, 오구라 다케노스케 등이 꼽힌다. 이 밖에도 당시 발행된 신문 등의 기록물을 보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본인 소장가와 동호인들이 전국에 분포해 있었다.
한국인 주요 수장가로는 서화가인 오세창(吳世昌)을 필두로 정치가·관료로 박영철 장택상, 의사인 박창훈 함석태 박병래, 학자인 유자후 이인영, 예술가인 김찬영 이병직 이한복 손재형, 사업가 김성수 한상억 전형필 등이 거론된다.
일본인 소장가 중 이토 히로부미와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 야나기 무네요시 등은 소장가로서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취향과 수집방향에 따라 미술품 수집 풍조가 변화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려청자 수집에 열을 올려 ‘고려청자광시대’를 출현하게 했고,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와 야나기 무네요시는 고려청자에 경도됐던 도자에 대한 관심을 조선백자로 확장시킴과 더불어, 조선 민예(民藝) 전반에까지 인식의 폭을 넓히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와 함께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도자가 우리나라 근현대 고미술시장에서 가장 비중 있는 품목이 되는 구조를 형성하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일본인 소장가들에 의해 촉발되고 확산된 도자 선호가 당시에는 물론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소장가 개인의 취미와 애호가 개인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해당 시대의 미술 인식과 선호도를 변화시키고 후대의 미술시장 구조에까지 영향을 끼친 실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근대 한국인 소장가들의 고미술품 수집은 전형필 등 몇몇 소장가를 제외하면 소장품의 질과 양적인 면에서 일본인 소장가들에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고미술 시장에서 한국인 소장가들은 제대로 된 물건을 취급하지 못하고 변변치 못한 소품이나 수집한다는 의미로 일본인 소장가들에게서 ‘수적(水滴: 연적)패’라는 비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오세창과 박영철 이한복 손재형 박병래 전형필 등은 동시대 한국인 소장가들의 수집 활동과 후대의 미술품 인식에 큰 영향을 줬다. 오세창은 박영철 박병래 전형필 등에게 전통문화와 미술품 수집의 중요성을 역설해 이들이 수집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격려하는 등 우리나라 근대기 수장가들의 수집 활동과 미술시장 전반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박영철은 경성제국대학에 자신의 수장품과 진열관 건립비를 기증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진열관 건립의 터전을 마련했다. 서화가·전각가인 이한복과 서예가 손재형에 의한 추사 글씨 애호와 선양 노력은, 추사의 예술을 일반에 널리 알리고 현대에까지 이어지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세창의 지도와 격려 속에 전형필이 전 재산을 들여 우리 미술품의 일본 유출을 막은 숭고한 노력의 결과가 간송미술관과 그 소장품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50여 년간 정성을 다해 수집한 조선백자 수백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모두 기증한 박병래는 후대 수장가의 귀감이 됐다.
오세창의 활동, 전형필의 간송미술관과 그 소장품, 박병래 수집 도자의 국가 기증 등은 미술품 수장가들이 민족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 모범적 예다. 또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손재형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대한해협을 건너 도쿄로 가서 후지쓰카 지카시에게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양도받아 우리나라로 무사히 가져온 사실은 미술품 소장가의 미술품 수집을 위한 노력과 정성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근대의 미술품 소장가와 수집활동 등에 대해 주목하지 않았던 것은 근대 이후 빈발한 도굴, 밀매, 밀반출, 위조 등 불법적인 사례에 따른 영향이 크다. 그러나 근대 미술품 소장가들의 영향에 의해 형성된 미술시장의 구조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고, 당시에 형성된 미술품 평가 기준과 심미안이 지금도 일정 부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은 미술품 소장가와 미술품 수집활동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현대의 주요 소장가들을, 우리의 전통을 재발견하고 문화 인식의 지평을 넓힌 공로자로 높이 평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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