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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특허 양보' 갈림길 선 美... "리더십이냐 경쟁력이냐"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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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 업체들을 여럿 보유한 미국이 갈림길에 섰다. 백신 증산을 위해 자국 제약사가 지식재산권을 잠시라도 양보하게 만들라는 안팎의 요구에 직면해서다. 자국 산업 경쟁력을 얼마간 희생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리더로서 도덕적 우위를 인정받기 힘든 진퇴양난 처지다.
론 클레인 백악관 비서실장은 2일(현지시간) CBS방송 인터뷰에서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다음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서 어떻게 하면 더 널리 백신을 보급하고, (복제할 수 있도록) 면허를 주고, 공유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 지재권 면제 방안 검토 의향을 시사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60개 개발도상국은 미국이 백신 지재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곧 WTO에 제출할 예정이다. 백신 지재권은 5,6일 열릴 WTO 일반이사회 회의에서 다뤄질 전망이다.
전향적 태도인 건 분명하다. 인도ㆍ남아공이 코로나 백신 지재권 규정 적용을 한시 면제해 달라고 WTO에 제안한 게 지난해 10월이다. 지재권을 살려 둘 경우 아무래도 생산 물량 확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 부국들의 독점으로 ‘백신 양극화’가 초래될 게 뻔하다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미국 등 주요 백신 개발국은 이후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 개발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데다 독점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혁신을 위한 동기 부여가 되지도 않으리라는 게 수용 불가 논리였다. 중국과 러시아 등 경쟁국에 미국민의 세금으로 개발된 백신 기술이 흘러나간다며 제약사들이 미 정치권에 로비를 벌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기류가 변했다. 우려대로 가뜩이나 백신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던 터에 방역 실패와 변이 확산이 맞물려 감염자ㆍ사망자가 폭증한 인도 등 일부 국가의 백신 수요가 갑자기 부풀었고 그 바람에 미국에 가해지는 압력까지 부쩍 커지면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최근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ㆍ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타이 대표를 만나 지재권 적용 면제를 옹호했다고 한다.
미 의회에도 지재권 포기 지지 세력이 만만치 않다. 알려진 대로라면 하원에 100명이 넘고, 상원 예산위원장인 버니 샌더스 의원(무소속)과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9명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결정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냈다. 샌더스 의원은 2일 NBC방송에 출연, “빈국들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도록 제약사들이 지재권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집단 면역’이 늦어지면 미국도 손해라면서다.
문제는 여전한 반대 목소리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최근 한 싱크탱크 연설에서 “지금은 미국의 혁신과 경쟁력에 다시 투자해야 할 때인 만큼 이에 성공하려면 헌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지재권 적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허 공유로 백신 제조사가 늘어날 경우 백신 원료를 둘러싼 경쟁이 심해져 오히려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거라는 지적도 정부 내 일각에서 제기된다고 한다.
때문에 아직 미국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지난달 27일 “여기(미국)서 백신을 제조한 뒤 전 세계에 공급하는 게 효과적인지 지재권을 포기하는 게 옵션이 될지 평가 중”이라고 한 데 이어 클레인 비서실장도 2일 방송에서 지재권은 백신 공급 문제의 일부라고 했다. 지재권 면제만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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