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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의 마지막은 아름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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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남매를 낳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둘째 출산 후 일터로 돌아오는 엄마의 비율이 5%뿐인 독일에서 의사로 시작했던 커리어를 EU의 수장으로까지 뻗어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9년 위원장 자리에 오르며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와 함께 유럽의 리더로 떠올랐던 그는 당시엔 정치적 역량보다 여성으로서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다.
최근 그가 파급력이 막강한 능력자로 새삼 국제뉴스의 중심에 다시 섰다. 터키-EU정상회의에서 격에 맞는 의자가 준비되지 않아 느꼈던 심정을 공식화해 '소파게이트'에 불을 지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코로나19 집단면역 계획에 차질이 우려되는 우리에겐 적잖이 부러운 소식의 주인공으로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폰데어라이엔의 개인 외교가 빛을 내면서 지난주 EU가 화이자 백신 18억 회분 확보 계약에 도달했다는 뉴스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은 아스트라제네카 생산 문제로 유럽의 백신난이 불붙기 전인 1월 화이자의 앨버트 불라 CEO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문자와 전화를 통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백신 공급량이 75%나 줄었다" 등의 하소연을 하며 수시로 백신 제공을 읍소했다고 한다. 그의 구애는 "세상의 수많은 대통령과 왕들이 나에게 전화한다"고 말하며 콧대를 세웠던 불라를 끝내 사로잡았다. '18억 회분'이라는 폰데어라이엔의 괄목할 성과는 단지 집요함의 결과물만은 아니다. 불라는 "(폰데어라이엔은) 모든 디테일을 잘 알고 있었다"고 평했다. 끈질긴 설득과 더불어 충실한 공부가 함께 이끌어낸 성과인 셈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보니 끊임없이 변이한다. 중국과 유럽에서 지난해 대규모로 확산할 때 비교적 잠잠했던 13억 인구의 인도가 변이 바이러스 창궐로 매일 더 지독한 지옥도를 그려내고 있다. 미국은 물론 척을 지고 있는 중국마저 앞다퉈 인도에 백신 원조를 약속한다. 냉전시대에 조금이라도 아군의 전략무기를 전진 배치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열강들을 떠올리게 한다. 전 지구의 세력이 백신 접종과 공급이라는 날줄과 씨줄로 얽힌 체스판에서 온갖 기량을 동원해 한 수 한 수를 짜내고 있다. 팬데믹 탈출의 공동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자 자국민의 생존이다.
불라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지도자들이 코로나19 백신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후발주자로 냉엄한 경쟁 무대에 올랐다. 백신 확보 실기의 잘못을 되돌리기 위해 정부는 물론 민간의 모든 역량을 끌어와 대응해야 할 때다.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음에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무엇보다 이달 한미정상회담과 내달 G7정상회의에 나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에 거는 기대가 크다. 현 정부의 외교력은 물론 종합적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줄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백신 2차 접종 후 "집단면역 목표를 앞당겨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백신 공급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공교롭게도 수급 문제에 봉착한 화이자 백신의 1차 접종이 중단된 직후였다.
국민은 지난해 빛났던 K방역의 마지막 장면이 아름답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려면, 대통령의 큰 소리가 허언이 아니어야 한다. 폰데어라이엔처럼, 집요함과 충실한 공부가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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