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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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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가끔 화제의 전시회장을 찾을 때마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작가와 전시 기획사들의 노력이 나날이 배가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작품과 관람객 간 거리감을 느끼게 했던 접근 차단봉ㆍ차단선은, 값비싼 명작 전시라면 모를까, 사라진 지 오래다. 바닥에 붙이던 접근금지 테이프도 이젠 안 보인다. 사진도 마음대로 찍고, 조형 작품은 직접 만지며 작품의 질감까지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전시장 내 관람객이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한 설치 미술 전시도 꽤 많다.
□ 미술계에 사건이 생겼다. 20대 남녀가 서울의 한 전시장에서 미국 작가 존원(58)의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 예술) 작품에 청록색 물감을 칠했다. 경주 미술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바닥에 전시된 한국화 거장 박대성(76) 화백의 서화 작품에 올라가 걸레질하듯 무릎으로 문질러 글씨가 번지고 뭉개졌다. 존원의 작품가는 5억 원, 박 화백 서화는 1억 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 존원 작품 앞에는 접근금지 테이프가 바닥에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두 남녀는 작품 앞에 소품으로 비치된 붓과 물감을 보고 “참여형 작품”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박 화백 작품도 긴 길이 때문에 바닥에 놓였지만 분명 바닥과 구분되는 전시대 위에 있었다. 아빠는 아이들을 제지하기는커녕 휴대폰 촬영에 바빴다. 그럼에도 기획사 측은 젊은이들에 대한 보험사의 구상금 청구를 우려해 존원 측에 복원 재고를 요청했고, 박 화백도 “그게 애들”이라며 개의치 않겠다고 했다.
□ 대중들은 ‘통 큰 용서’를 반기고 있다. 박 화백은 “이(훼손) 또한 작품 역사”라며 그대로 두기로 했지만, 존원 측은 복구를 희망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물감 덧칠이 화제가 돼 작품 가격이 올랐을 거라고 하지만 억측이다. 작가가 공개리에 복원을 원하면 훼손된 작품의 가치는 떨어진다. 존원의 작품과 박 화백의 서화 앞에는 접근 금지선이 설치됐다. 작품은 대중을 향해 열려 있을 때 상호 교감 속에 가치를 발산한다. 날이 좋을 이번 주말, 전시회장에서 작품 설명과 전시 의도조차 읽지 않는 무개념ㆍ무감각 관람객은 되지 말자. 그것이 대중에게 다가서려는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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