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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남은 1년간 지지율 만회용 '쇼'보다 백신 등 민생 챙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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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정무수석이자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전 국회의장에게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역사적 과제다. 30년 군사정권에 균열을 낸 '3김(金) 시대'가 완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권위주의 유산을 노무현 정부가 청산했지만,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과 국정 농단으로 이를 후퇴시켰다고 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을 동력 삼아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높은 기대감 속에 출범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민심은 냉랭하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남은 1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를 문 전 의장에게 물었다. 지난 7일 90분간 진행된 인터뷰 동안 그는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만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국정 운영 방식에 대해선 "오만의 극치"라고 비판했고, 청와대의 소통 방식에 대해선 "더 이상 쇼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직언했다. 대선에 앞서 참패한 재·보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대선 1년 전에 백신을 놓아준 것은 행운"이라며 임기 말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문재인 정부 4년간의 성과부터 말해달라.
"남북·북미 정상회담을 여러 번 중재하면서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기초를 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남북관계가 파탄 나면서 전쟁 직전까지 갔던 상황과 비교할 때 긍정적 변화다. 미국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한반도 평화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진 않을 것이다.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후퇴했던 탈(脫) 권위주의를 복원했다. 집권 초기 대통령이 참모들과 토론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진만 공개해도 박수를 받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제 한계에 부닥친 모습이다."
-어떤 한계인가.
"제도화를 못 했다. 아무리 좋은 개혁도 제도화 없이는 정권이 바뀌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제도화를 위해선 공멸의 정치를 부르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는 분권형 개헌에 나서야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떤가. 개헌 얘기를 꺼내면 마치 현 정권의 기득권 연장을 위한 주장처럼 들리게 됐다. 이처럼 개헌 논의 시기를 놓치고 국민 여론이 따라오지 않게 된 것에는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가 오만에 사로잡혀 통합에 소홀했다. 야당과 합의하고 양보하는 절차가 없어졌다. 민주당은 내가 국회의장을 하던 시절(2019년 12월) 여야가 이룬 연동형 비례대표제 합의를 어기고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렇게 해서 180석을 얻었지만 그건 승리가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지 않나. 국민들은 거대 의석을 앞세워 상대방을 뭉개고 자기만 옳다는 민주당을 오만의 극치로 보고 있다."
-위성정당은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먼저 만들지 않았나.
“그렇더라도 민주당은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 약속을 지켰으면 재·보선 참패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문 전 의장은 대통령과 민주당 대표들이 야당과의 통합 정치에 소홀했던 것이 현재 검찰개혁 등의 개혁 과제들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한 채 정체된 원인으로 봤다.
-대통령과 당 대표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나.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도 많다. 그런데 지금 검찰개혁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죽게 생겼으니 대통령 퇴임 후 안위를 위해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삼는다'라는 의심을 한다. 이렇게 만든 것은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책임이다. 검찰개혁이 미숙하고 무능했다. 대통령은 임명권자로서 (지난해 추-윤 갈등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택하든 윤석열 검찰총장을 택하든 결단력을 보여야 했다. 그런 싸움을 방치하면서 결과론적으로 국민들이 진짜 검찰개혁인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검찰개혁이 이렇게 된 데에 우리(당청)에게 원인은 없었나 반성해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의 인사를 지적하는 건가.
"지도자는 모질고 단호한 면이 있어야 한다. 리더십의 본질은 '담대한 결단력'이다. 문 대통령이 인사 문제만큼은 결단을 잘 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조국 전 장관 사태때도 마찬가지다. 조국 사태가 처음 터졌을 때 나는 대통령에게 조속한 임명 철회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명을 철회했으면 조국도 살고 문 대통령도 상처를 입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조국과 문 대통령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대통령과 원로들의 대화 기회가 부족한 게 아닌가.
“나와는 안 한 지 오래됐다. 다른 원로들도 비슷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 부른다면 다들 왜 안 가겠나. 문 대통령의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 생각할 정도로 다들 애정이 깊다. 물론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지는 않겠지만 약이 되는 말이다. 일단 들어보고 최종 판단은 대통령이 하면 된다. 그런데 대통령이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것 같다. 누구와도 대화를 피하지 않으며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인정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과 다른 지점이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 등 언론과의 소통도 드물었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온 국민이 안다. 대통령이 수다쟁이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화를 꺼려서는 안 된다. 대화 속에서 얻는 지혜가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화하지 않으면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원칙인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문 전 의장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도 민주당 내 다양성이 사라지는 징후로 해석했다. 그는 "강성 지지자들이 나만 옳다고 하고 나머지는 배제하려 들면서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나와 (견해가) 다르다고 당에서 나가라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남은 임기 동안 문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무리하게 욕심부리면 안 된다. 특히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대형 이벤트나 의전 같은) '쇼'를 하려 해선 안 된다. (임기 말에)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우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 해결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땅투기 의혹을 끝까지 파헤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이런 민생 문제부터 해결해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신뢰가 없으면 뭘 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아 정치가 성립하지 않는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문재인 정부가 신뢰를 잃었다고 보나.
"믿을 신(信)자는 말씀 언(言)과 사람 인(人)이 합쳐진 글자다. 말과 사람이 같아야 신뢰가 생긴다. 언행일치가 될 때 대통령이 하는 말이 통할 수 있고 신뢰가 생긴다. 일치가 안 되면 내로남불이며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지난해 국회의장 퇴임 시 전직 대통령 사면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 통합이다. 지금 국민 통합의 바로미터는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고 본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사면 반대가 심하다.
"지지층이 싫어하는 것도 해야 하는 것이 대통령이다. 지지층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대통령임을 명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중 한일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내가 주장했던 해법('1+1+α'안)이 여전히 옳다고 생각한다."
문 전 의장은 문 대통령 취임 직후 일본에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대표적 '일본통' 정치인이다. 그가 2019년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은 한일 기업과 양국 국민의 기부금으로 재단을 설립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와대와 여권은 적극 나서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민주당의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가.
"민주당에 재·보선 패배는 오히려 행운이다. 대선 1년을 앞두고 백신을 맞은 셈이다.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친문재인 색채가 가장 옅은 송영길이 당선된 것도 당원들의 현명한 판단 덕분이다. 송 대표는 강성 (친문계) 지지층의 눈치를 보지 말고 민심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강성 지지층에 민주당이 끌려다니는 걸 민심은 원하지 않는다. 차기 대선주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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