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민 우선' 서방, 中·러에 개도국 대상 '백신 외교' 밀렸다"

입력
2021.05.02 15:20
英 EIU 보고서… "훼손된 평판 회복 어려워"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해야" 압박에도 직면

지난달 30일 인도 뭄바이의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 센터 앞에 3일간 접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인도의 '경제 수도'로 불리는 뭄바이는 백신 물량 부족 탓에 이날부터 3일간 접종을 중단했다. 뭄바이=AFP 연합뉴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자국민부터 챙기느라 중국ㆍ러시아와의 대(對)개발도상국 백신 외교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피해가 극심해지는 등 세계 사정이 악화일로인 만큼 선진국이 대승적으로 잠시나마 백신 지식재산권 적용을 면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몇 달간 아시아와 동유럽, 중남미 등에 코로나 백신 수백만 회 접종분을 보내왔다며 글로벌 위상 강화는 물론 서구 영향력이 줄고 있는 개도국들과의 관계 강화를 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관에 따르면 백신 제공이 무상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다. 기증뿐 아니라 판매 방식으로도 공급돼 상업적 목적도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중국ㆍ러시아의 백신 수출은 자국민 수요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국내외에 백신 생산 설비를 추가 개설하는 방식으로 두 나라가 이에 대처하고 있다고 EIU는 전했다.

그러나 서방의 움직임은 딴판이다. 자국민에 백신을 먼저 접종해야 한다는 국내 정치적 압력 때문에 최근까지 백신 외교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게 EIU의 진단이다. EIU는 서방 선진국들의 평판은 이미 훼손됐고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는 향후 몇 년 내 개도국에서 중국ㆍ러시아의 입지를 강화하게 될 공산이 크다고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백신 외교전에서 중국ㆍ러시아에 패하고 있다는 게 기관의 결론이다.

당장 코로나 재유행으로 연일 확진자 기록이 깨지고 있는 인도에 자국산 백신을 먼저 들여보낸 나라도 러시아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인도 보건당국의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은 러시아제 백신 ‘스푸트니크 V’ 1차 공급분이 1일 인도 남부 하이데라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개발ㆍ생산에 인도가 간여하지 않은 백신이 인도 내에서 접종되는 건 스푸트니크 V가 처음이다. 지금껏 인도 현지에서 생산되는 아스트라제네카(AZ)사의 코비실드와 현지 업체 바라트 바이오테크가 자체 개발한 코백신 등 2종의 백신만 인도 내 접종에 쓰여 왔다. 현재 미국만 아직 자국 내 사용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AZ 백신 원료를 주기로 했을 뿐 인도에 백신 완제품을 보낸 서방국은 없다.

서방이 틀어쥐고 있는 건 백신 물량뿐 아니다. 인도ㆍ남아프리카공화국이 코로나 백신ㆍ치료제 관련 특허 규정 적용을 잠시라도 면제해 달라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안한 게 이미 지난해 10월이지만 미국ㆍ영국 등 서방국들의 불가 입장은 여전하다. 이에 인도ㆍ남아공 등 60개 개도국이 백신 지재권 규제가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새 제안서를 며칠 내 WTO에 보낼 계획이라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이 1일 보도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현재 세계 207개 국가와 지역에서 약 10억300만 회의 백신 접종이 이뤄졌는데, 이 중 세계 인구 비중이 16%인 고소득 국가의 백신 투여가 전체의 47%를 차지했다.

권경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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