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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사면'은 국익일까...과거 주요 경제인 사면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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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 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사면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입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79조에서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에 구체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온전히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사면 여부가 달려 있는데요.
하지만 대통령이 사면 권한을 마구 쓰면 수사 기관의 수사와 사법부의 재판 결과가 한 순간에 무의미해지고 국민들 입장에선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이 마음껏 꺼내 쓸 수 있는 카드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국민들이 '사면을 할만 하다'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그 바탕 위에서 신중하게 선택을 해야 하죠.
역대 대통령들은 사면권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각각의 정권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기업 총수 등 경제인들이 포함됐죠.
보통 경제인 사면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주요 경제 단체 등에서 해당 경제인이 청와대에 사면 건의를 하면 대통령이 특별사면 할지를 결정하는 순서로 진행이 됐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드는 이유는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 회장이 꼭 필요합니다'였지만 이를 두고 끊임없이 '특혜 논란'이 벌어졌죠.
해당 경제인에 대한 사면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나라 경제는 늘 좋아져야 하는데 특정 인사 몇 명이 꼭 필요하느냐 식의 논리가 상식과 어긋나지 않느냐는 문제를 제기하죠. 대한민국 경제 시스템이 몇 명의 총수에 의존해야 할 만큼 허약하느냐는 지적도 있고요.
경제인 사면이 활발하게 이뤄지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정부입니다.
이전 정권에서는 시국 사범 및 일반 형사범 등이 명단에 올랐지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 금융을 받은 외환위기 이후 '경제 살리기'가 국가적 중대 과제가 된 후로 경제인에 대한 사면 논의가 활발해진 겁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에는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과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김석현 전 쌍용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등이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립니다.
특히 박 회장에 대한 사면 취지는 '평창 올림픽 유치'였습니다.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이었던 박 회장은 당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었지만 분식 혐의 등으로 위원 자격이 일시 정지된 상태였죠.
경제 단체들은 박 회장이 사면이 되면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열심히 뛸 수 있으니 사면을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였죠. 사면 후 박 회장은 올림픽 유치에 나름대로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임기 첫해인 2008년에도 경제 5단체가 8·15 광복절 일주일 전에 경제인 사면 건의안을 청와대와 법무부에 제출했습니다. 정부 수립 60주년을 맞아 광복절 특사가 이뤄졌고, 많은 대기업 총수가 포함됐습니다.
당시 사면 명단에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이 있었죠.
사면된 정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2,400개가 넘는 국내 협력 업체와 역대 최대 규모의 공정거래 협약을 맺었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이 있었는데요. 당시 이 회장은 2009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발행해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시세 차익을 얻도록 해준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0억원을 선고받았습니다.
특히 이 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는 경제 단체가 아닌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가 나섰다는 점이 눈에 띄었는데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대한민국 국적의 IOC 위원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죠.
이어 강원 강릉시와 시 의회, 평창지역 300개 사회단체도 "이 회장의 사면복권을 계기로 두 번이나 유치에 실패한 동계올림픽을 꼭 유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결국 청와대는 같은 해 12월 체육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김 회장에 대한 'IOC 특사'를 단행했습니다. 경제인 한 명을 위한 사면은 헌정 사상 처음이었죠.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당시 결정에 대해 "이건희 회장 한 사람을 단독으로 사면하면 목적도 뚜렷하고 본인도 올림픽 유치를 위해 더 열심히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습니다.
사면 이후 이 회장은 IOC 위원으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 복귀합니다. 1년 6개월 동안 110명의 IOC 위원을 만나며 열심히 뛴 것으로 알려졌죠. 결국 평창올림픽 유치는 성공합니다.
박근혜 정부에는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이 이뤄졌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사면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겠다는 기조에 따라 경제인·정치인 사면을 단행한 결과죠.
하지만 2015년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국가 경제 회복을 위해 수감 중인 대기업 총수를 사면해야 한다는 요구가 경제단체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고개를 들었죠.
같은 해 광복절 특사에는 최태원 SK 회장이, 이듬해인 2016년 광복절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사면 명단에 포함됩니다. 이 회장은 지병 등 건강 문제도 감안한 것으로 전해졌죠. 당초 사면 대상으로 거론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은 빠졌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두 번째 사면이었습니다. 2008년 이미 한 차례 사면됐던 최 회장은 사면 직후 또 다시 SK텔레콤과 SK C&C 등 주요 계열사로부터 497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사면된 지 5년 만에 다시 수감된 것이죠.
최 회장은 사면 이후 2024년까지 국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46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생산 시설 3곳을 경기 이천과 충북 청주 등에 구축했죠. 최 회장이 이런 투자 강화로 사면 특혜 논란을 잦아들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법적 잘못을 대형 투자로 만회하면 된다는 국민적 박탈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인 사면이 아직 한 건도 없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 뇌물 등 5대 중대범죄자의 사면권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한데 따른 것이죠.
하지만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문제에 다시 관심거리로 떠오르는 분위기입니다.
재계는 미국과 중국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본격 패권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시점에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을 단행해 그가 자유롭게 경제 활성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27일 경총은 대한상의, 경총,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단체 명의로 청와대에 이재용 부회장 사면 건의서를 전달했습니다. 국내 주요 경제 단체들이 한 기업인의 사면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이들 단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디지털화가 가속하면서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도 새로운 위기와 도전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진다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의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어요. 반도체 패권 전쟁 속에서 총수의 부재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될 것이란 경고죠.
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글로벌 산업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시기"라며 "과감한 사업적 판단을 위해선 기업 총수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죠.
이들 단체는 "기업의 잘못된 관행과 일탈은 엄격한 잣대로 꾸짖어야 함이 마땅하다"면서도 "기업의 본분이 투자와 고용 창출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데 있다고 본다면, 이재용 부회장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지키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할 수 있도록 화합과 포용의 결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대한상의, 경총, 중기중앙회 등 사면 요청 단골손님들 외에도 무역협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인 사면 요청 명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단체들까지 '이재용 사면'에 이름을 올렸는데요.
이런 낯선 이름은 비단 경제 단체뿐 아닙니다. 이례적으로 종교계와 대한노인회 등 기타 단체 등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청이 나옵니다. 유림과 사찰 등에서 기업인의 선처를 호소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죠.
우선 유림 대표기관인 성균관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부여해 지금의 여러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하도록 독려하는 것도 이 부회장이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받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어요.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주지들이 12일 이 부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정부에 제출했고, 오규석 부산 기장군수 역시 이 부회장의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최대 노인 단체인 대한노인회도 특별사면을 건의했어요.
청와대 국민 청원에는 올해만 10건이 넘는 이 부회장 사면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심지어 '백신 특사 역할론'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백신 확보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 대신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듬뿍 담아서요.
화이자나 모더나 등 백신 확보에 바이든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의 반도체 투자로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해 한국에 더 많은 백신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데 좋은 카드가 될 것이란 주장입니다.
이 부회장이 법정구속 이전, 코로나 19백신 관련 출장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식도 흘러나왔죠.
과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회장의 사면이 추진됐던 장면과 오버랩됩니다.
각계의 건의와 탄원이 쏟아지지만 청와대 측은 아직까지 원론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경제 5단체 건의와 관련 "현재까지 검토한 바 없고, 계획도 없다"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단순히 경제 측면에서만 사면을 논의하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총수 일가에 대해 많은 국민이 여전히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데다 이 부회장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국정 농단 사건과 관련 있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국정을 농단한 중대사범에 대한 사면은 절대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구요.
게다가 문 대통령이 평소 특별 사면을 바람직하지 않게 보는 소신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죠.
물론 역대 정권에서 단행한 사면 사례를 비춰보면 대통령의 판단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의 희망 노래가 결실을 맺을지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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