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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술탈취 우려, 우방과는 도덕성 경쟁… 백신 특허 포기 美 사면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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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야심차게 꺼내든 ‘백신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 지지 선언이 안팎으로 강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상황에 놓였다. 내부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에 백신 기술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았고, 대외적으로는 핵심 우방인 유럽연합(EU)으로부터 “백신 수출 규제부터 풀라”는 거센 역공에 맞닥뜨렸다. 세계무역기구(WTO) 지재권 변경 협상을 앞두고 ‘글로벌 백신 외교’ 주도권을 거머쥐려 했던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무리 위중해도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 개발한 백신 제조 기술을 전 세계와 나눈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인도주의에 기반한 ‘선의’가 자칫 ‘기술 편취’로 변질될 수 있는 탓이다. 제약업계는 특히 화이자ㆍ모더나 백신에 쓰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ㆍ전령RNA)’ 기술이 중국과 러시아로 유출될까 봐 크게 걱정하고 있다. mRNA는 최근 개발된 최첨단 생명공학 기술로, 코로나19뿐 아니라 독감, 에이즈, 암 등 다른 질환의 백신ㆍ치료제 개발에도 활용될 수 있는 미래 핵심 자원이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미 행정부와 제약업계가 주고받은 질의응답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 행정부도 지재권 면제가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 우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업계 우려에 공감했다고 한다. 실제 상무부를 비롯해 일부 기관들은 지재권 면제를 반대하고 있기도 하다. 이 문건에서 바이든 행정부는 WTO 협정을 통해 기술 유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바로 이 지점이 미국의 딜레마다. 일단 백신 기술이 풀리면 사용 제한을 강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지냈던 게리 로크는 “중국, 러시아, 인도 등 다른 나라들이 지재권 면제를 통해 의도하는 건 백신 및 의약품 개발을 위해 mRNA 기술 노하우를 얻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렇다고 민감한 핵심 기술을 빼고 지재권 면제를 협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유엔 세계지식재산권기구 부대표 출신 제임스 풀리는 “미국이 주요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다면 또 다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의 반발도 예상 이상으로 거세다. 7,8일 포르투갈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도 지재권 문제가 다뤄졌지만 부정적 기류가 강했다. mRNA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엔테크를 둔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뿐 아니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유럽 정상들도 “미국이 먼저 백신 및 원료 수출 금지 조치부터 철폐하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백신을 창고에 쌓아두고도 빈국과 나누지 않았으면서 특허 면제를 거론하는 건 ‘표리부동’이라는 얘기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미국은 6개월 동안 백신을 단 한 개도 수출하지 않았다”며 “EU는 미국에게서 배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날을 세웠다.
미국과 EU 간 ‘도덕성’ 경쟁도 불붙고 있다. EU는 자신들이 제약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악당처럼 비춰지는 것에 불만이다. 실제론 백신 4억회분을 생산해 그 절반인 2억회분을 90개국에 수출하며 글로벌 백신 공급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는 주장도 내놨다. 화이자 백신 18억회분 추가 계약 안에도 백신 기부 조항을 포함했고, 발칸반도 국가들에 백신 기부도 계획 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백신을 대량 생산해 세계에 수출하는 유일한 민주주의 지역”이라며 “EU가 세계의 약국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자평했다.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해 백신은 물론 원료 수출까지 막은 미국 입장에선 반박할 여지가 없는 대목이다.
때문에 지재권 면제 선언이 백신 패권주의 비판에 내몰린 미국의 정치적 노림수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WTO 협상이 오래 걸리거나 아예 무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재권 면제 지지는 바이든 행정부에 외교적 승리를 가져다주는 가장 위험성 낮은 방법일 수 있다”며 “단순히 팬데믹을 끝내려는 조치로만 보이진 않는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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