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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 말고 '브리세이스의 분노'는 아십니까

입력
2021.05.08 04:30
12면

<17> 모두가 외면하는 전쟁터의 여성들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영국 대영박물관에 있는 호메로스 흉상. 위키백과

영국 대영박물관에 있는 호메로스 흉상. 위키백과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호메로스의 장편 서사시 '일리아스'의 첫 문장이다. 호메로스 외에도 많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이 트로이 전쟁의 발단과 전개과정, 결말을 노래한 다양한 서사시를 지었다. 이 작품들은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결혼에서 시작하여 트로이 전쟁을 거쳐 오디세우스의 죽음까지 다룬다. 그 중 '일리아스'의 시간적 배경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기간 중 51일이다. 호메로스는 사랑하는 소녀 브리세이스와 친구 파트로클로스를 잃고 두 번 분노한 아킬레우스가 성숙한 영웅이 되는 과정을 노래한다.

트로이 전쟁은 9년간 큰 진전이 없었다. 그동안 그리스 연합군은 보급 물자를 얻기 위해 트로이 주변 지역을 공격하고 약탈했다. 10년째 되던 해에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돌았다. 예언자는 아폴론 신전의 사제를 모욕했기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모시는 소녀를 돌려달라고 찾아온 아버지를 쫓아낸 적이 있는데, 그 아버지가 바로 아폴론 신전의 사제였던 것이다. 이에 아킬레우스가 소녀를 돌려보내라고 하자 아가멤논은 화를 낸다. 아가멤논은 소녀를 돌려보낸 후, 대신 아킬레우스가 사랑하는 소녀 브리세이스를 빼앗는다.

소녀를 빼앗기고 분노한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는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더 이상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어머니인 테티스 여신에게 하소연한다. 테티스는 제우스를 찾아가 그리스군이 패배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스군은 거듭 전투에 진다. 그래도 출전하지 않던 아킬레우스는 친구 파트로클로스마저 전사하자 분노하여 전투에 나간다.

파트로클로스를 죽인 헥토르를 죽이고 트로이 성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신을 모욕한다. 그러나 트로이의 왕인 프리아모스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와서 원수인 자신 앞에서 무릎 꿇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풀게 된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아비의 품에 넘겨준다. 무자비한 살인기계였던 아킬레우스가 연민의 감정을 배워 진정한 영웅이 된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어릴 때 아동용 축약본으로 읽었다. 이어서 하인리히 슐리만 위인전을 읽었다. 궁금했다. 슐리만이 발굴한 그 유적이 진짜 트로이가 맞는지. 한편, 나도 트로이를 발굴하고 싶었다. 트로이 유적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한 채 집에서 고양이 화장실 모래를 파면서 역사책을 읽었다.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1760년 작. '트로이 목마의 행렬'. 런던 내셔널 갤러리.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도메니코 티에폴로의 1760년 작. '트로이 목마의 행렬'. 런던 내셔널 갤러리.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트로이 전쟁은 약 3,000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트로이 전쟁이 역사상 실재(實在) 사건이라면 아나톨리아 지역의 청동기 시대 후기에 일어났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고고학적 증거와 외교 서신 등 1차 사료를 보면, 트로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슐리만은 '진짜' 트로이 전쟁은 발굴 못 했다

그리스 병사들은 기원전 13세기 이전부터 아나톨리아 북서부 해안, 즉 트로이 근처에서 자주 전쟁을 벌였다. 헬레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후대의 문학적 윤색이고, 실제로는 영토 확장이나 교역로의 통제권 확보 같은 정치적, 상업적 이유 때문에 전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이 지역에서 발발한 많은 전쟁 중에서 호메로스가 노래한 트로이 전쟁을 정하기란 어렵다. 고대 도시 트로이가 있었다고 추정되는 히살리크 유적에는 아홉 개의 도시가 층층이 쌓여 있다. 호메로스가 정말 있었던 사건을 노래했다면 그중 어떤 도시에서 일어난 어떤 전쟁을 다루었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슐리만은 트로이의 보물을 히살리크 유적 두 번째 층에서 찾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층은 기원전 2,300년, 즉 트로이 전쟁 발발하기 1,000년 이전의 층으로서 프리아모스 왕의 그 트로이가 아니다. '

'일리아스'의 내용으로 특정하기도 어렵다. 호메로스는 전사들의 무기나 전투 방식 묘사에서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를 섞어 서술하고 있다. 게다가 전쟁 시기 이전 시대의 인물, 장소, 사건도 삽입하고 있다. 이는 호메로스가 집대성하여 기록하기 전까지 500여 년 동안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겪은 변화를 반영한다.

결국 호메로스가 기록한 '일리아스'는 단일한 한 사건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존재했던 다양한 인물, 장소, 사건에다가 실재 사건이 일어났던 시대와 호메로스가 살았던 시대 사이의 역사를 다 통합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아킬레우스의 소녀 브리세이스는 누구인가

이렇게 하여 어릴 적부터 품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슐리만이 발굴한 유적은 '일리아스'의 그 트로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궁금한 것은 또 있다.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소녀 브리세이스를 아가멤논에게 빼앗긴 것에 분노한다. 어릴 적에 나는 이 대목이 이상했다. 전쟁 중인 군인의 막사에 소녀가 왜 있을까? 아내도 아니고 사랑하는 소녀라니?

완역본 '일리아스'를 읽으면서 알아냈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주변 국가들을 공격해서 많은 전리품을 얻는다. 한 번은 예쁜 소녀 둘을 납치해서 한 소녀는 아가멤논에게 주고 다른 소녀 브리세이스는 자신의 막사에 둔다. 소녀의 원래 이름은 히포다메이아인데, '브리세우스의 딸'이라는 뜻인 브리세이스로 부른다. 이제 그리스군의 소유물이 되었으니 그냥 원 소유자인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 것이다. 인격도 개성도 없는 물건이므로. 그렇다. 알고 보니 브리세이스는 약탈당하여 성노예가 된 여성이었다.

'브리세이스를 보내는 아킬레우스'. 폼페이 유적 '비극의 집'에서 발견된 벽화.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프레스코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위키백과

'브리세이스를 보내는 아킬레우스'. 폼페이 유적 '비극의 집'에서 발견된 벽화.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프레스코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위키백과


브리세이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전쟁터에는 남성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성들도 전쟁 수행에 큰 역할을 했다. 여성들의 재생산 활동이 없다면 전투는 불가능했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17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군대에 물자를 보급해준다. 그 이전까지 군인들은 정복한 도시는 물론, 이동하는 지역의 농가를 약탈해서 보급 문제를 해결했다. 식품이나 귀중품뿐만 아니라 사람 역시 약탈 대상이었다.

전쟁터엔 늘 여성이 있었다

소녀들은 납치당해서 군인의 사유 재산이 되었다. 성노예 역할은 기본이었다. 남성들은 전시에도 여성들의 돌봄 노동을 필요로 했다. 성노예 여성들은 군인들의 막사를 청소하고 물 긷고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했다. 군인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빨래를 하고 옷을 기웠다. 말을 씻기고 먹이고 똥을 치웠다.

자신을 소유한 군인이 주는 것을 먹고, 약탈해 와서 주는 옷을 받아 입었다. 행군할 때면 노새처럼 군인의 짐을 이고지고 걸어서 따라갔다. 군인들은 스트레스 풀이로 혹은 재미삼아 여자들을 때렸다. 노름빚 대신 다른 군인에게 넘겨지기도 했다. 도망쳐 봤자 헛수고였다. 주위의 다른 부대에 잡혀서 다른 병사의 성노예가 되기 때문이었다. 요행히 탈출에 성공해서 고향 마을로 돌아가도 외면을 받고 버려지기 일쑤였다.

이렇게 전쟁 시에 여성은 전리품 중 하나가 되어 성노예이자 돌봄 노동자로 살기를 강요받았다. 그러나 '일리아스' 어디를 봐도 성노예를 빼앗긴 아킬레우스의 분노만 나와 있을 뿐, 성노예가 된 브리세이스의 분노는 없다.

호메로스뿐만이 아니다.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다룬 시인들은 많지만 아무도 브리세이스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녀의 입장에서 고통과 분노를 노래하지 않는다. 남성 시인들에게 여성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을 약탈하고 성노예로 삼는 것은 남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으므로 아예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에서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우스. 다음 영화

2004년에 개봉한 영화 '트로이'에서 브리세이스와 아킬레우스. 다음 영화


여자도 군대 가라고?

요즈음, 여자도 군대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많다. 그런 남성들이 쓴 글을 찬찬히 읽어보면,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는 것 같지도 않다. 자신들이 군대 가서 고생하니까 대신 여성들이 자신에게 잘해주고 성관계를 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놀랍다. 고대 그리스 서사시 '일리아스'가 생각난다. 전쟁에 참가하는 대가로 여성을 노예로 이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호메로스 시대의 사고방식이 보여서다.

확실히 해두자. 어떤 성별이든 자신이 어떤 고통을 겪고 어떤 희생을 하였다고 해서 자신에게 직접 고통을 가하지도 않은 다른 성별에게 그 보상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그 성별을 노예집단으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상을 원한다면,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명심하자. 아킬레우스가 진정한 영웅이 된 것은 상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충분히 지겹게 이야기했다. 이제 브리세이스의 분노를 이야기해 보자.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누구의 사적 소유물도 아닌, 폭력에 희생된 한 여성의 분노를."


박신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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