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거면 왜 나랑 여행하는데?” 서럽디서러운 인생 여행 한 토막

입력
2021.05.15 10:00
<163> 한국-프랑스 부부의 싸움의 기술, 대화의 기술

호흡을 맞춰 불어야 소리를 내는 피리. 화음은 서로의 믿음으로부터 울려 퍼진다. ⓒ강미승

코로나19 대유행 초창기 부부 사이에 일어날 두 가지 사건을 예측한 해외 뉴스가 있었다. 임신율이 높아지거나 이혼율이 높아지거나. 전자는 두문불출하니 둘이 별달리 할 일이 없을 거란 이유 때문에, 후자는 각자 자기만의 여백이 그만큼 사라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요 근래 후자의 예측을 지인으로부터 체감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기폭제였을 뿐 전적인 이유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자가 격리하듯 붙어사는 우리 부부의 싸움 일화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인생 여행 한 토막을 늘어 놓는다.

과테말라의 툴룸 근처에서 한국인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신혼여행 중이라 했는데 혼자였다. 호주 출신의 남편과 대판 싸웠단다. ‘그러고 보면 우린(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자) 대단한 궁합이지!’라고 위안하지만 당연히 티격태격한다. 기본적으로 국적이 달라 이해의 범위와 경중에 차이가 있다. 둘 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소통하는 한계점도 있다. 여행이 장기전이었던 데다가 24시간 내내 껌딱지처럼 붙어 있었던 현실. 돌이켜보면 안 부딪히는 게 오히려 기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도 여행의 위기가 찾아왔다.

싸움의 발단은 버튼 하나였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로 가는 버스 안에서 탕탕은 카메라 렌즈를 교환할 때 사용하는 버튼이 사라졌다고 야단법석이었다. 그는 카메라 가방 안에 떨어졌을지 모른다고 했고, 난 그날의 최종 목적지인 오타발로에 도착한 뒤 확인해보자고 했다. 여기서 카메라 가방을 여는 건 우매한 일이다. 고가의 장비를 선보여 현지인의 견물생심을 시험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난 재빨리 짐칸으로 갔다. 탕탕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홀로 모든 짐을 내리며 은근히 칭찬이라도 기대했는데, 상황은 정반대로 흘렀다.

"도와줘서 차~암 고맙다." 눈빛은 결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이어 "그래, 넌 바나나 먹는 게 더 중요하겠지"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핏대를 세운 말이 오고 간 후에야 그가 비아냥거리는 이유를 알았다.

탕탕은 버튼이 버스(bus) 안에 떨어졌을지 모른다고 말했고, 난 박스(box) 안에 있을지 모른다고 이해한 터였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영어로 소통한다. 당시 그는 종종 자기만의 영어를 창조했다. 불어를 영어라 우기기도 하고, 세상에 없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고로 난 버스를 박스로 알아들었다. 박스를 그의 카메라 가방이라고 응용 해석까지 했다. 그랬으니 난 그가 소중해 마지않는 카메라를 무시한 배신자요, 버스 안에서 바나나 칩으로 허기만 달래던 탐욕자였다. 충분히 사정을 설명했지만 탕탕의 한결같은 답은 “No!”였다.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이었다.

사키실리 가축시장에선 정신을 단단히 붙들어 맬 것. 인디오와 동물의 물살에 직립 보행조차 버겁다. ⓒ강미승

당시 우리의 체력 및 정신 상태를 설명하자면 없던 싸움도 벌어질 터였다. 에콰도르 킬로토아 루프에서 이틀간 죽음의 트레킹을 한 후, 단 한대뿐인 새벽 3시 버스에 올라 하릴없이 가축시장을 찍고, 큰 배낭을 맡긴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긴 후 키토행 버스에 오른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방전 상태였던 것이다.

억울했다. 내가 의도적으로 그에게 해를 입히려 했단 말인가? 왜 내가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그는 날 코너로 몰아세웠다. 의식의 흐름은 점점 부정의 정점에 달했다. 애당초 ‘그놈의 버튼’을 잃어버린 건 네가 아니냐? 코딱지만한 물건보다 내가 못하다는 말이냐? 생각할수록 서러웠다. 버스가 떠난 그 자리에서, 나에겐 없다 생각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시간을 끌어봤자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는 이미 터미널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25kg의 큰 배낭을 어깨에 얹어줄 조력자가 사라졌다. 전봇대에 의지해 들쳐 업는데 또 몹쓸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오타발로행 버스 바닥까지 눈물로 홍수를 이룰 판이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말을 걸려 해도 그는 그저 화가 났을 뿐이라고 대화의 꼬리를 싹둑 잘랐다. 나의 생각은 점점 무덤을 팠다. '이럴 거면 나랑 여행은 왜 같이하는데? 차라리 너 혼자 여행해.' 함께 있음에도 우린 이미 이별한 상황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마주한 키토의 종합버스터미널. 저 파란 하늘이 더욱 원망스러웠던 날이다. ⓒ강미승

5시간 후 슬슬 말을 붙였다. 그 사이, 탕탕은 이 작은 인디오 마을에서 현대 문명의 버튼을 대체할 뭔가를 찾은 모양이었다. 이제 상처를 긁을 시간은 지났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한 바를 다시 말했지만 그는 여전히 뭐 씹은 표정이다. 가뜩이나 말썽이던 기계에 부속까지 없어졌으니 아예 카메라를 잃은 심정이었단다. 안다, 아는데 내가 속상한 지점은 거기가 아니다. 왜 날 그리 생각했냐는 섭섭함이었다. 그의 반론은 '역지사지'였다. 그러나 내가 예상한 답은 아니다. 그는 결국 이렇게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이 페이지를 찢어버리자.” 열과 성을 다해 대화했음에도 쳇바퀴를 도는 사건은 묻어두자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더 찢을 페이지조차 없으면 어떻게 하지? "다른 책을 써 내려가면 되지."

부디 굳게 걸어 잠긴 서로의 빗장이 열리길. 대화가 그 길을 안내할 것이다. ⓒ강미승

그것 참 심플하다. 웃고 말았다. 이후 부부가 된 우리의 싸움 규칙은 동일하다. 피하지 않는다. 대화의 문을 열어 둔다. 각자의 감정을 터트리고 충분히 핑퐁식 말을 주고받는다. 다만, 시간를 두기도 한다. 낮에 그렇고 그랬던 일을, 밤에 베갯머리에서 이야기할 때도 있다. 감정을 숨기는 것 역시 반칙이다. 습기가 찬 마음엔 곰팡이가 자라기 마련이니까. 자주 그리고 충분히 대화하는 게 옳다는 걸 더 깨닫는 요즘이다. 인생이 여행이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뿌리다와 탕탕의 지금은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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