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중앙정보부는 1974년 ‘인혁당 재건위’가 북괴의 지령을 받아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조종하여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한다는 사건을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재야운동가와 학생 등 1,000여 명을 연행하고, 그중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이하 ‘우홍선 등 8인’)을 직장이나 집에서 체포한 후 구속했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과 경상북도 경찰국 등에서 파견된 경찰관들은 중앙정보부 지하 보일러실 등지에서 우홍선 등 8인을 조사하였다. 잠을 재우지 않고 철야조사를 하고, 야전침대봉으로 구타하고, 물고문, 전기고문과 같은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비상보통군법회의는 1974년 우홍선, 송상진, 서도원, 하재완, 이수병, 김용원, 도예종, 여정남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을 확정했다. 그 후 우홍선 등 8인은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후 그다음 날 4월 9일 새벽 4시 55분경부터 약 4시간에 걸쳐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했다.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최악의 인권유린 사건으로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었다. 그 무렵부터 유족들도 적화통일과 국가변란을 바라는 사회 불순세력의 가족으로 매도당하고 멸시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서울중앙지법은 2007년 재심 재판에서 우홍선 등 8인에 대하여 수사기관에서 자백은 가혹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국가는 인혁당 재건위 관련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유족에게 245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도 나왔다. 그런데 대법원은 2011년 불법행위로 인한 위자료청구권이 인정되는 경우 그 지연손해금의 발생 시기에 관하여 사실심 변론종결 시부터 기산해야 한다고 했다. 기존 판례처럼 불법행위 시부터(1975년) 지연손해금을 기산하면 배상액이 과다하여 과잉배상의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피해자들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고, 재심에서 무죄판결이 나온 후에야 배상청구를 하였다. 국가의 불법행위 시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다음에 배상청구를 하니, 배상액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은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기존 판례를 변경하여 국가의 배상금 지급책임을 피해자들의 손해로 전가시켰다. 그런데 피해자들은 하급심의 가집행 판결에 따라 65%가량의 배상금을 이미 지급받은 상태였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배상금을 깎는 판결을 하다 보니, 받은 배상금을 되돌려 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돈을 토해내지 못한 피해자의 집은 경매될 지경에 처했다. 대법원이 과거에는 죄 없는 자들을 형장으로 보내더니, 오늘날은 그 유족들을 국가의 빚 독촉에 시달리게 만들고 있다.
국정원은 2013년 피해자 77명을 상대로 251억 원의 부당이득반환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승소했다. 지급받은 배상금에 지연이자까지 붙여지니, 2017년에는 받은 돈의 95%를 반환해야 할 액수가 되었다. 지금은 피해자들이 받았던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반환해야 할 정도로 불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9년 대통령에게 부당이득금 반환 문제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의 구제방안을 마련하라는 의견 표명을 했다. 다행히 2020년 발의된 ‘국가채권 관리법’ 개정안은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관련하여 국가의 과오 지급 등으로 발생한 부당이득반환채권을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부디 이 법이 통과되어 인권침해를 한 국가가 진정으로 사과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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