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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을 보라, 정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입력
2021.04.28 00:00
27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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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역할이 '사회 통합'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정치가는 없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정치가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하는지 사회를 사납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지를 묻는다면 정치가들이 뭐라 답할지 궁금하다.

사회의 통합과 해체의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이다. 한 사회의 마음 상태랄까, 정신적 건강상태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자살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평생 가족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던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빈곤선 이하의 처지에서 고독사의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빼고 그 높은 자살률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발표한 '경기도 5개년(2013~2017)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실직이나 소득 하락 등으로 건강보험료 면제 대상이 된 집단의 자살률은 76.6으로 전체 평균의 세 배였다. 복지 기반이 취약한 사회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과 빈곤층이 되는 것이 어떤 고통을 가져다주는지를 이보다 잘 보여주기도 어렵다. 생명존중시민회의가 발표한 '자살대책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0년 자살자는 1만3,799명으로 같은 기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917명)보다 15배 많았다.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연령대는 20대였다. 지난해 9월 이은주 의원실과 남인순 의원실이 낸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대 자살 시도자는 2019년 상반기 대비 2020년 상반기에 80% 이상 늘었고 자살자는 43%가 늘었다. 서비스업 분야에서 저임금의 불안정 취업 상태에 있는 이들이 전염병 사태에서도 가장 큰 희생을 겪었다.

박종훈 경남도교육감은 2020년 코로나19로 사망한 학생은 0명인 데 반해 자살로 사망한 학생은 140명이었다며, 10대 사망 원인의 1위(37.5%)가 자살인 현실에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누가 더 오래 책상 앞에 앉아있느냐로 경쟁하는 교육 현실을 빼고 이를 설명할 길도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자살로 5~10명이 영향을 받는다고 보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우리는 최소 7만 명 이상의 자살 유가족이 매년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들 유가족의 자살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평균 8배 이상 높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선택을 우리는 왜 줄이지 못하는 것일까?

2018년 1월 보건복지부는 자살률 1위 국가의 오명을 벗겠다며 대책을 발표했다. 2017년 24.3인 자살률을 2022년까지 17(2019년 OECD 평균 자살률은 11.3)까지 줄이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하지만 자살률은 줄지 않고 늘었다. 2019년 자살률은 26.9였고, 그간 발표된 잠정 수치들을 보면 올해도 내년에도 그 수치가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지금 우리는 잘살고 있는 것일까? 구성원을 보호하는 공동체로서의 힘을 우리 사회는 왜 발휘하고 있지 못할까? 국가는 왜 있고, 정치는 대체 어디 있는가?

혹자는 G7 가입을 앞둔 상황에서 선도 경제의 국가 비전을 말하고 있는데 무슨 '자살률 타령'이냐며 힐난하겠지만, 필자에게 높은 자살률은 깊은 상실감, 불안, 무기력함, 두려움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외쳐지는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로 읽힌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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