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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에겐 '어린이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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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은 결코 유치하지 않습니다. ‘꿈꿔본다, 어린이’는 아이만큼이나 어른도 함께 읽으면 더 좋을 어린이 책을 소개합니다. 미디어리터러시 운동을 펼치고 있는 박유신 서울 석관초등학교 교사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에 실린 글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다 보면 가끔 의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어른을 한껏 멋지게 표현할 때다. 가령 ‘맑게 개인 공원에서 턱수염 난 화가 아저씨~’ 같은 노래다. 굳이 어린이들이 턱수염 난 화가 아저씨를 떠올리며 서정적 감정에 빠질 일인가. 어린이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어린이만 나오라는 법은 없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요즘 어린이에겐 현재의 시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공감할 수 있는 어린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예술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살아 있는 경험을 만나고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육이기에. 4학년 교과서에 실린 영화 '우리들'이란 작품이 어린이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은 어린이의 삶을 중심에 놓고 애정 어린 관찰로 이끌어 간 이야기의 힘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인송의 동화집 '오늘도 수줍은 차마니'도 교과서에 꼭 실렸으면 하는 책이다. 4명의 주인공이 겪는 웃기지만 결코 웃을 수 없는 난감한 상황들이 한편의 시트콤처럼 코믹하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펼쳐진다.
악성 곱슬머리를 가진 오슬이는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정성껏 매직기로 머리를 펴고 체험학습에 가지만, 오해 속에 비를 맞으며 어정쩡한 고백을 하게 된다. “마니가 가진 어깨는 그냥 어깨가 아닙니다. 어깨왕입니다.” 수줍은 평화주의자 차마니는 그를 럭비선수로 만들겠다는 '열정부자' 체육선생님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쳐 다닌다.
'유당불내증'을 가진 루아는 아침에 그만 우유를 먹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운동장에서 뻗어버린다. '똥쟁이'로 놀림받을까 두려운 루아는 과연 보건실을 가는 척하면서 화장실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꽃을 너무 좋아하는 남자 아이인 화영이는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지만 꽃을 만지는 솜씨는 엉성하다. 그런데 화영이 짝궁은 꽃도 안 좋아한다면서 실력은 뛰어나니,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악성 곱슬머리, 수줍은 여자 어깨왕, 플로리스트가 되고 싶지만 '똥손'인 남자 아이, 유당불내증에 힘겨워하는 친구 등 친숙한 상황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유머러스하게 진행되지만, 타자화된 희화화가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어린이 누구라도 예전에 경험한 일을 떠올리며 웃음 속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주변 인물들의 따뜻함 또한 이야기의 장점이다. 어른들은 일상처럼 존재하되, 위협적이거나 중심으로 나서지 않는다. 주인공은 다른 어린이 캐릭터와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유쾌하고 따뜻한 반전을 보여준다.
”세상에 가득한 따분하고 지치는 일들은 우리 어른들이 어떻게든 해결해 볼 테니까, 여러분은 부디 매일 신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가끔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덜 피곤할 테니까요. 제가 어린이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책 말미에 쓰인 ‘작가의 말’이다. 웃기고 신나는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을 든든하게 응원해주려는 따뜻한 마음이 와닿는다. 책을 통해 어른들은 다양한 어린이들의 삶을 보다 즐겁게 이해하고, 어린이들은 그 안에서 나의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린이들에게는 더 많은 어린이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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