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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이 된 윤여정'...캐면 캘수록 나오는 매력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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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윤여정에게 ‘윤며들고’ 있습니다.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위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의 솔직하고 담백하면서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면모 때문일 겁니다. 인품에 반한다는 거겠지요. 그래서 오스카 수상작인 영화 ‘미나리’를 봤든 안 봤든 윤여정의 한마디 한마디에 빠져들고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윤여정은 어떤 배우, 어떤 사람일까요. 그의 오스카 수상을 축하하며 문화부 기자 4명이 모여 윤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소범] 일단 체력이 대단하시다고 생각했어요. 매일 그렇게 많은 질문을 상대하고, 심지어는 외국어로 해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내는 거 자체가 일단 리스펙트! 역시 체력이 실력.
[라제기] 우아하시다.
[양승준] 윤여정이 아이돌이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입는 옷 하나 하나에 다 관심이고. 이러다 파파라치 붙는 거 아닌 지 모르겠어요.
[권영은] 정말 똑똑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직관적으로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요. 영어도 어려운 단어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게 아닌데 쉬운 단어로 핵심을 딱 짚고 유머까지 곁들이는데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한] 진정한 유머는 조롱이 아니라 영민함에서 나온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한] 전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으면 사치스러운 것이다"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라] 그 말도 좋아요. 그래서 예순 넘으면서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일하기로 했다고. 전에는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싫은 사람과도 일했다는 말이잖아요. 예순 넘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사치이긴 해요. 저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라는 말이에요.
[양] 전 "사랑하는 아이들 덕분에 엄마인 제가 열심히 일했고, 덕분에 상을 받았다." 이 한마디, 미나리 같았던 윤여정의 삶을 다 표현해주는 것 같았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내 머릿속에 푸르른 미나리 향내가 확 퍼지는 것 같았고. ‘아 맞아, 윤여정도 엄마였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그와 우리의 삶이니까요.
[라] 조영남 관련 민감하게 반응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회고록 같은 연재물 부탁드렸는데 버럭 화를 내셨어요. 조영남의 발언은, 그냥 축하한다 그렇게만 말하면 될 걸, 아예 언급을 하지 말던가. 정말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기)’가 안 되는 거죠.
[권] 자신의 커리어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뤄낸 여성을, 이혼한 지 30년도 더 지난 한 남성의 전 아내로라도 엮어 내려는 일부 시도가 굉장히 불편했어요. 분위기 파악 못한 건 조영남에게 마이크를 들이댄 언론도 마찬가지였죠.
[한] 복수는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이미 윤여정 인생에서 소거된 지 오래인데 자신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다니 자의식 과잉이 아니신지. 자신의 과오마저도 낭만화하는 노년 남성과, 명백한 성취에도 취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년 여성의 차이가 보였달까요.
[권] 윤여정은 수십 년의 연기 경력에도 나를 '노바디'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스스로 뛰어드는데, 조영남은 자기객관화도 안 되고 여전히 70·80년대 갇혀 살고 있는 게 두 사람이 완전히 대비되는 지점이죠.
[라] 저는 인터뷰로 3번, 우연히 합석해서 밥을 먹으며 1번, 이렇게 4번 뵀는데 웃기면서 뼈 때리는 말씀 많이 하셨어요.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뼈 맞을까 봐. 깐깐한 분이지만 대화 나누면 또 술술 웃긴 이야기 풀어내세요. 수다스러운 이웃 어른이신데 뭐 잘못하면 무섭게 따지고, 또 지나면 잊어버리는 그런 분 같아요. 소탈하신 것 같아서 배우 같지 않으신데, 어느 순간 돌아보면 또 배우이신 분. 뭔가 우리가 접선 가능한 분 같은데, 또 멀리 있는 스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옷 잘 입고 옷 맵시 좋은 배우. 이번에 드레스에 항공 점퍼 입은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양] 옷 잘 입고 맵시 좋은 건 맞는 것 같아요. 오스카 때 드레스 위에 항공점퍼 입은 것도 그 나잇대에 소화하기 쉽지 않잖아요. 최근 나영석 PD가 윤여정을 만났는데, 그때 원피스를 입고 왔나 봐요. 그거 보고 '아, 딸이 입어도 좋겠다'고 했나 봐요. 너무 튀진 않는데 편안함 속에서 틀을 깨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영국 아카데미시상식(BAFTA) 땐 디올 드레스 입고, 오스카 땐 상대적으로 저렴한 150만 원대 드레스 입고. 다양하게 소화하는 게 재밌어 보여요.
[한] 언젠가 공개된 자택 거실에도 디자인 체어가 빼곡하더라고요. 르코르뷔지에, 마르셀 브로이어, 미스 반 데어 로에 등. 마흔 넘은 큰아들이랑 동갑인 의자라고 하더라고요.
[라] 그 의자들을 한국에 소개되기 전부터 해외에서 사왔다는데 안목이 남다르시죠. 그래서 상업성 따지지 않고, 예술적 안목으로 홍상수, 임상수 감독과 협업을 했던 듯해요. 배우로서 감독과 의견이 어긋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 감독을 믿으니까 하기 싫었던 장면에 대한 연기를 했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홍상수, 임상수, 이재용 감독에 대한 신뢰로 출연을 하고, 연기 역시 또 거기에 맞춰 하는 거고요. '죽여주는 여자' 촬영 때도, 정말 찍기 싫은 장면이 있었는데, 이 감독이 테이크를 한번 더 요구하니까 "왜?"라고 절규하듯 외쳤대요. 그리고는 결국 찍으셨다고 합니다.
[한] 패션도 패션이지만 그런 감각, 안목이 확실히 예전부터 남달랐던 거 같아요. 사실 지금 윤여정을 둘러싼 신드롬은 단순히 오스카를 받았다는 사실 이상의, 캐면 캘수록 나오는 사람 자체의 멋있음이 80% 이상인 듯해요.
[한] 개인적으론 전형적인 할머니 역할보다 ‘죽여주는 여자’나 ‘하녀’에서와 같은 캐릭터를 연기할 때가 훨씬 좋아요.
[라] 맞아요. 윤여정이 아닌 느낌이죠. ‘돈의 맛’의 백금옥 같은 연기가 저는 더 멋있어요. 젊은 남자를 성 착취하는 역할인데, 불쾌한 내용일 수 있지만 기존 통념을 뒤집어서 통쾌했어요. ‘바람난 가족’의 홍병한, ‘돈의 맛’의 백금옥, ‘죽여주는 여자’의 박카스 할머니 같은 연기를 해왔다는 것이 큰 차이라고 봅니다.
[권] 전형적인 할머니, 엄마는 하기 싫고 다르게 하고 싶은 게 필생의 목표라고 말했는데 본인 스스로를 잘 알고 계신 듯해요. 전도연이나 김혜수 같은 배우도 대본이 예전만큼 잘 안 들어온다거나 캐릭터가 다양하지 않다고 얘기했듯, 6070 여배우에겐 늘 전형적인 역할만 제의가 들어오고 그래서 다양한 연기를 펼칠 기회가 없다는 점도 짚어볼 필요가 있죠.
[라] 그런데 윤여정은 그걸 돌파했으니 대단한 거죠.
[양] 위험한 중년? 그게 김혜자, 나문희가 아닌 윤여정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중장년 배우들 보면 꼭 부처님 가운데 한 토막 같잖아요. 되도록 말 아끼고, 좋은 말만 하고. 근데 윤여정은 다르죠. 평소에도 투덜투덜하고, 누구 흉도 때론 보고, 말도 까칠하고, 후배들한테 쓴소리도 하고. 만약 김혜자, 나문희가 대기실에서 후배 혹은 제작진 불러 싫은 소리를 했다고 하면 '국민엄마가 그랬다고?' 했을 텐데, 윤여정이 그랬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 있지 않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라] 결국 사람들과 소통하고 만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스스로 기회를 만든 듯해요.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저 사람은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을 줬다고 할까요. ‘죽여주는 여자’ ‘여배우들’은 이재용 감독이 윤여정과 이야기하다 기획한 거거든요. 이재용 감독이 '여배우들'을 만든 건, "워낙 말을 재미있게 하시니 저걸 자기 혼자만 들으면 감독으로서 직무유기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권] 자기만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간 부분이 대단하죠. 그래서 저는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이번 수상은 윤여정 개인의 승리"라는 말에 공감해요.
[양] 전 ‘여배우들’에서 그 장면이 제일 좋아요. "동료가 돼 줘서 고맙습니다" 김옥빈에게 담배 한 대 내주면서.
[라] 연기를 또박또박 잘하시는데, 뭐랄까, 계산이 잘 됐는데 계산이 안 보이는 연기를 하세요. 결국 노력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송강호 같은 분들은 동물 같잖아요. 연기를 사냥감이라고 하면, 송강호 같은 분은 맹수 같고, 윤여정 선생님은 총을 든 사냥꾼 같아요.
[권] 메소드 연기를 하는 천재 연기자가 아니라 노력하는 직업 연기자라는 점이 좋았어요. 그에 대한 응당한 평가를 결국 언젠가는 받는다는 게 사필귀정 같고.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어요.
[한] 인터뷰에서도 ‘폐 끼치지 않으려고 연습했다’ ‘브로드웨이로 가는 길은 노력뿐이다’ ‘먹고 살려고 연기했기 때문에 대본을 성경처럼 봤다’고 했는데 그런 발언이 윤여정 연기에 대한 정확한 설명 같아요.
[라] 예전 인터뷰 때도 대본을 들고 오셨어요. 시간이 없어서 큰일이라며 안절부절못하셨던 기억이 나요.
[양] 전 이번 윤여정 신드롬이 사람 자체의 매력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윤여정의 연기가 독보적이라 생각하진 않아요. 가수로 따지면 절창이라기보다 개성 있으면서도 편안해서 계속 듣고 싶은 스타일이랄까.
[양] 영화 '하녀'요. 그림자 짙은, 그 하녀 연기는 윤여정 아니면 안 됐을 거 같아요. 그리고 드라마는 '사랑이 뭐길래'. 윤여정도 평범한 엄마다 싶었던 작품이죠. 예능은 '꽃보다 누나'요. "나도 67살은 처음이야" 이 말이 기억에 남아요.
[라] 영화는 ‘죽여주는 여자’, 드라마는 ‘디어 마이 프렌드’, 예능은 ‘꽃보다 누나’. ‘죽여주는 여자’는, 자기 생계가 급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는 역할이라 마음이 아팠어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바로 윤여정 같아서 좋았던 듯해요. 깐깐한데 속정 깊은 그런 분. '꽃보다 누나'는 역시나 인생에 대한 그 명언 때문에! ‘디어 마이 프렌드’는 노희경 작가의 대사들을 조근조근 소화해내는 듯해서 좋았어요. 윤여정의 연기는 김혜자, 나문희와는 다른 감칠맛이 나요.
[한] 저도 ‘죽여주는 여자’, ‘디어 마이 프렌드’, ‘꽃보다 누나’.
[권] 저는 윤여정의 전작을 본 게 별로 없어서 대표작을 꼽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고요. 다만 제게 윤여정과 관련해서 지금까지 혹은 앞으로도 가장 강렬하게 각인될 것 같은 장면은 이번 오스카에서 한예리와의 투샷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후보자는 딱 한 명만 시상식에 대동할 수 있었는데 윤여정이 한예리를 데려가서 자기 옆자리에 앉혔고 "넌 이제 견학했으니 다음에 또 좋은 기회가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는 것도 멋졌고요.
[권] 젊은 여성 후배를 끌어주는 롤모델, 어른 같은 느낌이랄까, 저 역시 일하는 30대 여성으로서 벅차오르는 게 있었어요. 제가 윤며드는 이유인가 봐요.
[양] 통통 튀면서 적당히 흙냄새도 나서. 윤여정을 롤모델로 삼을 만큼 존경하진 않지만, 그의 노년은 동경해요. 노을 보면서 벤치에 기대앉아 와인 한 잔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거 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선택하며 사는 삶을 노년의 사치라고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
[한] 윤여정은 딱히 자신에 대한 존경을 바랄 것 같지도 않아요. "얘, 뭘 나를 존경을 하니? 그냥 너 내키는 대로 살아. 남들 따르려고 하지 마~"라고 할 거 같은. 그리고 그게 윤여정의 매력이죠.
[라] 저희가 흔히 아는 어른들과 다른 유형의 인물이니까요. '금사빠' '머선 129' 같은 신조어를 써도 금세 알아들으실 듯하고, 고민을 털어놓으면 지나치게 훈수 두는 대신 와인 한 잔 사주면서 위로해주실 듯해 '윤며드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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