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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만 평등하자는 게 페미니즘은 아냐...장애인·성소수자 등도 끌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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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Korea의 앞글자 ‘K’와 ‘장녀’의 합성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거부할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됐을 때 다른 여성들이 그 역할을 떠안고 그들의 종속적 지위가 지속된다면 성찰이 (성차별적) 구조를 변화하는 데 기여하지 못한 것이다. ‘내 파이를 구하는 것’은 문제의식의 시작이 될 수 있지만, 거기서 끝난다면 내 권리를 찾겠다는 운동으로만 얘기를 해야지,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대놓고 할 때라고 생각한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페미니즘은 보편적 여성 집단을 정해두고 그들만의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이 아니다. 누가 가장 고통을 받았는지만 따지는 운동도 아니다. 성소수자와 장애인, 비정규직 등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여성들을 특수한 경우로 치부하고 외면하는 운동이 될 수도 없다. 여성으로서 당하는 차별과 억압은 저마다의 개별적 상황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은 사회에 뿌리내린 성차별주의의 억압과 착취를 타도하고 모두의 평등을 이루는 운동이자 관점이어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는 지난 8일 한국여성학회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한 ‘차별금지법과 함께 전진하는 페미니즘’ 토론회에서 나왔던 논의들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여성 개개인의 권리 찾기 정도로만 사회에 알려지고 있다는 우려가 이번 토론회의 배경이 됐다. 여성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하고 권리 되찾기에만 집중할 때, 오히려 사회 전체에 뿌리내린 성차별적 구조를 포착하고 바꾸기가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다.
이날 발제자로 나섰던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배타적으로 강조할 때, 그 경험 자체가 진리인 것처럼 이야기된다”면서 “더 이상 페미니즘에 대한 지식, 앎이라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태도로 이어진다”고 경계했다.
이러한 주장은 페미니즘이 여성의 권리를 말할 때, 그 여성이 하나의 집단이 아니란 점을 드러낸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경력 단절을 예방한다고 육아휴직 제도를 확대하고 있지만 정작 육아휴직자의 대체인력으로만 메뚜기 뛰듯 비정규직으로서의 삶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다”라면서 “어떤 하나의 사유에만 집중하게 되면 사실상 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전부 포섭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급진적 여성주의) 또는 생물학적 여성만의 권리를 주장하는 터프(TERF)가 페미니즘의 대표주자, 선두주자로 알려지고 보도되는 세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11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보수적 종교집단이 동성애 반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 사회에 확산한 혐오의 정서가 (터프의 부상에) 토양이 됐다”면서 “종교 집단 이외의 다른 집단에서도 혐오의 목소리를 겉으로 당당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페미니즘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연구자들은 강조했다.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성별뿐만 아니라 성적 지향과 성적 정체성, 장애, 나이, 언어, 국적, 피부색, 출신지역 등 23가지 차별 사유를 두고 이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들 사유가 얽혀서 나타난 경우도 차별을 시정하도록 했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렇게 정체성별로 사유와 제도를 나눠놨을 때 생기는 구멍을 메운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여성만 평등하자는 것이 페미니즘은 아니다”라면서 “오로지 남성과 여성 사이에 평등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페미니즘의 초기 이론이고 요즘 페미니즘은 관점이라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페미니즘은 젠더(사회적 성별)라는 렌즈로 사회를 해석하고 차별의 지점을 찾는다"며 "그렇게 됐을 때 최종적으로 여성만이 아닌 모두의 평등을 획득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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