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코로나 1년… '홍강 델타'만 살기 좋아졌다

입력
2021.05.06 04:30
15면

<24> 2020 베트남 생활수준 보고서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 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베트남 하이퐁 성장의 상징인 황반투 대교 인근서 바라 본 도심 전경. 하이퐁시는 2025년까지 100개의 중대형 다리를 더 지을 계획이다. 시 홈페이지 캡처

베트남 하이퐁 성장의 상징인 황반투 대교 인근서 바라 본 도심 전경. 하이퐁시는 2025년까지 100개의 중대형 다리를 더 지을 계획이다. 시 홈페이지 캡처

#. 지난달 24일 베트남 남중부 휴양도시 냐짱에서 만난 택시기사 쯔엉(33)은 한국인을 무척이나 반가워 했다. 2012년부터 7년 동안 울산 A조선사에서 일한 돈으로 택시를 마련했으니 그에게 한국은 좋은 기억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내 어색한 한국어로 푸념을 쏟아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어. 한국ㆍ중국ㆍ러시아 사람이 없어. 냐짱 사람 다 떠나.” 자녀 4명을 둔 쯔엉은 5월 황금연휴가 끝나면 택시 영업을 잠시 중단하고 인근 반퐁만 항구 건설 현장으로 돈을 벌러 간다고 했다.

#. 북부 하이퐁에서 8년째 주유소를 운영 중인 링(40)은 최근 서핑보드를 샀다. 사실 하이퐁의 바다는 화물선이 쉴새 없이 오가는 데다, 파도도 높지 않아 서핑에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직원을 더 뽑은 만큼 평일 이틀은 파도 좋은 바다를 찾아 다닐 것”이라며 웃었다. 링은 새로 산 고가의 한국산 스마트폰 무선 이어폰까지 자랑하면서 “6,7년 전만해도 오토바이나 화물차 손님만 찾았는데, 이제 비싼 기름을 찾는 승용차 고객이 절반 이상”이라고 귀띔했다.

코로나가 초래한 삶의 양극화, 홍강 델타 독주

베트남 황금연휴를 맞은 1일 하노이 시민들이 뚜레 공원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이들 뒤로 롯데타워와 메트로폴리스 빌딩 등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베트남 황금연휴를 맞은 1일 하노이 시민들이 뚜레 공원 호수에서 오리배를 타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이들 뒤로 롯데타워와 메트로폴리스 빌딩 등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두 사례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역별 격차가 더욱 심해진 베트남 국민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5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베트남 통계청의 ‘2020년 경제구역별 생활ㆍ공간 보고서’에는 수도 하노이의 각종 서비스와 삶의 질을 100으로 봤을 때 전국 63개 특별시와 성(省)이 이에 얼마나 근접했는지가 수치로 나타난다. 비교 지표는 의식주, 의료, 교통, 교육 등 11개이며, 수치가 높을수록 해당 지역의 생활 수준이 개선된 것으로 인식된다. 인구와 자금 유입 등이 늘었다는 의미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각 도시의 기본 체력은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삶이 한층 윤택해진 곳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한 ‘홍강 델타’ 권역이 유일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지수 1위는 하노이, 3위는 하이퐁(97.38)이 각각 차지했다. ‘남북부 균등 성장 전략’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2019년 처음 1위에 오른 하노이는 2년 연속 수위를 꿰찼으며, 하이퐁은 유명 관광지 다낭을 밀어내고 ‘빅3’ 자리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하노이 인근 꽝닌성(6위ㆍ96.19)과 박닌성(10위ㆍ95.52)도 상위 10개 도시에 새로 진입했다. 두 도시 모두 코로나19 시대 이전보다 5계단씩 순위가 상승했다. 하노이ㆍ하이퐁ㆍ박닌성은 삼성과 LG 등 한국기업이 감염병 사태 와중에도 집중적으로 생산시설을 늘린 지역이다.

코로나19 이후 베트남 지역별 생활지수 순위. 그래픽=박구원 기자

코로나19 이후 베트남 지역별 생활지수 순위. 그래픽=박구원 기자

재작년만 해도 베트남 외화벌이의 큰 축을 담당했던 남중부 해안 권역 도시들은 모두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다낭(97.11)은 지난해 7,8월 코로나19 2차 확산으로 지역경제가 멈춰선 데 이어, 10,11월엔 30년 만에 최악의 물난리까지 겪으면서 도시 기능이 마비됐다. 다낭은 베트남의 실리콘벨리를 표방한 ‘하이테크파크’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재난 여파를 극복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천년고도 후에(14위ㆍ94.85)도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꽝닌성에 6위 자리를 내줬다. 냐짱이 위치한 칸호아성(23위ㆍ94.13) 역시 요식업종이 전멸한 탓에 순위가 6계단이나 추락했다.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개혁ㆍ개방)’를 표방한 이후 경제성장을 이끈 호찌민 등 남동부 권역은 제자리 걸음을 한 것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2위 호찌민(99.05)은 하노이와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고 2019년 4위였던 바리아-붕따우성(96.00)은 9위로 밀려났다. 그나마 빈증성(95.16)이 20위에서 13위로 약진하면서 남동부는 6개 권역 평균 지수에서 1위를 차지하는 데 만족했다. 베트남 통계청 관계자는 “홍강 델타에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인 가난한 성들이 포함돼 있어 권역 평균에선 남동부가 앞섰다”며 “이 지역은 하노이를 중심으로 정치권력 기반이 탄탄하고, 외국인직접투자(FDI)까지 대거 빨아들여 당분간 삶의 질이 계속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방'한 고산도시, '암울'한 메콩 삼각주

베트남 시민들이 1월 북부 산간지역 사파에서 열린 인공 눈축제를 즐기고 있다.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10만여명이 몰려 들었다. 뚜오이쩨 캡처

베트남 시민들이 1월 북부 산간지역 사파에서 열린 인공 눈축제를 즐기고 있다. 축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10만여명이 몰려 들었다. 뚜오이쩨 캡처

북부 산간 권역의 라오까이(5위ㆍ96.25)와 선라성(7위ㆍ96.13), 중부 고원 권역의 람동성(8위ㆍ96.02)도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감염병 파고에도 해외 관광객에 의존했던 남중부 해안과 달리 내수 관광 비율을 유지한 덕분이다. 기후가 연중 서늘한 사파(라오까이)와 달랏(람동)은 5월 연휴 기간 90% 이상의 자국민 여행 예약율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선라성은 코로나19 방역 성공으로 중국과의 국경무역이 끊기지 않으면서 지역 경제를 지탱한 케이스다. 돈이 몰리면 첩첩산중이라 하더라도 삶의 질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낙후된 메콩 삼각주 권역 주민들은 여전히 고단하게 살았다. 베트남 최대 곡창지대 메콩은 가뭄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염분 침투 피해가 매년 심각해 지고 있다. 지난해엔 메콩강 상류에 위치한 중국 댐들이 수문을 열지 않아 농부 70여만여명이 정든 터전을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63개 지방정부 중 생활지수 꼴찌를 기록한 허우장성(89.68)도 메콩에 속해 있다. 현지 인민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호찌민과 삼각주를 잇는 교통 인프라가 완성되면 메콩도 투자처로 각광받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인프라 완공 목표 시점은 2030년. 이것도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고속도로가 메콩에 들어설 날은 그보다 한참 뒤에나 가능할 듯싶다.

지난해 베트남 메콩 삼각주의 한 마을을 관통하던 강이 30여년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VN익스프레스 캡처

지난해 베트남 메콩 삼각주의 한 마을을 관통하던 강이 30여년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VN익스프레스 캡처


하노이ㆍ하이퐁ㆍ냐짱=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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