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위험에 노출된 요리사들

입력
2021.04.28 22: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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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조심해.”

내가 식당 주방에 들어갔던 어린 시절, 선배 요리사의 첫 인사였다. 오리엔테이션은 안전문제부터 시작됐다. “다치면 너만 손해”라는 말과 함께.

가장 무서운 건 칼도, 불도 아니었다. ‘무게’였다. 식당은 다량의 음식을 만든다. 소스나 육수를 끓여도 80L, 100L짜리 육수통이 흔히 쓰인다. 혼자서 들 수 없는 무게의 통을 흔히 쓴다. 산업재해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에서는 식당에 각종 안전 문건과 스티커를 배부하는데 ‘칼 조심하세요’ 같은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허리와 무릎 부상을 주의하라는 스티커를 주방 곳곳에 붙이도록 유도한다. 칼보다 근골격계 사고가 더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는 대형 국솥이나 육수통 등을 사람이 직접 들지 않도록 기계화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영세한 현장이 많고, 공간이 좁아서 기계화된 설비를 설치할 수도 없다. 별수 없이 몸으로 때워야 한다.

칼이 무섭지 않다고 했지만, 사고가 은근히 잦다. 일반인이라면 당장 큰일이 날 것처럼 생각되는 상처도 요리사들은 그다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흔하고 잦은 까닭이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겠는가. 통증은 누구에게나 같다. 손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며칠 아프고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칼에 베인 상처가 주는 아픔은 강도가 다르다. 그러나 손가락 베였다고 휴가 내고 치료에 전념하기도 어렵다. 요리사가 많은 대형업장은 모르겠지만, 두어 명이나 잘해야 서넛인 경우가 대다수라 아파서 빠지면 영업 자체가 어려우니 눈치 보는 시절이 있었다. 영세한 식당의 현실이었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주방 필수품이 일회용 밴드에 지혈제, 손가락 골무라고 부르는 상처보호용품이다. 제일 어려운 문제는 막상 다쳤을 때의 치료다. 요새 거리에서 개업한 일반외과의원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성형외과에 가는 경우도 많다. 더러 친절하게 치료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가 한 명뿐이라 수술 중에는 발길을 돌려야 한다. 결국 대형 병원 응급실에 가서 한참 기다려서 겨우 처치를 받는다. 산재는 상처가 낫는다고 끝이 아니다. 일종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남는다. 나는 이십여 년 전에 전동슬라이서에 손가락 끝이 달아났는데, 지금도 그쪽 신경이 무디다. 식당이나 정육점의 슬라이서를 보면,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불도 물론 요리사들을 괴롭힌다. 그릴이나 오븐, 튀김기 사고가 잦다. 요리사들끼리 여름에 만나면 팔뚝이 훤히 보이는데, “요리사들은 깡패들도 안 건드린다. 칼자국에 담배X 자국처럼 보이잖아” 하고 농담을 한다. 오븐에서 작업할 때 내부구조물에 델 때가 있는데, 직선으로 상처가 나서 마치 칼자국처럼 도드라진다. 뜨거운 기름이 튀어서 부상을 입으면 마치 왕년에 세게 놀던 친구들의 자해 상처와 구별이 잘 안 된다.

세상은 더 살기 좋아지고, 안전해졌다고 한다. 여러 가지 수치를 봐도, 살아가면서 느끼는 체감 안전도도 그렇다. 그러나 어디선가 여전히 사고가 난다. 산업재해 판정을 받기도 쉽지 않다. 근골격계처럼 분명한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경우가 아닌 내장 질환 쪽은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요리사들의 호흡기 질환 산업재해 판정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굽고 볶고 튀길 때 발생하는 연기를 들이마시는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보호는 멀고 현실은 차갑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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