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문제 해결사로 부상한 ESG

입력
2021.05.08 04:30
11면

편집자주

※우리 사회의 출생아 수 감소와 고령자 수 증가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빠릅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인구쇼크’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예상되고 대응 전략은 무엇인지, 경제학자이자 인구 전문가의 눈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 단위로 토요일 연재합니다.

환경(E)과 사회(S), 지배구조(G) 등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가리키는 ESG 경영이 주요 전략으로 자리잡으면서 편의점업계도 친환경 상품 출시와 함께 가맹점주와의 동반성장,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환경(E)과 사회(S), 지배구조(G) 등 기업의 비(非)재무적 성과를 가리키는 ESG 경영이 주요 전략으로 자리잡으면서 편의점업계도 친환경 상품 출시와 함께 가맹점주와의 동반성장, 사회안전망 구축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9> 지속가능 뉴노멀 ‘인구와 ESG의 연결화두’

사회 전 분야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ESG(Environment, Social & Governance Issues)가 화두로 떠올랐다. 당분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핫이슈가 될 전망이다.

ESG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작년 초 "지속가능성을 투자기준으로 삼겠다"고 발표한 후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큰손 투자자인 블랙록은 투자한 기업의 경영이 ESG 조건에 미달할 때 반대표를 던지거나 투자철회를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정책도 ESG가 세계적 화두가 되는 데 일조했다.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미국이 이 기준을 중요시하면서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는 각국 정부도 이 기준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ESG는 시대 변화가 낳은 트렌드라 할 수 있다. 기업의 사회책임을 강조한 ‘주주주의→윤리주의’와도 맞닿는다. 시민사회가 아닌 투자시장에서 이를 강조한 것도 독특한 점이다.

ESG는 성장·이윤을 둘러싼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줄어든 한정자원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배분방식을 재편해 지속가능성을 높이라는 의미다.

그 방향은 사람과 환경을 중시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압축개발은 끝났고, 양극화는 심화됐고, 환경도 나빠졌다. 그 속에 사는 사람 역시 힘들어졌다. ESG는 그 갈등구조를 이겨낼 대안방식이다. 환경과 사람을 챙기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나는 게 목표다.

사회갈등이 촉발시킨 ESG 열풍


거대한 담론을 제시하고 있지만 ESG는 새로운 관점과 방향을 제안한 방법론일 뿐이다. 평가방법만 600가지가 넘고 똑같은 툴인데도 측정 결과는 달라지는 이유다.

불완전하고 작위적이라 공통의 적용원칙도 없다. 비재무적 사회가치를 평가하는 한계도 그대로 갖는다. 투자관점에서 사회가치를 구체화한 걸 빼면 새로운 것도 없다.

사실 ESG는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중요한 건 기업가치·경영평가의 방점을 ‘재무가치→사회가치’로 옮기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사회가치를 챙길수록 재무가치가 좋다는 경험도 뒷받침한다. 그 대안이 환경·사회·지배구조로 나왔다.

심각한 사회갈등을 낳는 불균형적 개발수혜·자원배분을 수정하자는 데서 ESG는 출발한다. 기업과 주주만 웃는, 성장 없는 번영을 반성하자는 것이다. 야수자본과의 결별을 강조한 생태경제학과 일치한다.

포괄적인 사회가치를 품는 성장방식으로의 전환인 셈이다. 결국 모든 삶의 품격을 높이는 기준이 ESG라 할 수 있다. 갈등 진원지인 인구문제의 해법도 ESG에서 찾을 수 있다.

ESG에 녹아 든 인구해법의 힌트지점

ESG와 인구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다. ESG는 ‘인구증가→수요확대→과잉개발→훼손지속→자본독점→격차심화→성장한계→생활압박→인구감소’의 파괴·연쇄적인 개발 논리를 거부한다.

즉 ESG는 인구(사람=이해관계자)문제로 치환된다. 친환경경영의 E(Environment)는 기후변화·자원고갈·환경파괴를 다룬다. 인구를 먹여살린 개발욕구가 낳은 시장 실패를 끝내기 위함이다. 석탄 생산이 기후변화로 변질됐듯 인구증가와 개발압력의 연결을 끊자는 것이다.

S(Social)는 사람을 강조한다. 주주 중심에서 경영자·직원·공급자·고객·정부 등 사회구성원 전체를 챙기자고 주장한다. 인권경영·근로환경·고용관계뿐 아니라 외부인 모두의 생활만족이 측정에 포함된다.

G(Governance)는 소유가 경영을 담보하는 메커니즘이나, 넓게는 이해관계자의 권한·책임·관계를 다뤄 역시 사람과 밀접하다. 소수 오너의 불투명한 자원 독점에서 다양한 이해를 반영한 민주적 의사결정 등 성과배분을 공정히 하자는 뜻이다.

ESG는 기업 내외부의 다양한 사람을 챙기는 달라진 경영방침이기도 하다. 금권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즉 ESG는 저성장·인구 문제와 논점을 공유한다. 그 상황 돌파를 위한 균형·상생적 협력시스템을 ESG로 표현했다. 때문에 형식보다 내용, 방식보다 본질에 주목하면 ESG는 인구변화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모두를 넘어뜨린다. 때문에 ESG는 자본이 살아내려는 몸부림에 가깝다. 탐욕자본의 끝판이던 투자시장의 문제제기·대안실험이라 특히 고무적인 실험이다.

강력한 사회구성원인 기업이 외부의 삶까지 신경 쓰면 많든 적든 사회갈등은 줄어든다. 사회가치와 재무가치를 함께 챙기는 사회적 경제보다 비재무 가치만 챙겨보겠다는 ESG의 실험은 더 진일보한 행보다. 물론 비재무 가치로만 올곧이 투자기준을 정하진 않을 터다. 어떤 식이든 이윤 극대화(Profit Maxmizing)는 반영될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건 ESG처럼 기업 밖의 생태계와 삶까지 품어보라는 달라진 자본의 새로운 시도가 갖는 파급력에 있다.

착한 기업과 행복한 마을의 상관관계

운동만 잘하는 선수보다 실력에 인성까지 갖춘 인재가 많아져야 사회는 건강해진다. ESG는 압축성장의 끝물에서 부작용·딜레마에 갈피를 잃은 한국사회에 유의미한 해결 힌트를 던져준다. 사회문제에서 한발 비켜선, 그럼에도 수많은 자원·능력을 지닌 기업이 신규 선수로 갈등 해결에 참여할 수 있다.

정부가 못 푼 과제를 효율·합리성을 결합시킨 성과(Impact)로 구체화할 수 있다. 인구문제에 한정하면 ESG는 궁극적인 해결책인 저출산 장벽을 해소할 수도 있다.

2020년 0.84명의 출산율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출산 포기는 많은 이유가 있으나, 대개 불안정한 고용현실로 연결된다.

일자리가 불안한데 결혼·출산이 증가할 리 만무하다. 이때 ESG가 실현되면 고용은 개선된다.

S의 핵심항목 중 하나가 장기·안정적 고용인 데다 최근 MZ세대의 성과배분 논쟁처럼 G와도 직결된다. 유력한 이해관계자인 직원의 고용만족은 곧 출산환경의 개선을 뜻한다. 인적자원에의 관심·배려가 평가·측정되면 기업은 신경 쓸 수밖에 없고, 이런 노력은 또 청년 배려의 기업문화로 제도화된다.

‘도시집중 vs 지역소멸’의 도농 격차도 ESG에서 해결 힌트는 찾아진다. 착하고 사랑받는 기업이 지역을 되살린다는 취지다. 서울·수도권의 인구밀집도는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교육·취업 탓이다. 고용안정의 회사를 위한 ‘지역→도시’의 사회이동은 불가피하다. 최근엔 우수한 인적자원을 찾아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기업마저 생겨났다. 수익창출·자원확보를 위한 합리적 선택이나, 지방 붕괴를 낳는 도농 불균형을 심화시킨다.

ESG라면 달라질 수 있다. 지금처럼 좋은 점수를 못 받아서다. 반대로 지역사회에 참여·공헌하는 운명공동체처럼 위치하면 상황은 역전된다. 더 좋은 평가를 받고자 지역으로 옮기는 회사도 생겨날 수 있다.

지역으로선 부흥의 발판으로 삼는 게 좋다. ESG가 확산되면 지역활성화는 본격화된다. 기업이 ESG를 위해 지역에 노크할 수도 있다. ESG가 대세라면 기업은 지역활성화만큼 명분과 실리를 갖춘 대상도 별로 없다. 준비된 지역일수록 유리하다.

관료·폐쇄·하달주의의 경직성을 넘어 소중하고 대등한 파트너로 기업을 안으면 지역은 되살아난다. 지자체조차 ESG의 내재화는 당연시된다. 경영평가에 사회가치가 확대된다는 점에서 ESG는 행정분야에도 적용된다. 선진국의 많은 지자체가 이를 경영목표에 넣은 건 우연이 아니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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