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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삭스 "한국 자동차 기업, 2030년대는 내연차 팔 생각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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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탈(脫)탄소화에 왜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하는지 의아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통제 불가능한 기후위기가 인류에게 끼칠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12일 열린 한국포럼에서 한국, 미국 등 주요국의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강력히 촉구했다. '지구의 미래,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40분간 진행된 화상 대담에서 삭스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녹색 기술'을 통해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자동차, 철강, 조선 등 한국이 강점을 지닌 전통적인 '굴뚝 산업'부터 바꿀 것을 강조했다. 한국이 뛰어난 기술 역량과 인적 역량으로 재생에너지 등 녹색 기술의 선도 국가로 자리매김하면, 환경 문제 해결은 물론 미래의 국가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삭스 교수는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인프라, R&D(연구개발), 규제, 세금 등 여러 수단을 통해 기업의 탈탄소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인프라에 투자할 수 없도록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정부도 2025년까지 그린뉴딜에 73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혀둔 상태다. 다음은 홍 교수가 묻고, 삭스 교수가 답한 일문일답.
-미국 바이든 정부는 2조2,500억 달러(약 2,500조 원) 규모의 경기 부양안을 내놓으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망, 물 공급망, 디지털 인프라, 전기차 충전소 등 새로운 사회간접자본 투자 계획을 밝혔다.
"적극 지지한다. 미국은 오랫동안 기후변화 문제에 뒤처져 있었다. 텍사스, 루이지애나, 와이오밍, 노스다코타, 웨스트버지니아처럼 화석 연료를 생산하는 주가 많고 석유, 천연가스, 석탄 회사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공화당과 전임 트럼프 정부는 기후변화 문제에 등을 돌려왔다. 이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기후변화 해결과 코로나 이후 빠른 경제회복이라는 이슈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이미 많은 대화와 조언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2050년 탈탄소'를 목표로 여러 전략을 세웠다.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곳에 자금을 지원하고, 전기차를 개발하고, 중공업 분야에서 수소경제를 완성하는 것이다. 로비나 의회 등으로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바이든 정부의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기후변화 정책은 크게 '완화(mitigation)'와 '적응(adaptation)'으로 나눌 수 있다.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완화(감축)가 우선이다. 두 가지 모두 노력해야 하겠지만, 기온이 급격하게 상승한다면 적응 정책은 시도조차 못할 것이다. 가령 지난 30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온이 상승하면 해수면 상승, 폭우, 홍수, 가뭄, 폭염, 산불과 같은 기상이변이 통제 불가능해질 것이다."
-뉴욕시도 해수면 상승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언제쯤 그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하나.
"내가 사는 뉴욕 맨해튼도 섬이라 해수면 상승 위험이 있다. 이미 2012년 허리케인 샌디 때 수백억 달러의 피해를 입었고, 9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지역은 복구 중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로 남극 서쪽 빙산이 심각하게 붕괴되면 해수면이 수 미터 상승할 것이라 한다. 그 시기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처럼 10년간 0.2도씩 기온이 오른다면 더 당겨질 것은 확실하다."
-미국, 유럽 등의 에너지 전환 정책을 지켜봐 왔다. 한국도 지난해 말,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는데, 한국에 조언한다면.
"에너지 전환의 방향은 전력화다. 발전 분야는 석탄발전 비중을 줄이고, 전기차 전환도 반드시 필요하다. 난방과 음식 조리도 히트 펌프나 다른 기술로 전력화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2050년까지 탈탄소하려면 5, 6개 전략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비용, 국가 안보에 끼치는 영향 등도 평가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나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들이 지난해 '탄소중립 행동계획(Zero-carbon Action Plan)'을 만들었다. 6~7개 핵심 시나리오 안에는 △원자력 사용 유무 △탄소 포집 저장 기술 활용 유무 등에 따라 미국이 해야 할 일들을 담았다. 계획 발표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 세부적인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먼저 시나리오를 만든 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구체적 시나리오를 보면 생각보다 탄소중립이 실현 가능하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간 미국 내에선 '탈탄소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성공할 수 없다'는 보수적 의견이 많았지만, 시나리오를 통해 가능성과 기술과 필요한 금액을 제시했다. 적정한 자금으로 탄소중립 달성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시나리오를 만들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현재 6% 정도다. 일본은 약 20%고, 중국도 20%에 근접하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어떤 에너지원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할지가 과제다. 원자력이 일부 역할을 할 수 있다. 태양광도 방법이다. 해상풍력 발전의 가능성도 있다. 세계적으로 해상풍력 발전의 단가도 크게 떨어졌다. 한국이 중국, 일본 등 이웃 국가들과 상호 연계된 에너지 시스템(슈퍼그리드)을 구축하는 방법도 있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자국 내 시스템을 고집하겠지만, 지역에 따라 풍량, 일조량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역내 협력이 더 효과적이다. 물론 한국에는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문제일 수 있지만, 가능성에는 주목해야 한다. 한반도 내에서만이라도 수력발전을 협력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세와 탄소국경세 도입을 거론한다. 글로벌 기업들도 RE100(기업이 쓰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캠페인)을 선언한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탈탄소 압력이 얼마나 빨리 현실화될까.
"주요 분야에서 저탄소로 가는 이동이 활발할 것이다. 한국 자동차 기업은 2030년대도 내연기관차를 팔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 폭스바겐, GE,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경쟁자는 이미 테슬라다. 한국의 주요 산업인 철강업도 마찬가지다. 최근 유럽의 여러 CEO(최고경영자)들을 만났을 때, 기업들이 탄소중립 제철소 건립(철강 제련 과정에서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쓰는 공법)을 논의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유럽은 수소를 이용한 제조,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 철강 산업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은 기술도 뛰어나고 R&D 투자도 많다. 또 청년들이 과학, 기술, 공학, 수학을 체계적으로 배운다. 한국의 이런 점은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철강 기업 포스코도 2050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동아시아는 수소경제로의 전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일본과 호주는 수소경제 구축에 있어 힘을 모아왔다. 역내 수소경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해 EU와 한국은 배출권 거래제를, 다른 나라는 탄소세를 도입했다. 어떤 수단이 더 효과적인가.
"배출권 거래제는 복잡하고 기준도 모호하다. 또 5~15년 이후에 대한 선명한 메시지가 없다. 그래서 탄소세와 배출권 거래제,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탄소세를 고르겠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지금부터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탄소 관련 세금을 올려서 2030년, 2035년이 되면 세금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기업들에 각인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투자를 고려할 때 반드시 친환경성을 따지도록,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한 인프라에 투자해봐야 수익성이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줘야 한다. 인프라, R&D, 규제, 세금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세계적으로, 모든 영역에서 변화를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저출산 고령화 등 기존 사회경제 이슈에 비해 후순위로 밀린다. 정치인들도 그렇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지구의 온도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1.2도 높아졌고 기상이변이 더 빈번해지고 파괴력도 더 커졌다. 한국은 미래의 트렌드에 강하다. 30년 전 삼성을 방문한 이후, 그 기업이 글로벌 리더로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삼성은 디지털화라는 세계적 흐름을 읽었다. 미래 시장 흐름은 녹색 기술일 것이다. 이웃 국가이자 거대 시장인 중국은 이미 탈탄소로 가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수조 달러가 투자된다는 얘기다. 한국은 국내 환경 보호뿐 아니라, 세계가 필요로 하는 녹색 기술을 제공해야 한다."
1983년 29세의 나이로 하버드대 최연소 정교수가 된, 학문적 탁월함을 인정받는 경제학자다. 폴 크루그먼, 로렌스 서머스와 함께 세계 3대 경제학자로 꼽힌다. 미국 태생의 엘리트 경제학자이면서도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성장, 아프리카 빈곤 문제, 지구적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현실 참여를 지향한다. 한국일보와의 대담에서 그는 "변호사인 아버지가 법정에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것"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주요 저서로는 '빈곤의 종말', '지속가능한 발전의 시대', '커먼 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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