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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징병제 요구에 숨은 또 다른 여성비하

입력
2021.05.07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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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징병제 논란이 다시 뜨겁다. 이번엔 여당 의원들이 해묵은 ‘군 가산점’ 제도를 다시 꺼내 들면서 시작됐다. 4월 30일 기준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5만 명이 동의했다. 남성만을 징집 대상으로 규정한 병역법의 평등권 침해 위헌소송이 지난 20년 동안 남성들의 주도로 10차례 넘게 제기됐지만, 헌법재판소는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여성은 월경, 임신이나 출산, 양육의 필요성 때문에 군사훈련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얼핏 헌재의 논거는 여성에게 호의적인 것 같지만 사실 여성차별의 구조적 매트릭스를 동어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현행 징병제는 여성의 평등권 실현에 핵심적인 걸림돌이다. “억울하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여성차별적 상황을 한마디로 종결짓는 일종의 주문이다. 이 말은 여성은 군대에서 할 일이 없으니 지금 그 자리에 있으라는 폄훼의 뉘앙스가 강하다. 군 복무를 통해서 남성들이 느끼는 자기희생의 감정은 여성차별을 정당화하고 위계적인 성별분업을 공고히 하는 심리적 기제로 작용해왔다.

이런 까닭에 여성징병제가 성차별의 핵심적 근거를 해체하면서 여성의 권리 향상에 기여할 거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온전한 성평등을 이루기 위해서 병역문제를 피해 가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존의 성차별적 구조 속에서 여성징병제가 시행되면 여성의 고통만 가중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남성들만의 공간으로 치부되어온 군대는 여성이 남성과 사회적으로 대등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더없이 효율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여성에게 병역의무를 부과한 많은 북유럽 국가들은 여성의 군 참여로 젠더평등의 상당한 진전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 징집병이든 스스로 입대를 원하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군대는 자유가 제한되고 육체적으로 피곤한 공간이다. 여기에 조직문화마저 권위적이고 인권 상황이 좋지 않으면 입대를 더 꺼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국가인권위원회의 ‘2019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 조사대상 국군 병사 992명 중 19.5%(193명)가 군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 그 어느 세대보다 인권감수성이 예민하고 공정성에 대한 욕구가 높은 20대에게 이런 후진적 군대 경험은 일방적인 자기희생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분노가 병영문화의 개선, 나아가 징집병에 대한 처우개선 등 근본적인 해결 요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반감과 비하의 감정이 깔린 여성징병제 요구는 젠더갈등의 악순환을 만들 뿐이다.

여성징병제 논의는 단순히 남성에 대한 역차별 해소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병역 참여를 전제로 한 현행 병역제도의 개편은 군사, 젠더, 사회 등 다양한 측면에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군 참여가 가져올 젠더평등의 효과, 안보적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안보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공동체가 어떻게 부담할지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병제 등 형식적 변화를 넘어 누구도 성별, 장애, 양심, 성정체성 등을 이유로 군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 변화에 대한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



박수진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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