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에는 타인의 삶을 향상 시켜줄 책무가 따른다

입력
2021.05.05 04:30
수정
2021.05.06 12:20
20면

<28>친구가 유명할 때 생기는 일

편집자주

독창적 문체로 남성 패션지 ‘GQ’를 18년간 이끌어온 이충걸 전 GQ 편집장이 문화 현상의 이면을 새롭게 들춰 봅니다. 현재 서울 필동에 사는 이 전 편집장의 ‘멘션(mentionㆍ촌평)’은 격주 수요일자 <한국일보> 에 실립니다

어떤 이에겐 유명인이나 엄청난 부자들과 친하다는 것만 한 자부심도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떤 이에겐 유명인이나 엄청난 부자들과 친하다는 것만 한 자부심도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사람들은 어떤 가십에 대해 누구와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간파해 머리 속에 빨아들이는 신비한 재능이 있다. 그들은 표적이 된 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안 봐도 다 안다. 그리곤 빠진 조각들을 잘도 꿰맞춰 어떤 식으로든 스토리를 완성한다.

매일 유명세(有名稅)를 치르는 이들을 본다(유명세의 ‘세’는 세금, 즉 유명한 탓에 치르는 대가니까). 그때마다 누군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저주는 예쁘고, 돈 많고, 유명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불공평하다지만 평등할 때도 조금 있다. 누구나 아는 사람들은 백주에 서로 치고 받아도 눈길 하나 못 끄는 사람의 궁색한 평화를 모를 테지.

유명하지 않은 당신은 씻지 않고 밖에 나가도 된다. 오늘 몰래 찍힌 추잡한 사진을 내일 이란에 사는 이가 돌려볼 일은 없으니까. 복어 같은 중학교 때 사진이 흑역사일 리도 없다. 하루에 크런치 200개를 하라고? 절대 못 하지. 몸 만들어야 하니 두 달 동안 술을 금한다고? 숨을 끊어도 술은 못 끊는다! 인터뷰 때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이쪽저쪽 머리 조아릴 일도 없다. 당신은 어디서 무엇이든 살 수 있지만, 십대의 우상이 거리에서 복권을 산다고? 지하철을 타고 쇼핑 좀 할라 쳐도 불특정 다수의 카메라가 기다릴걸?

당신은 시대가 칭송하던 미남 배우 얼굴이 구시대의 것이라고 일축한다. 연기파 여배우는 신파의 극한일 뿐. 수정같이 맑다던 눈은 저러다 안구 튀어나오지, 싶게 그냥 크기만 한 거고. 당신이 결코 인정하지 않는 가수는 왜 불렀다 하면 음원 차트 1위냐고?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도 기분 나쁠 때 들으면 국물 넘치는 질탕한 창법인 걸.

유명인들에게 사회가 안겨주는 이득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안 좋다. 당신은 개미처럼 벌어 개미집 짓고 싶을 뿐인데, 그 여배우의 무경우는 어떻게 당당함으로 포장되어 몸값을 불려주는 거지?

사실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공정하지 않은 삶이 선사하는 강렬한 단면이다. 고르지 못한 삶은 고만고만한 진실과 섞여 당신이 사는 세상을 이루는 거니까.

어떤 유명인은 내지르는 일마다 완전히 다른 현실에서 산다는 걸 증명한다. 유명인의 얼굴은 다 부식된 가면. 전부 치유 가망 없는 환자들! 그러나 속으론 당신도 유명해지고 싶어한다. 명성이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단어라서. 모두 평등을 주장하지만 얼굴과 재능처럼 기회도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당신은 유전적인 행운이 없다는 악몽에서 깨어나 전략을 바꾼다. 유명인의 친구가 되자!

어떤 이에겐 유명인이나 엄청난 부자들과 친하다는 것만 한 자부심도 없다. 그들과 얼마나 친한지 그들의 어떤 점이 예쁘고 못났는지 열거하느라 매일 시간이 없다. 유명인의 친구는 다른 의미로 사회적 인기를 누린다. 레이프 가렛의 키스를 받은 여학생을 보려고 전교생이 몰려오듯이.

당신은 다 보았다. 초탈해 보이는 사람들조차 유명인에 대해 일종의 강렬한 연애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걸. 게다가 인구통계학적으로 누구에게 폭 빠지는 시기가 있다는 말도 다 틀렸다. 구단 유니폼을 걸친 채 옆구리 살이 비어져 나오는 야구광 아저씨, 말미잘보다 번쩍거리는 피부 한 번 만져보자고 경쟁자들을 밀치며 멧돼지 집중력으로 돌진하는 아줌마들을 보면. 당신은 그들보다 나은 부류라고 여기기 전에 어째서 약간의 접촉조차 그 구두 굽을 씰그러뜨리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때 회전 칼날이라도 달고 오지 않으면 그 유명한 분 몸에서 비어져 나온 털 한 올 건지지 못하리라는 것도.

어느 기회에 당신은 유명 가수와 한자리에 앉는다. 당신은 워낙 남의 비위를 맞추는 성격도 아니라서 첫 만남에 관한 꿈까지 꿨다는 말은 안 했지만 자꾸 속이 울렁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남들이 그럴 땐 저열하고 경멸스럽더니, 벅찬 상대를 좋아하는 사람의 심정이랄까. 어쩐지 숨쉬는 것조차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같이 홍어도 먹고 전화번호를 따는 기적의 날, 만난 지 몇 시간 안 됐는데 긴 세월 안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은 뭘까? 당신은 그분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겠다고 속으로 약속한다.

같이 어울리는 동안 당신은 유명하다는 게 뭔지 샅샅이 맛본다. 어딜 가도 사람들은 침을 한 양동이 흘리며 유명인을 쳐다본다. 그분은 우기도 아닌데 침 도랑이 흐르는 도로에 교통 혼잡을 일으키고, 우주 전쟁조차 잠재울 만큼 훌륭하니까. 밥 먹으러 가도 같이 앉은 테이블은 그 식당, 아니 그 행정구의 중심이 된다. 당신은 괜히 우쭐대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눈에 띄는 얼굴 옆에서 대책 없이 평범한 자기 얼굴이 밉긴 해도. 그러나 어차피 평생을 조연처럼 살아 왔다는 걸…

그 유명한 분을 한동안 못 보면 질투 같은 궁금증이 끓어오르지만 당신은 감정을 누른다. 목 매달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때로 어떤 전화는 받지 않는다. 그분이 전화할 때 통화 중이어선 안 되니까. 그분이 전화를 하면 있던 약속도 취소한다. 그분은 주변에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텐데도 그중에서 당신을 택했으니까.

유명인과 친해지기 전에 스스로 누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유명인과 친해지기 전에 스스로 누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들었는지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큰 건 아니고 약간 귀찮은 건데, 친구들은 당신과 그분 사이를 질투하고 있었다. 유명한 분과 친해질 기회도 없고 연락처를 주고받을 행운도 없는 친구들이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찍은 당신의 사교 생활을 캐묻자 당신은 얼마 전 그분과 갔던 모임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그냥 넘어간단 말인가. 유명 소설가도 속한 모임에 있다 보니 대중의 삶을 나아지게 하려는 고뇌에 일조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당신은 경기에 뛰지 않고 덤으로 메달을 받는 후보 선수 같았다.

시원찮은 인간들이 그분에게 기웃거리는 걸 도저히 못 참을 때 당신은 그분의 대변인이자 인간 보호막 노릇을 자청한 셈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기자들은 그분에 대해 묻자고 당신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이젠 당신도 긴장해야 했다. 그분만큼 유명해졌기 때문에.

그 사이 문제가 더 생겼다. 그 유명한 분이 당신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이다. 못 들어줄 것도 없다. 그렇게 해서 그분이 행복하다면. 당신에게 중요한 건 유명한 분과 우정을 지키는 것.

어느 순간 그 유명한 분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한 달쯤 됐나? 당신은 오늘쯤 그분에게 문자라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애써 담담한 척 자문한다. 내가 유명한 친구를 가질 가치가 있을까? 잡담이나 나누기엔 너무 큰 존재를? 그분은 내 환상을 채워주려고 친구가 되어준 게 아닌걸.

그 후 어느 자리에서 마주쳤는데 그 유명한 분은 당신을 모르는 사람 보듯 한다. 얼굴을 잊어버린 건가? 짚어 보니 언제부턴가 카톡을 보내도 묵묵부답이었지. 맞아. 그 유명한 분은 당신과 보낸 시간을 다 잊어버렸다! 당신은 그분이 부탁한 일들을 해내는 것이 큰 기쁨이었는데, 그분을 위해 물건값을 깎고 술에 취할 때마다 집까지 태워줬는데.

두절 상태가 길어지자 당신은 그분이 빈 집에서 배달 음식만 먹으며 어두워지길 기다릴 거라고 생각한다. 당신 없이 갈 데라곤 내리막길밖에 없다고. 그런데 그 유명인은 여전히 다수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으로 건재한 채 달걀빛 가죽 다이어리를 펼쳐 쇼핑 목록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처음엔 그게 조금만 밉더니 어느 때부터 증오의 대상으로 돌변한다. 증오가 가라앉아도 다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정말, 증오하기 때문에.

살다 보면 가끔 두 눈 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있는 법이다. 관계가 깨진 이유가 당신이 멋지지 않아서도 아니며, 성공적인 관계의 기초는 믿음인데 둘 사이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생각은 꼬리를 문다. 나는 팬과 스토커의 경계를 어슬렁거린 걸까? 누가 사랑해줘야만 살아갈 수 있는 유명한 분에게 나는 궁극의 액세서리이자 필수 소지품이었을까? 명성을 뒷받침하는 트로피인 동시에 휘장이면서 배지였나?

당신은 우상 숭배의 길에서 탈선한 이들의 무례한 방식을 따르지 않고 조용히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인다. 더 이상 반사체로 살 수 없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좀 그렇지만, 그분을 만나지 않았을 때가 더 좋았어…. 당신은 그렇게 진정한 극단론자가 되었다.

당신과 유명인이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명성에는 타인의 삶을 향상시켜줄 책무가 따른다는 것을 당신이 혹시 천국에 가게 되면 문 앞에서 베드로가 숙명적인 질문을 할 것이다. 너는 누구의 삶을 유익하게 만들었니? 너를 알게 됨으로써 누구 인생이 더 나아졌니? 당신이 거기 가고 싶다면 유명인과 친해지기 전에 답을 가지고 가야 할 것이다.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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