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55년 윤여정 최고 무대에서 최고 순간 맞았다

입력
2021.04.26 11:36
수정
2021.04.26 16:2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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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우 최초 오스카 윤여정 스토리

배우 윤여정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에서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배우 윤여정이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에서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레드카펫을 밟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제가 상 받기를 바라는 것은 노욕입니다. 제 나이에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거죠.” 배우 윤여정(74)이 2012년 5월 한국일보와 만나 한 말이다. 윤여정이 출연한 영화 ‘돈의 맛’과 ‘다른 나라에서’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진출했을 즈음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 2편으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잇달아 밟게 된 것만으로 그는 감회에 젖었다. “우리 젊은 시절엔 (영화제에) 가지도 못했어요. 시체스판타스틱영화제에서 ‘화녀’로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저는 언론을 보고선 수상 사실을 알았고, 제작자가 트로피를 가져다 줬어요.”

9년이 흘러 윤여정은 한국 영화계가 상상도 못한 일을 해냈다. 2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미나리’의 연기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품은 오스카 트로피다. 1966년 동양방송(TBC)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한 지 55년 만이다. 활동 반백 년이 넘어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는, 진귀한 장면을 70대 중반에 연출했다.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1971). 중산층 가정에 식모로 일하게 됐다가 집주인에게 겁탈을 당한 후 강제 낙태까지 한 다음에 광기를 부르는 여성 명자를 연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여정의 영화 데뷔작 '화녀'(1971). 중산층 가정에 식모로 일하게 됐다가 집주인에게 겁탈을 당한 후 강제 낙태까지 한 다음에 광기를 부르는 여성 명자를 연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①김동건 아나운서 권유로 시작한 연기

윤여정은 우연한 기회로 배우가 됐다.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대 국문학과를 다니던 때였다. 방학을 맞아 등록금을 벌 요량으로 TBC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당시 김동건 TBC 아나운서가 윤여정에게 공채 탤런트 응시를 권해 시험을 봐 합격했다. 1967년 드라마 ‘미스터공’으로 정식 데뷔했다. 1969년 MBC로 옮겨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표독한 장희빈을 연기해 세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빠른 말투, 청순한 외모가 개성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해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식을 치렀다. 시골에서 서울에 와 식모살이를 하는 명자를 연기했다. 집주인 남자에게 겁탈을 당하고 강제로 유산까지 했다가 복수에 나서는 역할이었다. 김 감독은 개성 있는 영화세계와 기이한 연출 방법으로 유명했다. 배우 캐스팅이 까다로웠던 김 감독은 곧바로 ‘충녀’(1972)에도 윤여정을 주연으로 기용할 정도로 신뢰했다. 윤여정은 “김 감독님이 예고도 없이 (위에서) 쥐를 떨어뜨리는 식의 연출을 해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하고 했다. 윤여정은 오스카 수상 소감에서 “김기영 감독이라는 천재와 함께 영화를 시작했다”며 “그분이 살아계시다면 굉장히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4년 미국에서 치러진 윤여정과 조영남의 결혼식. 조영남이 직접 축가를 부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4년 미국에서 치러진 윤여정과 조영남의 결혼식. 조영남이 직접 축가를 부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윤여정은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외도를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당히 밝히는 노년 여인을 연기했다. 명필름 제공

윤여정은 영화 '바람난 가족'에서 외도를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당히 밝히는 노년 여인을 연기했다. 명필름 제공


②결혼, 공백, 이혼, 복귀

윤여정은 전성기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카메라 앞을 떠났다. 유명 가수 조영남(76)과 약혼한 후 1974년 미국으로 가 결혼식을 올렸다. 조영남과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곱씹기도 했다. 영화계에 따르면 윤여정은 1972년 드라마 ‘새엄마’로 인연을 맺은 김수현 방송작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1976년 조영남과 일시 귀국해 일일극 ‘여고동창생’에 출연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1984년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극장-고깔’로 연기에 본격 복귀했다. 윤여정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주부로만 묻혀 있어 모두들 잊었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기억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김수현 작가가 각본을 쓴 영화 ‘에미’의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인신매매단에 유린당한 고교생 딸을 보고 복수에 나서는 유명 방송인 홍 여사를 연기했다. 인신매매단원을 유인해 얼굴에 황산을 뿌리는 식으로 복수를 한 후 담배를 피워 무는 장면이 당시로는 파격이었다. 명품 가방을 메고 자가용을 운전하는 모습으로 세련된 현대 중년여성을 연출하기도 했다.

윤여정은 1986년 국내에 완전 정착한 후 이듬해 조영남과 이혼했다. 조영남은 훗날 자신의 외도가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이혼 후 국내 방송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윤여정은 최근 미 경제매체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이혼은 주홍글씨 같았고 이혼녀는 고집 센 여자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이혼녀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결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어긴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TV에 나오거나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끔찍한 시간이었다.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라도 맡으려 노력했고 과거 한때 스타였을 때의 자존심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도 했다.

윤여정(오른쪽 두 번째)이 2012년 영화 '다른 나라에서'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윤여정(오른쪽 두 번째)이 2012년 영화 '다른 나라에서'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레드카펫을 밟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윤여정은 영화 '돈의 맛'에서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을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여정은 영화 '돈의 맛'에서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을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③‘꽃보다 여정’… 예순 넘어 활짝 핀 연기인생

김수현 작가의 인기 드라마 ‘사랑과 야망’(1987), ‘모래성’(1988)에 출연하며 방송가에서 입지를 다졌다. 2003년엔 ‘바람난 가족’으로 ‘죽어도 좋은 경험’(1995) 이후 8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편과 자녀 앞에서 “나, 남자 사귄다”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여인 홍병한을 연기했다. 당시 윤여정과 같은 연배 배우들에게 출연 제의를 먼저 했으나 다들 부담스럽다며 거부한 역할이었다.

윤여정은 전형적인 한국형 어머니 역할을 소화하면서도 파격적인 인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령화가족’(2013)과 ‘그것만이 내 세상’(2018)에서 희생적인 어머니를 각각 연기한 반면, ‘돈의 맛’(2012)에서는 남자 부하직원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재벌가 부인으로,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는 탑골공원 주변에서 성을 파는 박카스할머니로 변했다. ‘돈의 맛’에선 농도 짙은 침실 장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0년대 들어선 ‘꽃보다 누나’(2013~2014)와 ‘윤식당’(2018), ‘스페인식당’(2019) 등 예능프로그램에 잇달아 출연하며 젊은 세대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유머 섞인 언변에 능숙한 영어 구사, 후배들과 격의 없는 대화 등이 인기 비결이었다.

다시 2012년 5월. 윤여정은 ‘배우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더 있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별 꿈이 없는 여자입니다. 제 나이 되면 다 시들해져요. 젊은 배우와 멜로하고 싶다는 나이든 배우들 있는데, 저는 현실에서도 가당치 않은 그런 꿈 꾸지 않습니다. 착한 역이든, 악한 역이든 아무 상관없어요. 제 나이에 뭘 그렇게 따질 게 있나요. 그러려면 집에 가만히 있어야죠.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웃음). 후배들이 놀려요. 선생님은 빌딩도 없다고. 뭐 있어도 관리하느라 골치 아프겠지만(웃음)…”

윤여정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 ‘여배우들’(2009)에서 우스개 섞인 이런 대사를 한다. “그래, (송)혜교는 중국시장, (최)지우는 일본시장… 나는 재래시장이나 지킬라구.” 재래(한국)시장으로 자신의 활동 범위를 한정한 윤여정은 12년 뒤 세계 최고 무대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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