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행 막은 엄마 덕에 코이카 산증인 됐죠"

입력
2021.05.13 04:30
<45> 코이카 해외사무소 1호

편집자주

인도네시아 정부 공인 첫 자카르타 특파원과 함께 하는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 통일)'의 생생한 현장.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첫 해외사무소인 인도네시아사무소에서 30년간 일하고 올해 퇴임하는 헬리씨.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30년간 한자리를 지켰다. 그의 인생 절반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ㆍ코이카)의 역사다. 그는 코이카가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사무소를 열기 전부터 지금까지 고락을 함께한 산증인이다. 올해 6월 말 정년을 앞둔 그를 자카르타 도심 코이카 사무소에서 만났다. 그의 인터뷰를 소개말 형식으로 풀었다.

헬리(왼쪽)씨가 2009년 인도네시아 아체특별자치주 지원 사업 행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코이카 제공

안녕하세요. 헬리(59)입니다. 성이 '이'씨인 한국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해요. 장성한 3남매의 엄마랍니다. 1991년 10월부터 코이카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듬해 인도네시아사무소가 설립되기 전까지 한국대사관 소속이었죠. 4개 사업 분야 행정 사무를 맡았어요. 당시엔 한국인 직원 두 명과 제가 전부였지요. 현재는 한국인 직원 열 명, 현지 직원 열 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래 인도네시아 주재 홍콩 영사관에서 근무했어요. 중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는데 엄마가 학업은 몰라도 거기 가서 직장을 얻고 사는 건 반대해서 포기했죠. 마침 한국 회사(코데코)에 다니던 삼촌이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라 부지런하고 의욕이 넘치니 지원해보라고 해서 원서를 냈어요. 한국 건설회사와 코이카에 붙었는데 미래를 보고 코이카를 택했어요. 양국 협력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헬리(왼쪽 네 번째)씨와 일하는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직원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처음엔 사무실도 없고, 사람도 적어서 힘들었어요. 2004년 아체 쓰나미 때도 한국인 두 명, 현지 직원 두 명이 대응했는데 구호 물품을 신속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찰과 다투기도 했죠. 그래도 1995년 석사과정 연수생 초청 사업이 생기면서 일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돌아온 친한파 연수생들이 정부 부처와 대학 강단에서 일하는 걸 보면 뿌듯해요. 고위직에 오른 사람도 많답니다. 업무 지침을 만들고 연수 기준을 정리한 일도 자랑하고 싶어요.

한국 친구도 많아요. 봉사단으로 왔다가 여전히 연락하는 젊은이들도 있어요. 열심히 일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자극받았어요. 일제로부터 독립한 날(인도네시아는 8월 17일) 등 역사적 배경도 비슷한 한국이 빨리 성장해서 다른 나라를 돕는 공여국이 됐다는 게 놀랍습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리 유명하지 않았어요. 지금은 제 딸도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을 만큼 한류가 막강하죠.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 인도네시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헬리씨.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겪어볼수록 한국은 인도네시아와 비슷한 것 같아요. 연장자를 존중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다만 인도네시아 문화를 조금만 더 공부하고 현지인들을 대했으면 좋겠어요. 차차 좋아지리라 믿어요. 한국은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바뀐 나라잖아요. 저력이 있죠.

퇴직 후엔 친구와 함께 여성역량개발센터를 만들어볼까 해요. 코이카 덕에 배운 지식을 나누려고요. 무엇보다 열악한 지역 사람들에게도 배움의 길을 열어준 코이카는 인도네시아의 은인입니다. 늘 감사합니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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