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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짝 들어가면 예술 감성 물씬... 밤이 더 아름다운 감천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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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문화마을은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지만, 여행객은 대부분 낮에 잠깐 들러 인증 사진을 남기고 돌아선다. 그러나 감천문화마을은 여행지이기 전에 마을이다. 역사, 풍경, 주민의 삶이 어우러진 곳이다. 좁고 가파른 골목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삶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야경 또한 화려하지 않지만 낮에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는 교통편은 고속버스, 철도, 항공 등 다양하지만 감천문화마을까지의 접근성을 고려하면 철도가 효율적이다. 서울역에서 KTX, 수서역에서 SRT를 타면 부산역까지 2시간 20~40분이 걸린다. 부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네 정거장을 이동한 후 토성역에 하차한다. 이곳에서 사하구1-1, 서구2 또는 2-2번 마을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면 감천문화마을이다. 산술적으로 서울역에서 3시간30분가량이면 감천문화마을까지 갈수 있다는 얘기다.
감천문화마을은 판자집과 초가집 40여 채 밖에 없던 빈촌이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피란민 중에서도 보수동에 자리 잡은 태극도 교인들이 정부의 이주 정책에 따라 감천2동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교인들의 집단 이주에 힘입어 마을다운 마을이 형성되고, 1980년대에는 2만 명 이상이 거주했다. 그러나 태극도 창시자가 사망한 후 교세가 줄어들고, 후손들이 출가하며 현재는 거주 인구가 절반 이상 줄었다.
세월이 지나는 동안 부산 곳곳에 고층빌딩이 들어서며 옛 모습이 사라졌지만, 오히려 감천문화마을은 보금자리의 통일성이 지속돼 주목받고 있다. 1957년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도시계획을 추진하며 합의한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모든 길은 연결돼야 한다’는 것과 ‘뒷집의 조망권을 막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어디로나 통하는 골목길과 계단식 집단 주택 양식의 마을이 형성됐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바라보면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이 특이해 다양한 별칭이 붙여졌다. 페루의 고산도시와 닮았다고 해서 ‘부산의 마추픽추’, 그리스 지중해의 섬마을과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한국의 산토리니’, 경계를 따라 가로로 늘어져 있는 집이 기차가 연결된 모습 같아서 ‘기찻집 동네’, 성냥갑을 쌓아 올린 동화 속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고 ‘블록마을’ ‘레고마을’로도 불린다. 여행객이 꾸준히 감천문화마을을 찾는 이유다.
여행객이 늘어나자 마을에도 변화가 생겼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예술 프로젝트 공모사업’에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로 당선돼 미술작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이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주민과 관광객에게 새로운 체험과 볼거리가 늘어났다. 일상의 생활공간에 창조적인 예술의 옷을 입힌 덕분에 감천문화마을은 예술 친화적 관광지로 거듭났고, ‘카멜리아’ ‘슈퍼스타 감사용’ 등 영화에도 등장하며 더욱 유명해졌다.
낮 시간 동안 붐비던 여행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어둠이 내리면 감천문화마을에는 주민들의 발길도 뜸하고, 대부분의 상점도 문을 닫는다. 고요하고 여유로운 밤의 감성이 지배한다. 이때부터 낮과는 전혀 다른 진짜 속살 여행이 시작된다. 생기 넘치는 물고기의 움직임으로 골목을 표현한 ‘골목을 누비는 물고기’를 시작으로 감천2동 삼거리에 설치한 ‘2016개의 나무 물고기’까지 수많은 미술작품이 야경 포토존으로 변신한다. 특히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낮보다 밤에 더 운치있다.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왕자가 사막여우를 만나 긴 여행을 하다가 감천문화마을 난간에 잠시 걸터앉아 쉬는 모습을 표현했다. 집집마다 골목마다 불을 밝힌 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야경에 예술 체험을 더하면 감천문화마을의 밤이 더욱 풍성해진다. 집 자체가 작품인 ‘그린하우스’는 갤러리 겸 카페다. 인증사진 명소이자 예술가와 여행객의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도전에 몰두하는 게 즐겁다는 안영찬(부산 원도심 미술인회 대표) 작가의 실험 정신이 녹아든 추상화를 감상할 수 있다. 시원한 팥빙수와 커피를 비롯해 프렌치토스트, 호떡아이스크림 등 개성만점 디저트도 꿀맛이다.
‘갤러리 펀몽’도 추천할 만하다. 30년 전부터 가로쓰기와 네모꼴에 갇힌 한글을 해방시킨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 붓글씨 ‘펀터치’를 선보여 온 오상열 작가가 운영하고 있다. “아무렇게나 쓴 것 같지만 펀터치에는 뼈대가 있습니다. 가로 글과 세로 글이 있고 획의 쓰임도 다르죠. 평등도 좋지만 넓이와 높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나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글씨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그림 같은 글자와 문장 속에 말뜻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글씨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여행의 감성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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