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여성이 더 우울하다' 썼더니 쏟아진 악플... 저자가 답했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 여성은 왜 우울할까, 왜 남성보다 우울증에 많이 걸릴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 가운데 여성(67%)은 56만1,442명으로 남성의 2배가 넘는다.
건강의 사회적 불평등을 연구해온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가 여성을 우울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호르몬 때문만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여성에게 더 많이 지워진 가사노동과 양육부담 ▲직장과 가정에서 완벽하기를 요구 받는 상황 ▲청년의 경우, 남성보다 열악한 취업시장 등을 대표적 원인으로 꼽았다. 한국사회가 남성보다 여성의 우울증 발병 스위치를 더 많이 눌렀다는 뜻이다. 해당 주장이 보도된 이후(본보 4월 16일자), 포털에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논리적 비판도 있었지만 ‘거울을 봐서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는 악의적 댓글도 있었다.
지난달 22일 서울 흑석동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댓글을 읽으며 답변했다. 이 교수는 “연구는 여성을 우울하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짚은 것”이라면서 “남성 역시 가부장제에 고통 받아왔고 이러한 문제를 직시해야 사회를 통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살률의 경우 “자살 시도는 여성이 월등히 많다”면서 “숨지지 않았다고 덜 우울하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제 책 ‘여자라서 우울하다고?’의 내용을 모든 남성이 여성보다 행복하다 혹은 우울하지 않다라고 잘못 받아들인 것 같다. 모든 남성이 100% 우울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성도 가부장제와 생계부양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남성의 자살률도 중요한 사회적인 문제이고 개선해야 한다. 그럼에도 삶이 성별에 따라 달라져 여성이 높은 우울을 경험하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편가르기를 생각하기보다 현실을 제대로 보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서 성별을 떠나보자. 오래 실업을 경험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고통 받고 정신적으로 취약해지는데 그런 부분을 “아니야. 다 같이 힘들어. 누구는 이 세상에 안 힘들겠어”라고 얘기한다면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는 되묻고 싶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어려움을 겪는 집단의 현실을 똑바로 봐야 개선할 수 있다.
맞다. 남성의 자살률이 여성보다 두 배 높다. 책에서도 다룬다. 다시 강조하지만 남성 자살률도 문제다. 그러나 모든 조사에서 여성의 자살 생각과 시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세계적으로 자살률 연구에서 남성은 자살을 완료하는 확률이 여성보다 높다. (남성이 더 위험한 방법을 사용하는 등) 남녀의 사회 문화적 행동방식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남성의 자살률이 높게 나오는 점이 여성의 우울 수준이 남성보다 낮거나 비슷하다는 근거가 되기 어렵다.
또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우울해야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다. 남성의 자살률이나 알코올 중독, 여성의 자살 시도율이나 자살 생각, 우울증을 비교해서 두 집단이 굉장히 비슷하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수치는 (정부의) 자살예방백서를 비롯해 여러 사회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꼰대적 시각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시나? 전후 어머니들, 조선시대 어머니들, 이렇게 끊임없이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하는 가치관에 기반해 생각해야 한다. 가치관과 현실이 얼마나 어긋나 있는지 생각한다면 (현재의 여성과) 과거의 어머니를 비교할 수는 없다. 1970, 1980년대 어머니들은 가정에서 권한이 전혀 없고,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말에 ‘따르면서’ 힘든 시절을 겪었다. 맞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정신건강에서는 가치관과 현실의 어긋남, 긴장이 굉장히 중요하다. 청년 여성들은 옛 세대보다 자유롭고 꿈을 실현하고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발생하는 괴로움들을 고려해야 한다. (세대에 맞춰서 긴장도를 따져야 한다는 뜻)
호르몬을 여성 우울의 궁극적 원인으로 여기는 시선이 보편화됐는데 의문을 제기한다. 조선시대에는 현대적 의미의 사춘기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우리는 사춘기가 무조건 호르몬이 폭발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시선이다.
산후우울증의 경우, 일하는 여성보다 전업주부가 산후우울증을 훨씬 많이 경험한다. 호르몬을 춤추게 하는 요인은 사회적 상황인 것이다. 의학에선 우울증의 원인을 호르몬과 사회적, 심리적 요인을 아울러 말한다. 나는 궁극적 원인은 사회에서 온다고 주장한다.
여성이 정신질환에 취약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여성의 뇌가 더 쉽게 고장이 난다거나 여성의 특성이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면서 누적된 사회적 불리함 때문에 여성이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를 개선하면 당연히 여성의 정신건강도 좋아질 수 있다.
의학적 치료는 당장 우울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만 새로운 환자는 또 생기기 마련이다. 궁극적 해결책은 사회 환경을 바꿔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여성은 외모에 대한 강조에 시달린다. 요즘엔 남성도 몸을 가꿔야 하는 풍조가 있지만, 거식증은 대표적 여성 질병이다. 식이장애를 겪는 사람 가운데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다. 여성의 외모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는 몸매 관리를 위해서 살을 뺀다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호르몬이나 뇌의 문제로만은 여러 정신질환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적인 원인을 봐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은 청년 남성도 굉장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상반기에 20대 여성 자살률이 많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청년 남성의 우울증도 굉장히 증가했다. 경제위기와 열악한 노동시장 때문에 남성의 정신건강에도 위기가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여성에게 과중하게 부여된 돌봄 의무다. 청년 여성은 아직 경험 없더라도 중장년, 노년층 여성이 겪는 가장 큰 문제다. 그것을 줄일 때 청년 여성의 정신건강도 좋아진다. 청년 여성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나도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다. 경제활동과 자아실현을 하는데 여성의 역할이 돌봄에 치중돼 있을 때 정말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
남성도 생계 부양자 역할 수행을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경제위기 등으로 그 역할을 못할 때 남성이 정신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진다는 생각은 남성에게도 좋지 않다. (직장 환경의 개선 등으로) 돌봄을 남녀 같이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이러한 전환은 노년기 남성의 정신건강에 긍정적이다. 현재 남성 노인은 배우자를 사별하면 자녀들과 관계가 친밀하지 못해서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남성도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2.
여성들은 선배의 경험과 언론 보도를 통해서 채용 비리, 취업률의 차이를 접하고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고 깨닫는다. 그래서 여성들이 시험에 매달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시험을 통해서 가장 안전하게 일하겠다는 경향이다. 대학교 여학생들의 경우, 내가 직장을 가더라도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서 키워야 하면 계속 다닐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게 돼서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100% 자발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역시 남성이라면 경제력이나 어떠한 지위를 얻어야 한다는 압력을 느낀다. 그 압력을 깰 필요가 있다. 남성도 얼마든지 보육교사처럼 여성들이 주로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남성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이해한다. 취업시장이 나쁜데 (여성 우대정책 때문에) 경쟁이 악화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남성이 ‘전 세대만 혜택을 받았는데 우리가 피해를 본다’라고 얘기할 수 없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당장 노동시장 통계를 보면 여성이 훨씬 불리하다.
일단 상반기 취업률 자료를 보면은 여성 취업률이 훨씬 떨어졌다. 2017년부터 여성과 남성의 취업률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몇 퍼센트 차이 안 나네’라고 하지만 사람 수로는 차이가 크다. 여성이 취업을 더 못하고 있고, 비정규직이나 서비스 직종에 취업하는 비율도 높다.
남성 청년들도 직업을 갖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성차별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해도 마음의 기저에서 생활을 억제하고 정신적으로 피해를 준다. 한국종합사회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크다.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성범죄 사건들이 일어났는데 두렵지 않을 수 없다.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여성들의 행복함을 굉장히 누르고 있다.
범죄 피해에 대한 두려움은 남성의 정신건강에도 해가 된다. 한국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범죄율이 훨씬 높다. 그런 나라에서는 남성들도 밤에 나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러나 한국은 남성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는 환경이다.
즉 살인이나 강도 범죄가 많은 나라에서는 남녀 모두 불안하지만, 성범죄만 범죄율이 높은 나라에서는 여성만 두려워한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여성들이) 범죄 피해에 대한 공포를 과장하고 있다는 말은 할 수 없다.
아직까지는 사회적 약자다. 규모는 남성과 여성이 반반인데 여성이 지위나 자원이나 기회나 혹은 가정 내에서의 통제력이나 여러 면에서 여전히 불리하기 때문에 약자라고 생각하고, 현재는 (사회가) 동등하게 가는 길에 있다.
(여성이 약자냐고 되묻는 현상은) 우리가 사회 변화를 어느 정도 이뤄냈다는 것이다. 여성의 권리나 목소리가 이전보다 커진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경제 활동하는 여성들, 정치계에서 대표성을 띠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들도 많아졌다. ‘아니야 여전히 여성들은 너무 불리하고 지금 억울하고 괴로워’ 이렇게만 생각할 건 아니다. 다만 세밀하게 살펴보면 여전히 여성이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불리하고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 그 지점을 포착하는 게 중요하다.
여성들에게 우울이 훨씬 많이 나타나고 그것은 사회 환경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라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특정 집단의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개선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성들 중에서도 실업자 또는 가난한 사람 등 불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궁극적 예방책,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다른 사회적 약자 집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 연구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