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1분마다 보고했어"...90년대생 괴롭히는 꼰대 갑질 여전

입력
2021.05.02 17:49
수정
2021.05.02 17:5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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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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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상사는 상명하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회식 때마다 술을 먹는지 안 먹는지 지켜보고 억지로 먹게 합니다. 친구와 저녁 약속을 취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가 중요해, 친구가 중요해?'라며 소리를 칩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젊은 직원들에게 '개념 없는 90년대생'이라고 합니다. 정말 힘듭니다." (2021년 3월 직장인 A씨)

"상사가 업무 보고를 30분마다 하라고 합니다. 10분마다 해야 하는 걸 30분으로 줄여준 거라고. 업무 보고 하느라 다른 일 하기가 어렵다고 했더니 '나는 옛날에 1분마다 했어'라면서 '라떼는~'을 시전하시네요. 정작 가르쳐줘야 할 내용은 하나도 안 가르쳐주면서 30분마다 업무 보고를 하라고 억지 부리는 상사 때문에 일 처리가 힘들어요." (2021년 1월 직장인 B씨)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 10개월. 현장에서는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갑질'이 여전하다고 아우성이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제보 중 꼰대 갑질 사례들을 모아 2일 소개했다. "일터로 출근하는 20대 청년들이 '까라면 까'야만 했던 60, 70년대생 40, 50대 부장들을 만나 갑질을 당하고 있다"고 직장갑질119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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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된 사례에서 드러난 꼰대 상사의 특징 중 하나는 술을 강요하며, 아무때나 전화를 한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C씨는 "실장이 직원들과 점심에 소주 2, 3병을 마시고 저녁에도 매일 술자리를 하면서 부하 직원들을 부른다"며 "밤이건 새벽이건 동틀 무렵이건 상관없이 전화를 한다"고 토로했다.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20대 D씨도 "한 꼰대 상사는 엠티에서 막내를 향해 '감히 먼저 자냐' '기본이 안 됐다. 싸가지가 없다' '일을 못하면 앉아 있기라도 잘해야지' 같은 폭언을 퍼붓더니 결국 깨워 토할 때까지 술을 먹게 하더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상사들은 이런 행동이 갑질이라는 인식 자체를 못했다.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17~23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0대 직장인들은 '직장 갑질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응답이 51.8%로 가장 높았던 반면, 50대는 '직장 갑질이 줄어들었다'는 응답이 63.7%로 가장 높았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젊은 세대는 직장 갑질이 여전하다고, 기성 세대는 많이 줄었다고 상반되게 느끼고 있는 셈이다.

김유경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다수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가해자로 지목된 상사가 조사 과정에서 '라떼는'을 앞세워 본인의 가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나아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 맞대응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직장 내 괴롭힘법이 제정된 가장 큰 배경 중 하나가 이처럼 왜곡된 조직문화 및 상명하복식 위계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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