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성공 모델 한국 아파트, 개발 너머 '우리'를 돌아봐야 할 때

입력
2021.05.01 04:30
12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값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 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서울 강남구의 고가 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남구의 고가 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 아파트, 공동체를 복원하는 공간이 되어야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60여 년 전인데 지금은 전국 주택의 62%에 이를 만큼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제안한 마천루는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 대표 주택유형이 된 것이다. 수천 년 노하우가 축적된 초가집과 기와집은 물론 양옥도 아파트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졌다. 재개발하면 백이면 백 아파트단지가 되고, 신도시에서도 아파트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이제는 굳이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지 않아도 눈만 뜨면 어디서나 아파트가 보인다. 왜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대세가 됐을까. 그동안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미래 공동체를 위한 아파트는 어때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주택난의 구원투수, 아파트

집들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서 여러 가구가 살도록 만든 아파트는 그 역사가 장구하다. 2세기 로마에서는 인구가 급증하자 임대형 아파트 인슐라(Insula)가 일반화 됐다. 19세기 중반 파리시장 오스망은 대로를 정비하면서 6~7층짜리 아파트를 대거 건설했다. 그러나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는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해 1952년에 준공한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이다. 이 기념비적인 12층 건물은 2차 대전 후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자 기획된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이후 세계 각국에 이 공동주택 모델이 확산됐는데, 대부분의 전문가가 가장 성공한 국가 중 하나로 우리나라를 꼽는다.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도입된 계기는 역시 주택난이었다. 전쟁으로 많은 가옥이 파괴돼 가뜩이나 주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까지 도시로 몰려 주택난은 극에 달했다. 서울의 통계를 수록한 시세일람에 따르면 전후 1950년대 말까지 주택은 가구수에 비해 30~40% 부족한 상태였다. 휴전 직후인 1954년 서울에는 23만 가구가 거주했는데, 주택수는 15만 가구로 8만 가구가 부족했다. 연 1만 가구 이상 공급했지만 가구수는 더 빨리 늘어 1958년에는 부족한 주택수가 12만 가구로 확대됐다. 사정이 이러하니 주택을 대량으로 신속하게 공급할 방안이 절실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회사가 최초로 시공한 종암아파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해방 이후 우리나라 회사가 최초로 시공한 종암아파트. 한국일보 자료사진

1954년 미국의 부동산개발업자 제켄도프는 조립식 아파트로 100만 가구를 건축할 것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안했고, 마침내 1956년 3층짜리 행촌아파트가 빛을 봤다. 뒤이어 처음으로 우리나라 회사가 시공한 종암아파트(1958)와 단지형아파트인 마포아파트(1962)가 건설됐다. 반포주공아파트(1974)를 시작으로 강남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아파트는 주택난을 해결할 최선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초기만 하더라도 아파트는 선호하는 주택이 아니었다. 온돌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라디에이터에 의존하는 아파트는 춥고 열악한 집이었다. 마포아파트는 입주 첫해 겨울에 수도가 얼어서 수세식 화장실이 무용지물이 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으므로 1층이 가장 비싸고 올라갈수록 저렴했다. 그러던 것이 아파트에 보일러가 깔리고 민간회사에서 중산층용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주택의 질이 좋아지면서 투자가치까지 더해지자 아파트는 이제 한국인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주택형이 된 것이다.

아파트가 대세인 이유

신축이나 재건축아파트가 수십억 원에 거래되고, 새로 짓는 주택의 70%가 아파트인 것을 보면 아파트는 여전히 대세다. 어떤 책 제목처럼 우리가 정말 아파트에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까.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주거환경뿐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택인허가 중 아파트 비중. 통계청

주택인허가 중 아파트 비중. 통계청

우선 아파트는 주거환경 측면에서 선호할 만하다. 20여 년 전 모 재개발사업 공청회에서 한 건축가가 "고층아파트는 경관과 주거환경적 측면에서 좋지 않다"고 말하자 방청석에서 한 주민이 제기한 반론이 떠오른다. "아파트가 되면 나무도 많아지고 놀이터도 생기고 주차도 해결되는데 어째서 안 좋아진다는 것이죠?" 학자보다는 시민의 눈이 훨씬 현실적이다. 일반적인 단독주택 밀집지역의 주차, 쓰레기, 방범, 공원, 놀이터 사정을 안다면 그곳이 아파트단지보다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산가치 측면에서도 아파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KB부동산 가격지수를 보면 서울아파트 가격은 지난 35년간(1986~2021) 599% 상승했는데, 단독주택은 142%, 연립주택은 160% 오르는데 그쳤다. 결국 아파트 소유 여부에 따라 자산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아파트가 부동산 불패의 대표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며 많은 국민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회적으로 아파트는 거주자의 계층을 은연중 드러내기도 한다. 아파트 평수와 아이들의 등수를 기준으로 계층이 나뉜다고 하여 우리나라가 ‘평등사회’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듯이, 브랜드화된 아파트는 신분과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타워팰리스, 렉슬, 래대팰(래미안 대치팰리스) 등 어느 아파트단지에 사는가에 따라 부와 교육수준이 드러나게 되니 단독이나 다가구가 모여 있는 주거지에서 볼 수 없는 프리미엄이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아야 할 때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현상이 우리 공동체 전체를 위해 바람직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파트는 공동주택인데 실상은 앞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폐쇄적인 주거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층간소음으로 멱살잡이를 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저지르는 비정한 이웃이 생겨나기도 한다. 위아랫집이 서로 오가며 인사하고 가끔 ‘치맥(치킨에 맥주)’도 하는 사이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겠는가.

우리가 반세기에 걸쳐 아파트에 적응하는 동안 잃어버린 것은 결국 공동체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주택이 많아질수록 공동체가 파괴됐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던 마을 잔치나 강강수월래도 모두 사라졌다.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아파트는 더는 우리 모두의 꿈이 되지 못하고 운 좋은 몇몇 사람에게만 기회를 몰아주면서 편을 갈라 놓았다. 요즘 아파트들은 더 크고 웅장한 게이트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데 몰두한다. 그 동네 대장아파트로 인정받을 수는 있을지언정 우리에게 더 안전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이해와 조화보다는 시기와 질투를 부추기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파트는 주택공급의 가장 효과적인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아파트 내에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북유럽의 코하우징(Co-housing)처럼 한 건물 안에 공동식당과 체육시설, 육아시설 등을 갖춘 새로운 유형의 아파트도 고려해봄 직하다. 그들은 아파트 한 동이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도록 30~50가구 규모로 설계한다. 그래야 얼굴도 기억하고 친구를 사귈 엄두를 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의 주도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도시는 더 분리되고 공동체의 해체는 가속화될 것이다. 무섭게 크고 멋있는 ‘너의 아파트’가 아니라 수수하지만 따뜻한 ‘우리 아파트’를 가꿀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ㆍ교통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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