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리 컬렉션’, 고향으로 보내주자

입력
2021.04.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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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뜨거운 이슈였던 고 이건희 회장의 고미술품을 포함한 컬렉션 향방에 대한 발표가 나왔다. 국보·보물 등이 포함된 문화재 2만1,6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받고, 피카소, 모네 등의 서양 미술품 1,500여 점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다는 것이다. 최대, 최상의 규모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사적 공간에 머물러 있던 국보·보물이 국민 곁으로 온다니 반가운 마음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다. ‘리컬렉션’은 고 이병철, 고 이건희 회장이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유랑하던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유물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중에는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례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제146호 논산출토 청동유물이다.

일제강점기, ‘백제미소보살’의 수집가로 널리 알려진 이치다 지로는 이 유물을 손에 넣은 후 1929년 ‘신라예술품전람회’에 공개한 후 행방을 숨겼다. 해방 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 박종호에게 넘겼다. 박종호는 이를 국가에 반납하지 않고 김동현에게 팔았고, 김동현은 1987년 이병철에게 매도함으로써 ‘리컬렉션’이 되었다. 1972년 국보로 지정될 당시 출토지를 논산이 아닌 원주로 표기하는 유물 세탁과정이 있었고, 결국 35년 만에 고향을 찾았다.

이 청동유물의 기이한 행적은 우리 문화유산의 자화상으로, 이처럼 타의에 의해 고향을 떠난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시점에서 ‘리컬렉션’의 향방을 생각해야 한다. 바로 서울과 지방의 문화재 양극화 문제이다. 현재 국보가 총 348건으로 168건이 서울시 소재인 반면 제주도, 대전시 등에는 단 한 건도 없다. 더구나 서울에 집중된 문화재 중 많은 사례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지방에서 부당 징발당한 것들이다. 일부 근대 미술 작품이 작가의 연고지 등을 고려해 지자체 미술관 등에 기증된다고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최근 지방정부와 지역민은 연고 문화유산의 회복에 힘쓰고 있다. 유산의 회복은 국외 반출은 물론 국내 소재 문화재를 포함한다. 그 결과 국보 안동 하회탈은 2017년 안동시민의 품으로 돌아갔다. 국보 지광국사탑은 고향을 떠난 지 110년 만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양산 부부총유물, 부여 백제미소보살, 서산 보원사철불 등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문화유산은 있어야 할 장소가 중요하다. 유산의 진면목은 본래 자리에 있을 때 드러난다. 장소와 공간은 다르다.

문화재 반환문제는 합법적 소유권의 문제이기보다 문화재를 상실한 고통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문화기본권, 문화유산향유권이 ‘리컬렉션’의 환지본처(還至本處)를 통해 더 넓고, 더 깊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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